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자녀는 축복입니다(시 127:1-5)-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3. 11:17

자녀는 축복입니다(127:1-5)

 

 

목사 주태근(어린이주일)

 

하루는 다람쥐들이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다람쥐 엄마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들이 점심 도시락을 빼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보니 다른 집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어딜 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 엄마도 아들이 도시락을 빼 놓고 소풍을 갔기에 지금 가져다주는 길이라고 대답합니다.

잘 되었구나 생각하고 내 아들도 두고 갔으니 내 아들 것도 좀 가져다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 자녀들도 서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져다주긴 하겠는데 어떻게 전달합니까?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죠?' 그러자 부탁한 엄마가 말합니다.

'그 곳에서 가장 잘 생긴 녀석이 제 아들입니다. 그 아이에게 전해 주세요. 부탁 합니다.' 이렇게 부탁하고 전달이 잘 되었을 것으로 보고 걱정을 놓고 있는데 조금 전 심부름을 부탁받던 엄마가 돌아 왔습니다. 확인 차 잘 전해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도시락을 내 밀면서 전해 주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부탁한 것은 미안하지만 그냥 가져오니까 속이 더 상해서 어떻게 그렇게 됐느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심부름 한 엄마가 말합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아도 내 아들보다 잘 생긴 다람쥐는 한 마리도 없습디다.' 이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로마제국에서 여성 제1인자로 뽑혔던 코넬리아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정치가이며 장군이었던 크라크스 라는 분입니다. 남편이 전장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 21녀를 혼자서 잘 교육시킨 어머니입니다. 고난과 외로움, 유혹과 갈등 속에서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모범을 보이며 그의 자녀들을 잘 양육했습니다.

강인한 성격과 어떤 손해를 본다고 해도 거짓과 타협치 않으며 불의와 손잡지 않는 정직한 자녀로 키워냈습니다. 어떤 날 귀부인들이 찾아와 서로 이야기하다가 자기 손에 끼고 있는 보석반지들을 자랑합니다. 코넬리아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까 귀부인들이 코넬리아 당신의 보석은 어떤 것이냐고 구경 좀 시켜 달라고 말하니까 코넬리아는 가만히 일어나 삼남매를 데리고 들어와 나의 기업, 보배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준 이 자식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커다란 복 중에 하나는 자녀를 생산하여 그 자녀를 통해 혈통을 잇고 사회와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케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입니다. 값을 매겨 놓을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말하였습니다. 좀 쉽게 번역하면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산이요, 태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어는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목사님, 성경에 이상한 기록이 하나있습니다"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펼쳐 보이면서 "자식은 기업이라 그랬는데, 제가 아들 다섯을 유학까지 보냈는데, 제 솔직한 심정은 자식들이 기업이 아니라, 호시탐탐 내 재산만 엿보는 늑대들입니다"

부모에게서 뜯어 갈 것만 고민하지, 부모를 도와주려는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좀 이상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식은 기업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기업이라 표현한 성경의 뜻을 바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복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 물질의 소유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낳은 자녀이건, 내 옆에 있는 이웃이건, 누구이건 간에 인생의 가장 큰 성취, 올바른 성공을 향해 걸어가는 비결은 물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우리 인생 가운데 올바른 성취감을 누리며 결론 맺기 위해서는, 믿음의 2세대를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아이일수도 있고, 너의 아일일수도 있습니다. 누구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내 믿음의 2세를 양육하기 위해 수고하고, 내 인생을 바치고, 내 물질과 시간을 바칠 때, 우리의 인생은 실패한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성취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하였습니다. 자신의 전통에 날카로운 화살, , 믿음의 2세대가 가득 담긴 자는 복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의 투자요, 최상의 성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세가 위대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는 실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모세가 이 땅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부모가 그를 낳았더니 저절로 모세가 될 수 있었습니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세 당시 이집트 왕 바로가 유대인 남자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 피할 길이 없었지만,

 

부모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이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식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아이를 보호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는 것을 우연히 보다가 바로의 공주에게 아이를 떠내려 보내면 살 것 같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갈대 상자에 아이를 담아 떠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에게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그때에 바로의 공주가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물 속으로 달려가 보니 귀엽고 어여쁜 아기가 상자에 담겨져 그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공주가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 예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어린 아기를 어떻게 키울 것을 걱정합니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우연히 목격한 일인 것처럼 달려가서 말합니다. "공주님, 우리 동네에 젖이 남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를 하나 보았는데, 소개시켜 드려도 될까요?" "데려오너라!" 그래서 모세의 친 엄마를 데리고 왔습니다.

