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4-11)-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0. 9. 11:15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4-11)

 

 

목사 주태근

 

두 천사가 여행을 하다가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거만한 그 집 사람들은 이 객들에게 저택에 있는 객실 대신 차가운 지하실의 비좁은 공간을 내주었습니다. 딱딱한 마룻바닥에 누워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가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을 메워 주었습니다.

 

젊은 천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그 다음날 밤, 두 천사는 아주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농부인 그 집의 남편과 아내는 그들을 아주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음식을 나누어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침대를 내주어 편히 잠잘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농부 내외가 눈물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득원인 하나밖에 없는 암소가 들판에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천사는 화가 나서 늙은 천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둘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부잣집 사람들은 모든 걸 가졌는데도 도와주었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려 했던 이들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늙은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우리가 그 저택 지하실에서 잘 때 구멍 난 벽 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 집 주인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자신의 부를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벽에 난 구멍을 봉해서 그가 금을 찾지 못하도록 한 것일세. 어젯밤 우리가 농부의 침대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고 왔었네. 그래서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키르기스스탄 양귀비 꽃과 천산(톈산)산맥

요즘 몸 짱, 얼 짱 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다이어트, 성형수술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사는 것 같습니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죽기도하고, 무리한 성형수술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사례들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화는 내면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지연, 학연, 혈연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심지어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자동차를 타고 있으며, 어디에서 사느냐를 따라 사람을 판단하려는 얄팍한 가치관이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어느 지파 출신이며, 어느 지방 출신이며, 어느 문하에서 공부했는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던 시대, 이방인들은 아예 개처럼 취급하던 시대에 그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살았던 한 사람이 본문에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런 모습을 한 사나이였습니다. 화려한 옷이나 외모와는 거리가 먼,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모습으로 등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입술을 통해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굉장한 말씀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권력자들과 윗사람의 눈치만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설교하지 못하는 설교자들과는 그 근본부터가 달랐습니다. 세례 요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던 그는 400년 전 선지자가 기록한 글에 나오는 형색을 그대로 하고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예언된 그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약대 털로 기워 만든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가죽으로 허리띠를 하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도 사람들이 권하는 고급 음식에는 관심도 없고, 그가 가지고 온 야생의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에는 관심도 없었으며, 그가 담대하게 외치는 것은 회개의 메시지였습니다.

 

강한 메시지, 불과 같은 메시지, 가슴을 파고드는 메시지로 심령들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 회개하라! 죄악 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리고 죄를 씻는 세례를 받으라!”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인기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어 예수님의 모습을 가리게 되지 않도록 그는 모든 화려함을 땅에 묻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그의 메시지의 주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목적도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온 세상에 소개한 이후에 그는 바람과 같이 사라집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보십시오! “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그의 이야기의 주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의 이야기 가운데 중심 주제는 무엇인가?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그는, “ 나는 굽혀 그의 신들 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주인의 신들 메는 보통 종들이 풀어 줍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분의 종의 자리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신을 비하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심을 온전히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드러내는 삶입니다.

 

날 때부터 꼽추인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꼽추라 창피하기도 했고, 부모님이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17세가 되던 해에 그 집에 수녀님이 찾아와서 그 수녀님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천주교 사경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천주교 사경회는 개신교처럼 찬송을 세게 부르거나 말씀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조용조용하게 하는 세미나 비슷한 것인데 강사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려오나 각각 감동을 받으시오. 과연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쓰시기를 원하시는가? 감동을 받고 다시 모입시다."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좋은 잔디밭과 벤치에 앉아서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꼽추 소녀는 더딘 걸음으로 나갔기 때문에 좋은 자리가 없어서 아무도 없는 쓰레기통 옆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러면서 ', 나는 어디를 가나 쓰레기구나' 하고 한숨을 쉬는데 그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꼽추 소녀가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쓰레기통을 왜 뒤집니까?" "캔이나 종이를 찾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무엇하려구요?" "이걸 가지고 가면 돈이 되거든요. 팔아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편찮으신데 약 사드리려구 그래요." 그 순간 꼽추 소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 같은 쓰레기 인생도 쓸모가 있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쓰레기 같은 꼽추도 병들어 누워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약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감동을 받고 그는 들어가서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나 같은 꼽추 쓰레기도 주님께서 쓰신다고 하시니 저 병들고 나약한 양로원으로 보내주세요. 나로 하여금 주께서 쓰시게 해 주세요." 드디어 '내가 너를 쓰겠다.' 이 음성을 들은 꼽추 소녀는 양로원에 들어가서 굽은 허리로 수많은 노인들의 병 수발을 들었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보다, 키 큰 사람보다 꼽추가 노인들을 섬기기에는 더 좋았습니다.

