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감사생활의 기적을(마태복음 14 :14-21)

주 바나바 2022. 8. 9. 20:31

감사생활의 기적을(마태복음 14 :14-21)

 

 

감사절 : 목사 - 주태근

 

아프리카에 살고있는 맛지족들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은혜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표할 때, 자기 머리를 땅에 닿기까지 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주둥이를 닦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입을 싹 씻는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뗀다든지 혹은 모르는 척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고 문화를 누리며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현대인들처럼 불행한 사람들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들 대개가 만족함과 행복함이 없이 살아갑니다. 늘 부족을 느끼고 불만하며 갈증을 느끼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만족이 없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소유에 집착한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을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인 이규태 씨가 그의 글에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병은 감사 결핍증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설 때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또 오십시요'라는 이기적인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 주면 '고맙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신난다'라는 말이 앞서고 택시 정류장에서 바빠서 야단하는 젊은이에게 양보를 하면 고맙다는 말을 듣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50개중에 28%`감사하다'라는 말이라고 소개합니다. 옷 한 가지, 신문 한 장을 살 때도 생큐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는 본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뱃새다 들녘에서 수많은 무리들을 모아놓고 하루종일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현대어로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말씀만 증거 한 것이 아니라 무리 중에 병든 자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그 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이렇게 불평합니다. "주님 여기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그것으로 이 많은 무리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은 그것을 자신에게 가져오게 한 다음에 축사하신 후에 떡을 떼어 그 많은 무리들을 먹였는데 그 수가 장정만 5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에 가득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복과 기적을 낳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생활입니다. 감사하면서 살 때 거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감사생활의 기적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을 모아 놓고 하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정말 은혜로운 부흥회였습니다. 무리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말씀에 매료되어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한 참 말씀을 듣고 보니까 벌써 저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양식뿐만 아니라 육의 양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말합니다. '주님! 여기는 빈들이고, 벌써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들을 먹일 수 없으니 마을로 내려가게 해서 제각기 해결하도록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요한 복음 6장에 보면 '주님 저들을 먹이려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이 있어야 하는데 돈 한 푼 없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감사할 수 없는 조건들만 이야기합니다. 불가능한 부분만 이야기합니다. '주님 이곳은 빈들입니다. 그리고 저녁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예수님은 설교는 잘 하시지만 현실은 모르시는 분이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그 수많은 무리들을 먹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같은 제자들의 불평은 여기는 빈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때가 저물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지금 없는 것을 끌어다가 불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보다는 항상 작습니다. 제 아무리 백만장자라도, 제아무리 일등 부자라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20-30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부자입니다. 그러나 50억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가난합니다. 100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부자입니다. 그러나 천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가난합니다. 1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재벌입니다. 그러나 2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가난합니다.

 

옛날에 한 언론인이 프랑크 감독이라는 분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는 행복해지는 비결을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해지는 원인은 알고 있습니다" 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웃 사람처럼 행복했으면 하고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결국 불행하게 되고, 그때처럼 행복했으면 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은 틀림없이 불행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열등의식에 포로가 됩니다. 열등의식에 포로가 되었다는 것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짜증만 나옵니다. 거기에서 무슨 복이 있고 은혜가 있고 삶에 놀라운 기적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현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그 비교를 통해서 살짝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감사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런 다음에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합니다. 현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감사입니다. 에디슨은 청각 장애로 매우 고통을 당했습니다. 청각에 장애가 생긴 것은 소년시절에 신문을 팔다가 기차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에디슨은 신문을 팔며 기차 한 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기차의 진동으로 실험작품이 떨어져서 불이 난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차장이 에디슨을 떠밀었습니다.

 

이때 귀를 다친 것입니다. 누가 그에게 묻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연구하기 힘들지 않았습니까?" 질문을 받고 에디슨은 대답합니다.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딴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현재의 감사생활입니다.

 

예수님은 뱃새다 들녘에서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왜 여기에는 오병이어 밖에 없는가 하면서 비교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을 지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것으로 인하여 진정으로 감사하십시오. 거기에 복이 있고, 그 감사에 기적이 있고, 더 큰 은혜가 있는 줄을 믿습니다.

