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 메시아(사61:1-7)
목사 주태근
유대교도들은 삼위일체와 유일신 개념은 모순 되며, 오직 예수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인신 제사를 금지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이 유대교가 제시하는 6가지 메시아 표준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고 폄하시킵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메시아의 6가지 표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을 잇는 올바른 족보를 가져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셋째, 유대 민족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넷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 다섯째, 세계 평화를 가져오며 전쟁을 끝내야 한다. 여섯째,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해야 한다. 이상 여섯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메시아 이해는 유대인의 개념과 믿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메시아가 6가지 예언적 표준을 성취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입니다.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랍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람반은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해 이같이 밝힙니다. “만약 그가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면 다윗의 아들 메시아로 가정할 수 있다. 즉, 반드시 다윗의 집을 통해 온 통치자여야 한다.
다윗처럼 토라와 계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문 토라와 구전 토라를 모두 반드시 따라야 하며 모든 유대인들을 토라로 다시 이끌어내야 한다. 토라의 율법들을 완전히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성전을 원래 자리에서 재건하며 흩어졌던 모든 유대인을 한데 모으면 우리는 그를 메시아라고 확신할 수 있다.”유대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메시아를 만나는 것입니다. 메시아사상은 구약성경의 핵심이며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들은 오실 메시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메시아를 대망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변 국가들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어려워지면 어서 속히 메시아가 오기를 모두가 고대했습니다.
다니엘 2:44과 7:13-14절을 보면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었고, 메시아가 오시면 메시아 왕국이 세워지고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게 될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메시아』는 성경을 기록한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예수 메시아”란 의미이고, ‘그리스도 예수’라는 칭호는“메시아 예수”라는 뜻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메시아의 의미는 고통과 신음 속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구세주 메시아입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메시아가 있습니다. 율법의 언약에서의 메시아와 다윗의 언약에서의 메시아입니다. 율법의 언약의 메시아는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는 메시아입니다. 신명기서 18장 15절에서 22절에 따르면, 이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이 땅에 오십니다.
율법의 저주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지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십니다. 이 메시아가 바로 초림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초림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즉 자신을 희생시켜 인류를 구원하시는 종으로서 메시아입니다.
고난의 종으로서 만 백성을 하나님에게로 구원하시는 메시아입니다. 다른 하나의 다윗의 언약에서의 메시야는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입니다. 이는 다윗 왕에 근거한 신앙입니다.
역대상 17장 11절에서 12절에 근거한 신앙으로서, 다윗은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히 왕이 된다는 언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왕이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런 신앙은 율법의 언약의 메시아를 그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종으로서 인류를 구원키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인은 열심은 있으나 지식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를 주장하며 율법을 범한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는 그들이 범한 죄를 의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죄에서의 구원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의 언약의 메시아를 생각지 않고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얽매임에서 해방시키는 정치적 메시아를 갈망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앞에서 실패한 민족임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 역시 속죄가 필요한 인생들입니다.
결국 자만에 빠져 스스로 복음의 은총을 거부하게 되어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죄에서의 구원은 오직 복음으로 성취되는데 유대인들이 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결국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율법 아래 갇혀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으나 율법의 저주 곧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그들은 열조의 언약에 의하여 구원됩니다. 곧 언약의 사자인 메시아가 왕으로 오시게 됩니다.
유대인은 이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믿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림의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은 다시 오시는 재림의 예수님을 통곡하며 메시아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유대인에게는 복음이 율법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율법 아래 갇혀 있게 됩니다.
이사야서의 오늘 본문 말씀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셨던 말씀입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 즉 이사야 61장을 펼치면서 이르기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4:21)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글이 자신에 관한 예언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이사야의 글을 읽고 배우고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새로운 해설을 통하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누가복음 4장22절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연 이사야서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로 오신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2,000년 전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다른 방법으로 찾든지 아니면, 메시아를 아직 기다린다면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약 50여 년 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부자가 된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세 친구의 이름은 죤 뉴우턴, 루이 웨더포드, 사무엘 프레스톤입니다. 석유산업 호황으로 억만장자가 된 이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놀러갑니다. 그들은 엠배서더 호텔 69층 전체를 예약하고, 첫날 뉴욕 관광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호텔에 돌아와 보니 일이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입니다. 프론트 직원은 하룻밤만 2층에 지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는 술기운에 객기가 생겨 69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합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올라 가는데, 처음 몇 층은 괜찮았으나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마지막 몇 층은 거의 기어 올라가면서 2시간 반 만에 겨우 69층에 도착했습니다. 그
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라와 보니까 프론트에서 방 열쇠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그만 정신이 아찔해지고 고민이 됩니다. 마침 그때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청소하는 흑인 아주머니가 손에 마스터키를 들고, 활짝 웃으면서 객실 문을 열어주며 농담 비슷하게 말합니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많이 고생하셨지만 방 열쇠가 없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마스터키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스터키는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방문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마스터키입니다'라는 흑인 아주머니의 농담이 존 뉴우턴에게 어린 시절의 교회생활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에게 "예수님은 정말 우리의 마스터키이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두 친구도 그 고백에 동의하고 그날 밤 그들은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찾아오심으로 그날 이후로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됩니다. 텍사스 제일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기도의 후원자, 재정적 후원자가 됩니다. 빌리 그래함이 지금의 빌리 그래함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의 역할이 참으로 컸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연히 맞이한 삶의 자리에서 인생의 마스터키인 메시아를 이해함으로 새 삶의 은혜를 찾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신 메시아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늘도 마스터키 즉 구세주로 일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첫 선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정직하고 올바르게 일들이 처리되고 대소사가 모두 공의롭게 이루어집니다. 편견이 없고 불의가 없습니다. 차별도 없고 거짓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나라를 만드시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욕심 많은 인간들이, 군주들과 영웅들이, 재벌들과 군벌들이 자기네들의 권력과 부를 계속 불리기 위하여 세상의 나라를 다스렸기에 전혀 살맛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갖가지 추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자기들의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었으니 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과는 뻔한 사실입니다.
이들의 너무나 딱한 현실을 그대로 놔두고 보실 수 없어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게 자기의 영을 부어서 이 땅에 파송하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말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려 하심이라”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먼저 하여야 할 일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육신의 삶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마음이 찌든 사람들입니다.
침입자 로마의 씨이저는 그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의 것을 빼앗아 갔고, 같은 동족들인 유대교 지도자들까지도 그들을 못살게 만들었기에 백성들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저들과 같은 밥상에서 밥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가난한 자들이 한데 어울림에서 가난한 자의 기쁨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제까지는 무시만 당하던 저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정부가 압박했고 자기네 지도자들이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소외되고 허탈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도 자기네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서 저들은 기쁨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들의 상한 마음들이 조금 씩 조금 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상함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원죄성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원죄성은 탐심과 욕심에서 들어 납니다. 각가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악들이 인간에 의하여 저질러집니다.
서로 좀더 많이 갖겠다고 헐뜯고 싸우고, 그리고 더 많이 가진 자는 오만하고 거만하고, 못 가진 자들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고, 등등에서 인간의 원죄성이 두드러집니다. 원죄로 인하여 마음이 썩고 상한 심령들을 받아주심에서 예수님은 저들의 상함을 치유하여 주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여 주리라 이 약속 그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가난한 백성들과 죄인들을 그대로 받아서 치유하여 주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선언하시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돌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동시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하사 심판과 저주에서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원의 메시아는 오실 메시아가 아닌 이미 오신 메시아입니다.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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