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시리즈

비전의 영성(히11:1-2)-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0. 10:32

비전의 영성(11:1-2)

 

 

목사 주태근

 

알래스카는 미국의 50개주 가운데 가장 돈이 많은 주입니다. 매년 거주하는 주민에게 돈을 내어줄 만큼 알라스카는 부요한 도시입니다. 오래 전 러시아로부터 미국이 알래스카를 사라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의원들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재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시워드는 의원들을 설득합니다.

 

여러분 나는 눈 덮인 알래스카를 보고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안에 감추어 있는 무한한 보고를 바라보고 사자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입니다.”

 

결국 알라스카는 당시의 720만 달러에 사들여 미합중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러시아는 통탄 할 일이며 미국은 횡재를 했습니다.

 

비전은 이렇게 판이한 결과를 낳도록 만듭니다.

 

비전은 성장을 낳습니다. 비전은 작은 개울에서 큰 강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참나무는 도토리 속에서 잠을 잡니다. 비전은 도토리 속에서 참나무를 그릴 수 있는 꿈입니다. 새들은 알 속에서 기다립니다. 비전은 알속에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느끼는 환상입니다.

 

이렇듯 비전은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손에 잡힐 미래의 그림입니다. 비전은 아직은 아니지만이미마음에 실현되고 있는 미완의 세계입니다.

 

명확한 비전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해주며, 일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 그 자체가 됩니다. 성경은 비전에 대한 많은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 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고, 그 꿈에 대하여 도전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구체적으로 이루어나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며 승리한 사람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삼중고에 살던 헬렌 켈러에게 어떤 기자가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녀는 이렇게 답합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전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비전은 삶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비전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특권입니다. 비전을 가지되 비전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비전에 대해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고통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비전의 영성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헬라를 통일 시킨 후, 유럽 점령을 위해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며 자기의 소유를 장병들에게 다 나누어주자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 나눠주면 폐하는 가질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때 대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희망을 갖겠노라!” 비전이 힘이고 인생의 가장 큰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헨리 포드는 의사를 부르러 말을 타고 가는 도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그는 말보다 더 빠른 것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고 결국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디트로이트 자동차 기념관에 가면 헨리 포드의 사진 밑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The Dreamer(꿈꾸는 자)”

 

비전 안에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운명은 환경이 좌우하지 않고 비전이 좌우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비전을 가지느냐?”에 있습니다.

 

비전이 짓밟히는 환경일수록 힘써 비전을 사야합니다. 비전이 있으면 노인도 젊어지고, 비전이 없으면 청년도 늙어집니다. 기회는 비전의 사람을 찾습니다. 행운도 비전을 가진 사람에게 잡힙니다.

 

비전의 전류는 불 꺼진 창과 같은 두뇌로 흘러 들어가 생각을 빛나게 합니다. 사람의 위대성은 그가 가진 비전에 달려 있습니다. 위인들은 대부분 비전을 품고 평범한 환경에서도 비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결정적 차이는 비전의 차이입니다. 역사상 위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비전이 있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 사람은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또는 그 회사는 비전이 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일반적으로 비전이 있다는 말은 장래성이 있다’, ‘미래가 밝다’,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해에 가면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 어둠을 가르며 태양이 바다를 솟구쳐 떠오르면 바라보는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설렘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새로운 희망에 부풀게 됩니다. 무엇인가 내 속에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낍니다.

 

반대로 서해에 가면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을 뒤로하고 태양이 바다 저 아래로 가라앉을라 치면 바라보는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쓸쓸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무엇인가 절망 같은 것에 잠기게 됩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지는 듯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됩니다. 비전이 있다 함은 일출을 바라봄 같다고 하겠습니다.

 

내일에 대한 설렘과 새로운 희망, 그리고 약동하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비전이 없다 함은 일몰을 바라봄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쓸쓸함과 절망 그리고 무기력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비전이 있고 없음은 반드시 나이와 관련되지는 않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비전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반대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 가운데도 비전이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비전이 있고 없음은 반드시 조건과 상황에 관련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지고, 상황이 희망차게 전개되어도 비전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나 조건이 나쁘고 상황도 점점 어려워지지만 그런 속에서 비전이 있는 사람들 역시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전이 있고 없고는 그 사람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 사람 마음속에 저 동해에 태양이 떠오르듯이 태양이 떠오르면 그 사람은 비전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 마음속에 저 서해에 낙조 사이로 태양이 점점 주저앉듯이 태양이 지게 되면 그 사람은 비전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태양이 떠오르기를 축복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밐 현장에서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찬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를 희망합니다.

 

<롬바르디> 트로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지구촌 수억의 스포츠팬들을 열광케 하는 슈퍼볼 결승전에서 우승하는 팀에게 돌아가는 트로피를 말합니다.

 

명예와 부를 약속해주는 보증수표이기도 한 이 트로피를 들어 올린 한 감독이 외친 우승 소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세상을 목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슈퍼볼 챔피언십, 우승반지, 명예, 재산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살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요 구주라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주고 외친 말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합니다.

