예배학 강의록

종교개혁 이후의 예배

주 바나바 2022. 7. 31. 12:04

예배학강의록(5) : 교수 - 주태근

 

F. 종교개혁 이후의 예배

 

종교개혁은 교회예배의 역사적 발전의 진가를 알고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게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도된 예배의 혁명이었다. 그들은 교회의 예배를 신학적인 강조를 출발점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개혁자들의 업적은 잊어버렸던 예배에 대한 통찰력을 다시 일깨워 준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운 예배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개혁자들의 주장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각에서는 영국의 성공회나 루터교의 영향아래 있었기에 예배의 뚜렷한 혁신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다.

 

Abba 교수는 오히려 18세기는 영국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쇠퇴한 시기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7세기 초반 청교도를 중심한 개혁자들의 후예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시작하면서 유럽의 기독교는 본격적인 변화와 함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들은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에 비해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교회의 새역사를 펼쳐갈 수 있었으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철저히 시행하면서 교회의 자유로운 형태의 예배를 인도해 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종교개혁은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 성숙은 미국 땅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을 정도이다.

 

특별히 1800년부터 발생했던 대각성운동으로 복음주의적 신학의 태동과 함께 탈의식의 예배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웨슬레의 영향 아래 있었던 감리교는 복음주의의 열심과 영적인 능력으로 예배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발전을 이루었고, 루터교 역시 전통적인 예배의식을 잃지 않았으며, 장로교도 그들의 예배의식을 탈의식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입장에 두고 말씀 위주의 예배로 나갔다. 특별히 성직자의 문제 교리의 문제 그리고 의식의 문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 속에 머물면서 오직 말씀의 선포에만 관심을 둔 것은 회중교회와 침례교회들이었다. 그러나 탈의식적이면서도 오직 말씀 중심의 복음주의적 특성은 예배에 대한 가벼운 이해와 무관심의 문제를 새로운 선교지인 아시아를 비롯 아프리카 지역의 개척교회에 파급시켰다. 그리하여 의식의 존엄성이 경시된 그곳 개신교의 예배현장에서는 토착화라는 이름 아래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가미되게 되었고 때로 토착 종교와의 혼합현상으로 보이는 위험한 결과도 초래하게 되었었다.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옥스포드 운동은 이러한 풍조의 전환을 명백하게 하였는데 이 운동의 주창자들은 성찬식을 영국교회 예배의 중심이 되도록 허용하려고 하였고 전기 국교회에 속하였던 옛 예배의식의 일부를 부활시키려 시도하였다. 다행히도 현대는 예배를 깊고 그리고 풍부하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 높아져 가는 등 의식적 복구의 징후가 짙다. 이 같은 현대교회 예배복고운동으로 각 교회마다 예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예배당 안의 구조, 성직자의 역할 등 예배의 예전을 되찾으려는 현대 교회의 경향은 많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존엄함을 인식시켜 주었으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행하는 예배의 의미 속에 구체화된 의식의 회복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