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설교원고

가르침을 계속하라 (딤전4:11-16)-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4. 10. 10:52

가르침을 계속하라 (딤전4:11-16)

 

목사 주태근

 

어느 시골의 총각 선생님이 출근길에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징검다리를 잘못 밟아 개울에 빠져 신발과 바지가 물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올라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가 어머니에게 다시 되돌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은 바로 놓았느냐?”아들은 대답합니다.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어머니가 꾸중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선생이 되겠다고 그러느냐? 얼른 가서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리고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 야속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백 번 생각해도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아들은 얼른 가서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돌아 왔습니다. 이후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생활에 임하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 헨리(O. Henry)의 작품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만 데리고 살았는데, 직장에 갔다 오면 신문만 보고 딸아이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면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함께 놀자고 해도 놀아 주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해 주니까, 그 소녀가 점점 자라서 불량한 짓을 하고 거리의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소녀가 죽어서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 같은 사람은 여기에 못 들어 갈 것이다.” 라고 말하니까,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베드로에게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그 소녀를 들어오게 하라. 그러나 너무 바쁘다고 해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소녀의 아버지 같은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라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습니다. 교육은 인생들의 가장 소중한 정신유산입니다.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은 말하기를 "교육은 국가를 만들 수 없지만, 교육 없는 국가는 반드시 멸망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백 년 전쯤 간도의 화룡현으로 이주한 분들이 "동가팡즈"라는 마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씨 성을 가진 중국인이 소유한 땅이어서 동가팡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이 분들은 땅 주인으로부터 토지를 사들여 마을 이름을 명동촌(明東村)이라고 바꿨습니다. "동쪽의 새 마을"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들 짐작합니다.

 

토지를 개간하는데 그 가운데 제일 기름진 땅은 학전(學田)이라고 했습니다. 가르칠 학, 밭전, 그 밭에서 나는 수입은 다른 데 쓰지 않고 자녀들 가르치는데 사용했습니다. 낯선 땅에 이주해서 개척의 삶이 말이 아닙니다.

 

나오는 수입으로 먹고 사는 데도 바빴을 텐데 그러나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른 일에는 쓰지 못하게 하고 가르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명동학교입니다. 교장은 김약연(金躍淵)이라고 논어를 만 번이나 읽었다는 실학파 유학자입니다.

 

그런데 새 교육을 담당할 선생님이 없습니다. 마침 선생님 한 분이 오셨는데 정재면(鄭載冕)이라고 숭실학교와 상동교회에서 세운 청년학원을 졸업한 예수 잘 믿는 청년입니다. 이 분을 교감으로 모시려는데 이 분이 조건을 내걸기를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이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 내가 이 학교 교사가 되어 가르치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을의 지도자들은 주로 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명동교회,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훗날 유학자인 김약연 선생이 목사가 되어 명동교회를 담임했었습니다. 그 마을이 복음화되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많은 신앙지도자, 민족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시인 고 윤동주 선생과 작고한 고 문익환 목사님 모두 그 마을 출신들입니다. 가르침으로 인한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말씀에서 가르침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11절에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3절에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16절에 ""가르침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가르침은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당시 디모데가 목회하던 지역은 에베소지방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영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영지주의가 교회에 깊숙이 들어와 성도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영지주의란 영육이원론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즉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극단적인 쾌락주의나, 극단적 금욕주의에 빠지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육체는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에베소교회의 형편을 잘 알던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도들이 이단사설에 현혹되어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가르침의 사역을 잘 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교사에 대한 경계로서의 가르침의 사역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에 있어서 가르침의 사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은 예수님의 명령이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수행할 교회의 과업입니다. 오늘 우리가 총회에서 정한 교사주일을 지키는 것은 교회에서의 가르침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가 자세히 살피면 훌륭한 교사상을 배우게 됩니다. 아니 모범적인 지도자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 같이 배우는 자 이면서도 가르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도이면서 배우고, 직분을 통하여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또한 직분을 가지지 않았어도 가정에서는 가르침의 자리에 있는 부모로서의 교사입니다.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면서 가르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사주일은 우리 모두를 위한 주일입니다.

