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죽고 사는 생활(골3:1-4)-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1. 13:38

죽고 사는 생활(3:1-4)

 

 

목사 주태근(부활주일)

한국교회사에 최초의 일곱 목사 중에 한 사람인 김익두(金益斗:18741950)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황해도 일대에 잘 알려진 깡패였다가 어느 날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된 이후에 자기가 죽었다는 부고(訃告)’를 이웃 사람들께 돌렸습니다.

 

"김익두가 죽어 몇 월 며칠 어디에서 장례를 지내고자 하오니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거 참 잘 되었다하고서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죽었다고 하던 김익두가 쓱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저 놈이 무슨 흉계를 꾸민 것일까?”

 

모두 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김익두는 말합니다. "여러분 많이 놀라셨겠지만 김익두는 정말 죽었습니다. 여기 서 있는 김익두는 이전의 깡패 김익두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김익두 입니다. 여러분, 그 동안 제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김익두는 정말로 옛사람 깡패 김익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고, 새로운 사람 김익두로 다시 태어나게 되어 초대한국교회를 위해 능력 있는 종으로서 크게 쓰임 받게 되었음을 한국교회역사는 증언하고 입습니다.

 

애벌레를 보면 참 흉합니다. 배로 기어 다니고 징그럽고 더럽기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애벌레는 자기 운명대로 그 모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멋지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보다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하기 위해 애벌레는 모든 것에서 자기를 단절시켜 버립니다. 스스로 만든 고치라는 좁고 어두운 암흑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가두어 버립니다. 왜 그 어둠과 고통 속으로 스스로 들어갈까?

 

그 속에서 애벌레는 제 2의 자기, 화려한 내일의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해 엄청난 아픔과 인고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거기에서 날개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공을 향해 날아갈 수 있습니다. 다리도 만듭니다. 다리가 없어 걷지 못하고 배로 밀고 다니던 치욕적인 삶을 청산하기 위해 다리도 만들고 몸도 가꿉니다.

그 고치 속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치를 깨고 화려한 나비가 되어 밝은 창공을 날 때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꽃들도 환영합니다. 애벌레와 나비는 같은 존재이나 이제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이 부활의 역사이고 창조의 역사입니다.

 

독일 하노버라고 하는 곳에 있는 공동묘지에는 한 특이한 무덤이 있습니다. 화강암과 대리석의 두꺼운 석판을 시멘트로 접합시키고 굵은 쇠줄로 꽉 죄어 놓은 무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무덤은 죽음 후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어떤 부인의 묘입니다.

 

그녀는 만일 부활이 있다하여도 자기 무덤만은 열리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만들어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그 대리석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이 무덤은 절대로 개봉될 수 없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무덤의 돌 밑에 깔려 있던 씨 하나가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싹은 서서히 돌을 밑에서 위로 밀어 냈습니다. 줄기가 커지면서 화강암과 대리석 석판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틈을 내고 말았습니다. 한 작은 생명이 화강암과 대리석을 뚫고 개봉될 수 없는 무덤을 개봉하고 만 것입니다.

 

부활의 새생명은 죽음을 정복한 생명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생명력으로 죽음을 이기신 역사적 사건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도 아닌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약속한 부활의 첫 열매로서의 부활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생명체로 영생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죽고 사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푼 성찬은 주님 안에서 죽고 사는 은혜를 영적으로 재현시키며 부활의 생명을 확신하는 거룩한 은혜의 시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 안에서 새생명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은혜를 더욱 힘입게 되는 예식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부활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주님 안에서 부활하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아무 것도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실제로 죽지 않았고, 따라서 실제로 다시 살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부활하였다는 것을 잘 믿지 않고 이 다음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부활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아무 공로도 없는 우리를 무조건 받아 주시고 무조건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편에서도 부활에 따른 변화를 이룩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지난날에 대하여 죽어야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부활의 은총을 나의 삶으로 경험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은혜로 주셨지만,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 40년을 지낸 것은 이집트에서 몸에 밴 노예근성을 죽여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이 땅에 사는 남은 날들은 바로 광야 40년과 같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부활의 생명에 합당한 변화를 이룩해야할 기간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이 다음에 악한 부활로 나타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회개하면서 나의 모든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육체의 죽음 후에 선한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오늘 내가 죽고 오늘 내가 다시 사는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위엣 것과 땅엣 것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목표를 과거와 달리 '위엣 것'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엣 것은 곧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를 뜻합니다. 그 법, 그 질서, 거기에 따른 평화와 기쁨, 사랑과 섬김을 뜻하는 것입니다.

 

312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위엣 것을 추구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 받는 사람답게, 동 정심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 입니다" (3:12,14).

 

이 외에도 평화와 감사와 찬양이 부활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고 찾아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 리는 땅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이런 위에 있는 이상들은 너무 멀고 너무 이상적이며 너무 힘든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을 때, 그 율법이 요구하는 생활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그들이 지키기에 는 너무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율법을 따라 살도록 훈련 시켰던 것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은 진실해야 하며, 거룩해야 하며, 성결해야 하며, 섬길 줄 알아야 하며,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비록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인 것들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그것들을 생각하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은총으로 주어진 부활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해서도 안 되며,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다시 현실 즉 땅엣 것으로 돌아가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한 일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 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철저하게 금하신 사항이었습니다. 아무리 부활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죽음의 지배 밑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직 앞으로 나갈 길만이 허락된 것입니다. 되든지 안 되든지 부지런히 위에 있는 영적인 덕목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길만이 우리가 갈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변화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에서 자유 함을 얻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우리 속에는 아직 죄의 잔재(殘在)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 때문에 우리가 형벌을 받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청소해 내야 할 더러운 것들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는 이런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3:5).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3:8).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고 부끄러운 말을 버리는 일이 바로 우리가 죽음을 경 험 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거의 본능적인 것으로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버리는 일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3:10-11).

 

바울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하 면서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더불어 우리의 죄가 소멸되었고, 그의 부활과 함께 우리가 살아났지만, 이제 실제로 자기의 삶 속에서 그 죽음을 체험하고 그 부활에 이르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활의 생명에 실제로 일치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기 이전에 가졌던 탐욕과 온갖 거짓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청소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옥에 살던 사람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 때 대부분 옛날 것은 다 버리고 새 것들을 모두 장만합니다.

 

장도 책상도 바꾸고 응접세트도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은 새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과 같아서 옛 것들을 다시 끌고 새집으로 가서는 안 되고 그것들은 다 버리고 새 집에 맞는 새로운 것들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땅엣 것 즉 자기 중심적인 탐욕을 버리고, 위엣 것 즉 하나님 중심의 삶을 찾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사람들 입니다. 오늘 성찬상은 바로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인 동시에 구원의 은혜를 힘입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은총 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욕심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위에 있는 영적인 덕목들로 여러분의 생명을 풍성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