 

모세의 유모는 모세의 친 어머니로서 어린이 시절부터 민족교육, 신앙교육, 윤리와 도덕에 따른 기본적인 교육을 모세에게 유대인으로서의 교육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명한 모세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말을 익숙하게 쓰고 있습니다만 소파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할 때는 어색한 말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린이를 부를 때, 대개 '아이' '얼라' '어린아' 등의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끝에 붙은 ''라는 어미는 대개 '젊은이' '높은이' '착한이' 등 어느 정도 높임의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이 ''라는 말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도 어엿한 하나의 인격의 주체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이는 그렇게 높임을 받지는 못하고 그 인격이 늘 어른에 의해서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세상이 다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할 때 성경은 어린이를 대단히 소중하게 취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의 인격을 가장 소중히 보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한창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 정말 예수님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셨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자기들의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축복을 받게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른들 맞기도 바빠 죽겠는데 웬 아이들을 데리고 오느냐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그들을 무릎에 안으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4절의 말씀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아이들의 인격을 잘 존중하고, 바르게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들은 자녀들을 잘 키우고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자녀를 그저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이 되게 할 것인가는 부모인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서울지법 2층 로비에서 다섯 살 난 한 소년이 울고 있었습니다. 부모를 찾을 수 없어서 결국 근처 파출소로 보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년의 부모는 서울지법 가정법원에서 이혼소송을 벌였던 30대 초반의 부부였습니다. 그 부부는 별거하는 동안 두 살 난 딸과 다섯 살 난 아들을 각각 데리고 있다가, 이혼하면서 서로 아이를 안 맡겠다고 팽개쳐 버렸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새 직장을 얻어야 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새 출발을 해야 하니까 자녀들이 부담이 돼서 아이를 법원 로비에 놓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살 난 아이가 엄마, 아빠,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하고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법원의 판사들은 부모가 서로 양육권을 포기하겠다고 할 경우에 참 난감하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린 자식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은 어디서 보상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큰 축복은 훌륭하고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간에 자녀를 사랑으로 잘 양육하고 보살피는 믿음의 부모를 만나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칼뱅(Jean Calvin ; 15091564)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겨야만, 자기 자녀들을 매우 뛰어나게 기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이 중학교 1학년인 형에게 도끼에 맞아서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 양 군은 평소 컴퓨터 폭력게임에 심취해 있었고, 근래에 와서는 시체가 등장하는 게임과 폭탄사이트에 몰두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잠자는 동생을 보고 한순간 살인충동을 느껴서 살해를 하고 말았습니다. 언론에서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지만, 부모도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양 군의 아버지는 게임을 절제시키려고 컴퓨터를 안방과 거실로 여러 차례 옮겼으며, 토요일에는 집에 놀러온 양 군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주말농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 밭을 일구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양 군도 1학년 때는 선효행상을, 2학년 때는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사건이 있기 바로 전까지도 동생을 위해 라면을 끓여 주는 착한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양 군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킬러다, 나는 남들이 망설이는 살인을 했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반복적인 컴퓨터 게임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년원에 들어간 양 군은 후에 부모님한테 쓴 편지에서, “악이 센 줄 알았는데, 선이 센 줄 이제 알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그동안의 자녀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교육을 통해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학교 교육에만 의존했다가 이런 참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었다고 해서 교육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신앙을 갖게 하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로써 자녀를 축복하는 일입니다. 자녀들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거나 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나아가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또한 내 자녀가 한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착하고 좋은 일을 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는 것도 부모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자식을 통해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자식을 잘 양육하면 보람이 될 뿐만 아니라, 축복도 받고 상급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28: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