 

교회는 교육적 사명을 중시해야합니다. 가르침의 사역을 잘 감당할 때 보다 성숙한 교회로 자라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가르침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내 자신이 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본문 12절에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합니다. 가르침의 가장 큰 효과는 바로 내가 먼저 그렇게 사는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서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도, 사랑과 믿음 그리고 절제하는 경건 생활에서도 본이 되어야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본을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이 말과 행동으로 그렇게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아름다운 사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먼저 세상을 이끄는 등대들이 되어야 합니다. 찰스 콜슨이 기록한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오늘날 교회를 다니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갖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는 그 책임은 단연코 그리스도인들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제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에 대하여 오해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한 교회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물리학자는 교회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당신은 이름난 물리학자로서 바쁘실 텐데 왜 교회 청소를 하고 계십니까?”하고 묻자, 그는 내 안에 계신 그분이 청소하게 하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당신은 어떻게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셨습니까?” 하고 묻자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물리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내세우는 철저함과 작은 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그 모습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가르침은 지식위주의 교육이 아닙니다. 생활의 교육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스스로 본이 될 때 가르침은 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르침의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권위가 있어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2절에서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그것을 조심 없이 말며...""라고 권면합니다.

 

교육이 권위를 상실하면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됩니다. 특히 에베소교회에서의 디모데는 젊은 나이로 교회에서 지도적 권위를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답게 교사답게 영적권위를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영적권위는 맑은 영성에서 나오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22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했습니다. ‘귀히 쓰이는 것도 있고 천히 쓰이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하나님이 우리의 그릇 쓰임새에 따라 귀하거나 천하다고 하시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판단기준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다음 구절에서 알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22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이란 디모데후서 214-19절에 나오는 말다툼, 망령되고 헛된 말, 경건치 아니함, 그릇된 교리 좇음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한 그릇에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함께 있으면 깨끗한 것마저 같이 더러워지듯이, 우리의 마음은 온전히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이 요긴하게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권위는 바로 자신을 깨끗한 영성으로 관리하는 삶에서 흘러나오는 힘과 능력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지도자로서 영적권위가 있어야 가르침의 사역을 올바로 감당하게 됩니다. 맑은 영성을 소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또한 가르침의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인간을 구원하는데 목적을 두어야합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이르기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했습니다.

 

가르침의 사역의 주된 목적은 인간구원입니다. 구원이란 폭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한다는 뜻도 있으며, ‘바른 인간이 되게 하여 그들의 삶을 구원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입니다.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성경교육의 목표 역시 인간구원입니다. 바른 인간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작은 동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열네 살 된 윌리암이라는 소년은 동리에서 평판이 대단히 나빴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도를 할 수 없었던 거칠고 못된 소년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많은 학생들에게 점차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학교 당국에서도 큰 문제였습니다. 그때에 새로 부임해 온 교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새 교사는 윌리암 소년에 대한 말을 듣고 그를 한 번 지도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모두 말렸습니다. 공연히 봉변이나 당할 터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사는 윌리암 소년을 차근차근 관찰해 가면서 그의 형편과 성격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낙인이 찍히고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는 윌리암 소년을 친절과 이해와 끈기로 지도해 갔습니다. 교사는 못된 그 소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참된 자존심과 포부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 교사는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뿌려진 씨앗이 싹을 트고 땅에 뿌리를 내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나쁜 버릇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잠을 안 자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등이라는 명예로 졸업을 했습니다. 윌리암은 계속 법률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결국 미국 대법원의 부판사가 되었습니다. 윌리암은 뉴욕 주의 주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미국의 국무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몹쓸 인간으로 점 찍혀 버림받았으나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 한 교사의 지도로 이처럼 위대하고 뜻있는 일생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가르침의 사역은 세상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감당해야할 교회의 사역입니다.

 

뉴저지의 한 일간 신문은 최근 실시한 종교의식 조사를 통해 많은 베이비 부머(Baby-boomer) 1950년대 미국인이 아이를 많이 낳던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는 주된 원인은 신앙보다도 자녀에게 필요한 교회 교육의 가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도덕 부재와 윤리관이 혼탁된 이 세대에 아이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킬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덕교육의 장소로는 교회 밖에 희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보는 눈은 도덕을 통한 인간교육이지만 교회의 눈에는 신앙교육을 통한 인간변화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교회가 이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교회는 가르침의 사역을 계속해야합니다. 특별히 신앙교육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독교교육은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그리고 흩어진 모든 교회에 위탁한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주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