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회심(행 9:1-6)
목사 주태근
한국교회 최초의 타문화권 선교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1908년도 제주도에 파송된 이기풍 목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육지와 왕래가 없었고, 언어나 풍습에 있어서 내륙과 많이 달랐습니다. 섬 특유의 전통적인 신앙과 미신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외지인이 들어갔을 때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기풍 목사님께서 1908년도에 그곳에 들어갔을 때, 서양종교를 전한다는 것 때문에 몰매를 맞고 굶주려 쓰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3년 동안 제주도에서 사역하면서 15개의 교회를 개척하였고, 많은 제자들을 양육하였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 일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최초의 7명의 목사 중에 한 분이십니다.
이기풍은 목사가 되기 전 평양 거리에 깡패였습니다. 그런 그가 목사로 변화된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미 북 장로교 출신의 사무엘 모펫 선교사님이 평양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모펫 선교사님은 복음을 열심히 전하시고, 노방전도를 많이 하고, 제자들을 양육하고, 나중에는 신학교도 세워 한국교회의 기본 틀을 잡아 놓으신 아주 훌륭한 선교사님이십니다.
그분이 평양 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을 때, 거리의 부랑자였던 이기풍은 아주 못마땅해 했습니다. 한 기록에 보면 멀리서 돌을 던져 얼굴에 맞아 목사님이 쓰러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부랑자 이기풍은 복음 전하는 마포삼열 목사님을 괴롭혔고, 또한 다른 목사님들을 여러 모양으로 박해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회들이 부랑자 이기풍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잠을 자는데, 어느 날 꿈에서 예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가 그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0년도에 기도하며 박해가운데서 끈질기게 그에게 복음을 전했던 수안옥 목사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무릎꿇어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또한 그 후에 마포삼열 목사님께 찾아가서 무릎 꿇어 백배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가 된 후, 1903년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게 됩니다.
그해 안수를 받고 1908년도에는 제주선교를 떠나, 1942년도에 신사참배 거부로 순교하게 됩니다. 이기풍목사를 한국 기독교사는 `조선의 사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1505년 7월 2일,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나무 밑으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친구가 벼락에 맞아 그 자리에서 까맣게 타죽었습니다. 그곳에 같이 있었던 루터도 친구와 함께 자기도 죽었어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두 번째로 살게 되는 삶, 이 인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중에 썩어 가는 종교를 개혁하는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법학도가 되어서도 훌륭한 인물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모두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학이냐 수도원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루터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적절한 방향 전환을 하여 인류에 큰 공헌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와 같은 성공적 방향 전환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의 회심입니다. 교회 사가들에 의하면 그는 주전 1년경에 로마의 길리기아주의 다소에서 출생하여 11세에 예루살렘에 유학 와서 13세부터 유명한 가말리엘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학문과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만큼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부유하고, 권세도 있고, 로마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던 사람입니다. 사울은 세상적인 모든 호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의 족속이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사랑 받았고 한 때 왕족이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서 기독교회를 박멸하려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인접 국가인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석으로 피하여 들어간 것입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와도 좋다는 공회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흩어져 살아도 산헤드린 공회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것이 유대인의 불문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는 240Km로 당시의 교통 상황으로 볼 때 한 4일에서 6일 정도는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사람으로 그 머나먼 길을 가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오려는 일념으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땅에 엎드러져 소리를 들었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은 떴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유대교를 위하여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교회를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참람한 자요 저주받은 자라고 말했는데, 그 분이 정말 살아계셔서 자기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의 제자들이 증거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은 이제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살려달라고 할 수조차 없는 하나님에게 반역이요 대적한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지금까지 교회를 없애려고 한 것은 살려달라고 할 정도의 가벼운 죄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것만으로도 자기는 이미 죽임을 당하여도 당연한 범죄였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회개하였습니다. 사흘 동안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때에 자기를 용서하시면서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나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살던 사람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려내고 구원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라는 분의 안수기도를 받고 눈이 떠졌습니다.
그 때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세속적인 것만 보았는데 이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울은 유대의 바리새파 사상으로 온통 가리워져 있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저주받아 죽은 분이 아니요,
자칭 메시아라고 말하다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고 죽임을 당하신 분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이고 핍박하기 위하여 가고 있었는데 그 예수님은 자기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기 위하여 가고 있었는데 사울은 자기가 먼저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본 세상은 어두움 그것뿐이었습니다. 이제 사울은 우리 주님의 안목을 가지고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그가 회심을 통하여 자신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회심을 통하여 그는 전혀 새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었습니다.
신학자 칼빈은 회심을 "인간이 하나님께로 그의 얼굴을 완전히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회심은 한 삶의 형태에서 다른 삶의 형태로 완전히 바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새사람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첫번째 창조에서 부여받았다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새로이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회심은 ‘메타노이아’라는 말로 사용됩니다. 이는 ‘돌이킨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물질적인 이상의 마음의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는 단지 지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영적 변화와 인격의 전체적 재 적응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재 적응이며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과의 인격적 재적응의 모습을 갖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컨트리 뮤직 가수 중 조니 캐시는 10년 동안 알콜 중독에 시달렸으며 마약도 복용하다가 결국 발각되어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유치장에서 나올 때 그곳 경찰관인 랠프 존스라는 사람이 그에게 잠깐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경찰관은 조니 캐시에게 말하기를 '나와 내 아내는 당신의 열렬한 팬입니다. TV로 당신을 보고 라디오와 오디오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을 내 손으로 유치장에 수감한 날 나는 집에 돌아가 내 아내와 손을 잡고 울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눈동자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그에게는 주님의 부름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만났고 후에는 많은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불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회개는 인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을 변화시키고 사울은 인류사를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 모두가 변합니다. 사울을 부르신 예수님은 오늘도 나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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