 

바로 2007년 미식축구 수퍼볼 결승에서 강팀 <시카고 베어스>를 꺾고 인디애나폴리스 팀을 우승으로 끌어 올린 토니 던지감독이 그 주인공입니다.

 

토니 던지 감독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입니다. 그가 활동하는 세계는 술과 담배와 마약과 불건전한 사생활이 난무하는 곳이었고, 많은 선수들이 그런 것들로 인하여 방황하고 타락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선수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곳에서 미식프로축구팀의 선수와 코치로 또한 감독으로 활동하면서도 미식축구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준 일을 하는 소명으로 여기고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은 눈부시기까지 합니다.

 

또한 모범적인 가장으로, 자상한 남편으로, 헌신적인 아버지로 살아가는 토니 던지는 우리나라의아버지 학교와 같은 올 프로 대드라는 가정사역단체를 만들어 가정사역자로도 아름다운 헌신을 하고 있으며, 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자들을 위한 사역도 펼치고 있어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룰 모델이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진정한 믿음의 영웅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가뭄에 단비와 같이 현대인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 역경을 이겨내고 우여곡절 속에 마침내 꿈과 희망을 이뤄내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모범적이고 넉넉한 가정환경 속에서 잘 자라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여 성실한 삶과 도전으로 성공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비전을 품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목적과 비전을 성취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믿음의 힘에서 나옵니다. 본문에 주목하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증거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어 중에 고이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잉어를 작은 어항에 넣어 두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못에 넣어두면 12-25cm까지 자라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자랍니다.

 

고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에 따라 난쟁이 잉어가 될 수 있고, 대형 잉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과 비전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등급과 수준이 결정됩니다.

 

눈을 감은 사람은 손이 미치는 곳까지 그의 세계요, 무지한 사람은 그가 아는 것까지 그의 세계요, 위대한 사람은 그의 비전이 미치는 곳까지 그의 세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꿈 너머 꿈을 꾸는 만큼 원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과 비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 비전의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여성으로서 요게벳은 레위 족속이었으며 같은 레위인 아므람의 아내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영광'이란 이름의 뜻을 가진 그녀는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 지도자 모세를 낳은 여인입니다. 또한 그녀는 대제사장 아론, 이스라엘 최초의 여선지자 미리암의 어머니입니다.

 

요게벳은 태어난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이집트 바로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아기 모세를 석 달 동안 집에 숨겨 키우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비전의 영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더 이상 숨겨 키우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비전의 영성으로 대처합니다.

 

나일 강 악어들이 좋아하지 않는 갈대로 만든 상자를 준비하고 그 내부를 역청으로 방수 처리한 후 아기를 담아 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그때 그 옆에는 누이 미리암을 함께 보내서 목욕하러 나오는 바로의 공주가 물으면 자연스레 아기를 위한 유모를 소개하도록 계획했습니다. 계획한대로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모세의 구출은 온 가족에게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고,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은 핍박 속에서 보수까지 받으면서 유모로 채용되어 자기의 친아들을 유모처럼 스스로 키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요게벳은 유아기 때의 모세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히브리인이란 민족의식을 가르쳤습니다. 요게벳의 신앙적 가르침 위에 애굽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워 말과 일에 능하게 된 모세가 시대를 초월한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모세의 출생과 성장과정에는 하나님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비전의 영성으로 행하는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비전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의 영성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믿음의 영성입니다. 믿음의 영성은 비전의 확실성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습니다. 비전으로 미래를 봅니다. 또한 비전의 영성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증거란 영적통찰력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의미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라는 것들은 미래에 경험하는 것들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은 보지 못하는 영적인 경험의 영역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 미래가 비전의 영성으로 현실화 됩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꿈은 외국에 가서 광고 마케팅을 공부하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상 나머지 가족은 다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고 자신은 도저히 유학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비전을 가지고 벽에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인 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르리라 열리 것이니라!”는 말씀을 붙여 놓고 새벽마다 교회 나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결국 그 꿈대로 유학길이 열려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학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밀가루 한 부대를 사서 매일 하루 세끼를 수제비만 끓여 먹고 4개월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갈 곳이 없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신문을 이불 삼아 자기도 했고 극장에서 점원 노릇도 했습니다. 그런 현실에 너무 낙심이 되었지만 그때 하나님이 또 다른 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는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비전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연예계로 인도하시고 최고의 스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탤런트 최수종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과 비전을 붙들고 살면 상상을 초월한 최고의 길이 열립니다. 환경을 탓하지 맙시다. 운수를 핑계 삼지 맙시다. 기회가 지나갔다 아닙니다. 신앙은 비전으로 삽니다.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비전의 영성을 가집시다. 비전의 영성은 바른 믿음입니다. 순수한 믿음입니다. 꾸며낸 믿음도 아니고 모방한 믿음도 아닙니다. 우려낸 믿음도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이면 됩니다. 다른 곳에서 비전을 가지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만 주목합시다.

 

예수님만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며 동반자입니다. 비전의 영성은 예수님 안에 모두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보물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미래가 현실로 나타나고, 미래를 소유하게 됩니다. 주님은 비전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