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라(사40:27-31)
목사 주태근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고향에서 독서와 봉사로 그의 말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견학 왔던 학생들이 트루먼 전 대통령에게 다가와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공부도 잘했고 힘도 세었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대하였습니다.
“그 반대였지, 나는 눈이 나빠 안경 없이는 앞을 잘 분간 못할 정도였고 공부는 열등생에다가 누가 큰 소리 치면 벌벌 떠는 겁쟁이였지.”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 “나는 하나님을 믿었어. 그리고 성경 말씀을 늘 읽었지.” 열등생 겁쟁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안네의 일기」란 책으로 유명한 유태인 소녀 안네는 이차대전 때 암스테르담에 있는 집에 숨어서 지냅습니다. 독일 친위대원들이 유태인들을 수색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안네는 얼른 벽장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 기록한 일기가 바로「안네의 일기」인데 거기에 이런 대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우러러보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이 잔학함도 끝나고 평화와 정적이 세계에 깃들일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새 힘을 얻어 인생의 파도를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새를 만드셨을 때는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는 어느 날 하나님께 이렇게 불평을 합니다. "뱀은 독이 있고, 사자는 이빨이 있으며, 말은 발굽이 있어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데 저는 적으로부터 보호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새가 다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날개를 달고 보니 이전 보다 몸이 무거워져 전과 같이 빨리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야! 이 어리석은 놈아, 날개를 네게 달아준 것은 하늘 높이 날아 적을 피하라고 한 것이 아니더냐? "라고 야단을 쳤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현실에 불평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날개를 달아주었는데도 날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도리어 무거워졌다고 불평을 합니다. 무거운 짐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전도 없이 포기하는 인생을 삽니다.
구약성서 선지서 이사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장에서~39장까지는 전반부로서 심판과 정죄의 메시지이며, 40장에서~66장까지의 후반부는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후반부의 첫 장 오늘 본문 40장은 바벨론 칠십 년 포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구원의 손길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의 전반부의 내용은,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다는 내용이며 또 그렇게 잡혀 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초기에는 곧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하는 희망 속에서 억압과 고통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십년 이십년 삼십년 등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가고 칠십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긍지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뜻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고국을 생각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제사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 앞날이 도무지 난망(難望)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유 함을 얻어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하면서 슬럼프에 깊이 빠져 들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7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우리의 어려운 사정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하나님,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전혀 응답해주시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맥 빠진 소리를 막 내뱉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처음에 포로생활을 막 시작할 때는 머지않아 이 포로생활은 끝이 날 것이고 그러면 고향으로 돌아가 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들의 소원이 이루질 것 같지 않고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으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 순간 낙심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셨다. 우리의 이 원통함, 이 사정을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하신다. 그때부터 그들의 삶은 피곤해지기 시작하였고 일을 해도 재미가 없었으며 신앙생활에 대한 감격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절망의 자리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리로, 낙심의 자리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에 사는 우리들이 지금 불평하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도 이런 일들을 당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 성도들 중에 이런 상황 속에 빠져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출석하지만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그 마음속에 이미 좌절과 포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외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여호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마을에 큰 공장과 작은 공장이 있었습니다. 큰 공장은 주문도 많고 생산도 많고 동력도 풍부했습니다. 그 옆에는 작은 공장이 있었는데 주문도, 일거리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할 동력도 부족했습니다.
고심하던 작은 공장의 사장은 자존심을 뒤로하고 도움을 구하고자 큰 공장의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애로점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자기 공장과 큰 공장 사이에 놓여 있는 담을 좀 헐고서 큰 공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기계와 자기 공장의 기계에 벨트 하나만 연결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력을 좀 보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큰 공장 사장은 그 부탁을 쾌히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작은 공장도 훌륭한 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약한 우리도 강하신 하나님께 연결되기만 하면 새 힘을 반드시 얻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날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그라는 조그만 지방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런 루터가 최고의 지도자인 로마 교황과 맞섭니다. 그리고 교회권력을 잡은 많은 신부들과 더불어 맞서서 싸웁니다. 상대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상대가 되었습니다. 상대가 될 뿐만 아니라 마르틴 루터가 승리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앙망하는 가운데 새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는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싱을 발명한 싱거(Singer)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싱거라는 분은 무척 가난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던 차 그만 중병이 생겨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가정 경제가 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용기를 잃지 않고 낮에는 남의 빨래를 해 주었고, 밤에는 삯바느질로 남편의 병 수발과 가사를 꾸려 나갔습니다. 병중에서 남편 싱거는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삯바느질하는 아내에게 손쉽게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병이 낫자마자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싱거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여 마침내 그가 원하는 미싱을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계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대량 생산을 하여 금세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고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간곡한 신앙으로 이겨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될 수 없어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계속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외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독수리와 같은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독수리의 올라감 같이' 성경에 독수리를 설명한 곳이 여러 번 나옵니다. “독수리를 훈련함 같이, 독수리가 집 짓는 것 같이” 이렇게 독수리를 비유해서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수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높은 절벽, 누구도 올라갈 수 없는 위험한 절벽 속에다 둥지를 만들고 깃을 뽑아서 따뜻한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까서 그 새끼를 잘 키웁니다.