 

노인들을 섬긴 이후 꼽추가 들어가면 병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꼽추는 이미 꼽추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땅이 진동했습니다.

 

나의 삶에서는 얼마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가? 누군가에게서당신이 믿는 예수라면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당신이 가는 천국이라면 나는 함께 가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실패한 인생입니다. 말로, 행동으로, 그리고 삶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인가?

 

세례 요한의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마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 이 본문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굉장한 삶을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고 있는 종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를 칭찬하고 드러내서 그와 같은 인생을 살라는 교훈을 주려는 목적보다는, 모든 초점을 그리스도께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받으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이 땅에 구속 사역을 위해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그 놀라운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사역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시작하십니다. 말씀은그 때에라는 표현과 함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립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세상에 소개한 바로 그때에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인자가 다시 오실 때도 온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된 이후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역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온전한 섬김이 채워진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는 나사렛으로부터 갈릴리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인간 구원의 역사를 세례 받으심으로부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옴의 징표인 세례 사건을 통해, 모두가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인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렇게 온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드러나십니다. 주님이 온 땅에 드러나는 이 놀라운 사역과 함께 세례 요한은 자취를 감춥니다. 잠시 말씀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기록이 간단히 나타날 뿐입니다.

 

온 세상에 주님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면, 이제 그 임무를 온전히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주님을 향한 것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을 것입니다.“ 너도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아니라면 잘 산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칭찬하실 삶이 아니라면 진정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독일의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 18751965) 박사는 인류를 위한 봉사보다 더 높은 종교는 없다. 공동의 선을 추구함이 가장 위대한 신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의사도 없이 병들어 죽어 가는 아프리카인들을 보고, 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상가요, 신학자요, 음악가로서 당대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아프리카의 미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러한 헌신적 노력 때문에 그는 53세에 괴테 상을 수상했고, 76세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으며, 77세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금을 가지고 나환자촌을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90세에 세상을 떠날 때는 전 세계인의 존경 속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의 친한 동료 교수가 한번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생활이 보장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아프리카로 가서 고생을 하려고 하는가?”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물었습니다.“이게 뭐지?” “뭐긴 뭐야. 자네 손이지.” 그러자 그는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네. 이 손은 하나님의 손이야.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노릇을 하는 거야. 자네, 지금 나를 동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절대로 동정하지 말게. 나는 행복해. 보람이 있어. 나는 기쁘다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중요합니다.

 

숙명여자 대학교는, 구한말 때, 고종의 계비인 엄비가 세운 학교인데, 재단 땅은 모두 황해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단도 없고, 임자도 없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총장들은 4년 임기 동안 시간만 때우는 식이었고, 교수와 직원들은 나눠먹기 하는 식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학교는 쇠퇴하고, 건물은 퇴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남아있는 작은 명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경숙 총장이 부임하였습니다. 이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소망 교회 권사님입니다. 이경숙 총장은 학교를 예수님의 방식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고, 그러나 따뜻하고 자유롭게 운영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교수와 학생들의 냉소가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모든 난관을 이겨냈습니다. 학교가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국무총리로 오라고 해도 거절하고 오직 학교를 위하여 일했습니다.

 

그 동안 맨손으로 1000억 원의 후원금을 끌어들여 학교를 일신해 버렸습니다. 숙명여자 대학교는 미션스쿨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문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방식대로 운영하면, 모두 다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숙명여자 대학에는 노조와 한총련 조직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때에, 하늘 문이 열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시며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내 기뻐하는 자녀"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하늘이 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