 

또한 작은 것에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손에 얹고 하늘의 하나님께 축사하셨습니다. 감사하셨단 말입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린아이와 장정만 빼고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적은 작은 것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영국이 나은 설교자 스펄젼 목사님의 감사기도 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기도가 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전기 불을 주시고, 전기 불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천국의 영광을 비춰주실 것이다."

 

우리가 큰 것만 보면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것부터 감사해야 행복합니다. 평범한 일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별 일이 없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일 없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의 소제가 무엇입니까? 들녘에서 하루종일 일을 한 부부가 저녁 예배당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는 감사기도의 풍경입니다. 부부가 함께 회사에 나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살더라도, 건강한 부부 됨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 평범한 것, 일상적인 것, 작은 것에 큰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어린 소년의 초라한 도시락 하나라도 남아있음을 감사 드리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도 두 손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 큰 감사를 드리시는 모습은 너무나 숭고합니다. 여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 있는 작은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하는 것은 그는 언제나 모든 일에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아름답게 빚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욥기 23:110절을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말씀합니다. 지금은 고통 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병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환난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반드시 복주시고 보장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지금은 환난 중에 있으나 그 환난은 의미 없는 환난이 아니라 나를 단련하고 연단 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도구로 해석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 믿음대로 환난과 고난을 넘어서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감사생활의 기적입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한 그 때를 끊어서 생각하면 나는 불행합니다. 감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의 관점으로 보시고 나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한 해군 장교가 자기의 고향 땅에 돌아와 보니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고, 온 동네는 다 폐허가 되었으며, 자기가 살던 집도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애써 참으려 하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입에서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가슴속에서는 분노가 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때문에 화병이 생겼고, 전신마비가 와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그 사람의 병이 마음속의 분노에서 생긴 것임을 알고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내가 주는 약을 먹을 때마다 꼭 한번씩,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하고는 먹어야 합니다. 내 처방대로 하면 당신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장교는 의사의 말대로 감사하기를 몇 개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학교 갔다가 오면서, 풀 빵을 하나 사 가지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그 아빠에게 주면서 "아빠, 잡수세요" 했습니다. 그는 딸이 주는 풀 빵을 받으면서 힘들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전신의 마비가 확 풀렸습니다. 병이 깨끗하게 나은 것입니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일어나 뛰면서, 연신 소리를 내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어, 그래서 결국엔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바꿉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감사할 조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기로 작정한다면, 우리 마음도 상하게 되고 결국에 있는 것도 뺏기게 됩니다. 감사하는 길이 곧 사는 길이요, 회복하는 길이요, 기적을 일으키는 길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할 수 없는 무딘 마음으로는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청년이 청년답지 않게 늘 감사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대개의 청년들은 꿈도 크고 야망도 누구 못지 않게 대단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늘 미흡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늘 상 없는 다리 한 쪽만 생각하며 살자니 앞날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이 지점이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사람은 없어진 다리에 집착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다리는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인가 눈이 뜨이면서 다리 하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없어진 다리 대신 남아 있는 그 다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다리가 하나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고무다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이 남은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은 마침내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 다리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식인종들이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고무다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다리를 씹어보았지만 씹히지 않자 마침내 그 선교사를 신적 존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의 다리를 절단하게 하신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 때 그가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일년을 돌이켜 보며 감사제목을 적어보고 구체적으로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감사가 없는 것이 죄의 뿌리임을 로마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데도 윤활유가 되어 아주 부드럽게 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억지나 의무나 율법으로 무슨 일을 하면 얼마나 힘이 들고 부담이 많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가 넘치면 어떤 희생도 희생으로 느껴지지 않고 어떤 괴로움도 괴로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이 됩니다.

 

기독교인의 특징은 감사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그의 신앙을 점검해보는 시금석입니다. 여러분 이번 감사절을 맞이하여 이와 같은 감사가 항상 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감사는 과거의 축복에 대한 결산일뿐 아니라 내일에 누릴 은혜와 축복의 씨앗이 됩니다. 오늘 감사할 줄을 모르고 살면 내일에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나님께 감사하셔서 여러분의 오늘과 먼 장래까지,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 안에서 살아갑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고백하면서 살도록 말씀하십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