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여 오시옵소서!(행2:1-4)
목사 주태근(성령강림주일/성찬식)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 성령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 사함과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과 기쁨과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사역을 우리의 몸과 영혼 안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십자가 사건은 하나의 고고학적 사건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책 속에 쓰여 있는 인쇄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므로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생동하는 사건이 되었고 성령님이 오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녹이는 살아있는 음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성령님은 살리는 ‘생명의 영’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를 살립니다. 인간의 삶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생명의 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역에 근거해서 우리를 살리시지만, 하나님은 성령님의 사역에 의해서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을 흙으로 지은 아담의 코에 불어넣었을 때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성령님으로 거듭나야만 새로운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이 바람과 같이 그리고 불과 같이 120명 성도들에게 임했을 때 저들은 모두 살아났습니다. 몸과 영혼이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영혼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의 기도가 터져 나왔고 뜨거운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120명이, 나중에는 3천명이, 아니 5천명이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고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뜨거워지고 우리의 찬양이 뜨거워집니다. 1907년 성령님께서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 임했을 때 2천여 명의 신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저들의 기도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저들의 기도 소리에 교회당 지붕이 날아갈 버릴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와 찬양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오셔야 합니다. 충만히 오셔야 합니다.
‘살아났다’는 말은 또한 ‘사람들을 가깝게 친밀하게 만났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임했을 때 사람들의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인사가 친절해졌고 교제가 뜨거워졌고 물건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서로 교제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령 충만은 생명 충만 이고, 생명 충만은 교제 충만 이고, 그리고 사랑 충만 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제가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교제와 사랑의 힘은 성령님으로부터 가능해 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시는 성만찬은 성령님을 통하여 다시 한번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성찬상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임재하신 성령님은 교통케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 그리고 성도와의 진정한 교제를 가능케 합니다.
'교통하심'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 말은 '교제', '친교', '사귐'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팰로우쉽(fellowship)을 사용합니다. 교제, 친교, 사귐, 우정은 혼자 있을 때 쓰이는 말이 아닙니다.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여 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의 교통은 코뮤니온(communion)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시간마다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하는데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성도가 교통하는 것"의 교통은 코뮤니온(communion)을 썼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곳"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이 코뮤니온(communion)이라는 말은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역동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코뮤니온은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인격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란 성령님과 함께 기뻐하고, 성령님과 함께 슬퍼하고, 성령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성령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령님과 마음과 말과 생각과 뜻이 다 통하는 관계를 입니다. 성령님이 왜 우리에게 영적으로 이 성찬상에 찾아오십니까?
온전히 하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의 교통하심이 넘친 예루살렘 공동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 교회는 남녀라는 성을 초월하여 모였습니다. 노인과 소년이라는 세대 차이를 뛰어 넘어 함께 모였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서로 만나 교제했습니다.
국경과 민족, 사상과 이념, 문화와 의식의 한계를 뛰어 넘어 만났고, 교제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교제의 장애물들을 말끔히 제거해 주심으로 아름다운 초기 공동체를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들은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충만해 졌습니다.
삶의 힘이 솟구쳐 넘쳤습니다. 에너지가 용암의 불길처럼 용솟음쳤습니다. 핍박 앞에서나, 위험 앞에서 담대해 졌습니다. 가진 것을 기꺼이 드리며 헌신 봉사 희생했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충만이 오늘 우리에게도 부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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