독수리는 원래 눈이 밝아서 바다위의 꼭대기에 있다가도 그 바닷가의 고기들이 놀면 총알같이 내려와 발로 채어서 고기를 가지고 둥지로 와서 새끼들의 입에 넣어주게 됩니다. 새끼들은 따뜻한 둥지 안에서 먹고 자고 놀고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커갈 때도 둥지 안에 있기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만 새끼가 자란다면 결코 힘 있는 독수리가 될 수 없습니다.
네스트 신드롬(Nest Syndrome) 즉 둥지 신드롬이라는 말이 새로 유행합니다. 그 둥지속 편안함 속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나중에 새끼는 자라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증후군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새가 자랐으면 나와서 날개를 치고 날아야 될 텐데 둥지에서 입을 열고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만 먹고 놀기만 하고 쉬기만 하고 좋다고 시간이 가면 날개가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둥지 신드롬이라는 것, 이 증후군이 무엇이냐 하면, 안일하고 편안하게 누워서 안정된 것만을 찾다보면, 퇴보되고 퇴화되어가는 증후군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렇게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미 독수리는 그 깃털로 따뜻하게 있던 모든 둥지의 털을 다 내버리고 가시둥지를 만들게 됩니다. 찔리고 고통스러운 둥지에서 상처를 입으면서 고난을 극복하여 이기는 자력의 힘을 키웁니다.
그리고는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붙잡아 물고 하늘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사정없이 새끼를 놓아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가 아우성을 치면서 떨어지는데 바닥에 부딪치기 직전에 어미 독수리가 채어가서 다시 올라가 또 떨어뜨립니다. 거기서 발버둥을 치고 떨어지면 다시 채어 올리고하며 이런 훈련을 계속해서 하면 이 둥지 안에 있던 새끼는 이러한 강 훈련을 통해서 "나도 날 수 있다. 나도 혼자서 공중을 날을 수 있다"는 확신과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이 새끼 독수리는 어미 독수리처럼 홀로 하늘 높이 날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수리처럼 날게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갑자기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새끼독수리처럼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강한 독수리가 되기 위해 고된 인생기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게 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수영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뒤, 자신의 피눈물 나는 훈련 과정을 글로 썼습니다. 한번은 그가 수영장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팔에 깁스를 하고 쉬고 있는데 코치가 자신을 수영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팔은 깁스를 했지만 발은 멀쩡하니 발로 수영 연습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영장으로 자신을 밀어 넣더니 아예 올라오지 못하도록 수영장에서 올라오는 사다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빠져 죽지 않으려고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발로 헤엄을 쳤습니다.
이렇게 한 15분쯤 지나자 코치가 그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는 당장 코치를 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자신은 발로 수영하는 진짜 수영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목숨을 건 훈련을 통하여 다시 거듭났고 결국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남 다른 큰 절망과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냥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새끼 독수리들이
공중에서 떨어질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습니까? 앞이 캄캄하고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 부모가 미워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끼 독수리는 이런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일생 동안 마음껏 창공을 날아다니며 하늘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새들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펴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서게 됩니다. 인생의 역풍이 도리어 더 높은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게 만듭니다. 감사할 줄 몰랐던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불평과 짜증으로 살던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의 날개를 펴면 은혜의 세계로 더 높이 올라갑니다. 이것이 독수리 날개 신앙입니다. 세상 풍파를 이기고 독수리처럼 더 높이 올라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독수리는 제일 높은 곳에 둥지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높은 데서 낮은 땅을 내려다보면서 삽니다. 항상 내려다보면서 먹을 것을 찾습니다.
서양 속담에 '버어즈 아이 뷰우'(Bird's eye view)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의 눈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땅에서 보지 않고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 모든 것을 살펴본다는 말입니다. 사실 공중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모든 것이 땅에서 보는 것과 달라 보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와 교통하는 사람은 독수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항상 상승기류를 타고 달라진 세계관 역사관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고난 중에 있습니까? 삶의 회의를 지니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독수리 날개를 가지고 힘차게 세상을 향해 돌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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