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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늪에서(왕상19장 1절 ~ 8절)-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4. 24. 13:36

우울증의 늪에서(왕상191~ 8)

 

목사 주태근

 

최근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자살입니다. 이 나라 안에서 연간 200만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한해 23명이 자살 한다는 통계입니다. 48분마다 한명 꼴로 하루 30명이 자살을 합니다. 한국 자살 예방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국민의 35%가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고, 155만 명이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해 본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18% 가까운 사람 중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중 20%는 충동적으로 자살한 사람이지만 나머지 무려 80%가 우울증을 거쳐 자살에 이른 경우라는 통계입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인류를 괴롭히는 위험한 질병 가운데 4번째가 바로 우울증이라는 질병입니다. 2020년이 되면 사망원인의 2번째가 우울증이 된다고 말합니다. 통계적으로 지구상에는 35천만 명의 우울증 환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10명 가운데 1명이, 여자는 5명 가운데 1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매우 심각한 질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청소년기에도 우울증이 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내 고등학생의 70%정도가 우울증을 경험하였으며, 그들 가운데 30%정도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가운데 약 8%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부들의 경우에는 산후 우울증이 있으며, 중년기에 접어들면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노년에도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이와 같이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무엇입니까? 감정적인 침체상태가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침체 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무줄을 잡아 당겼다 놓으면 원상태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자꾸 잡아당기면 그때는 고무줄 자체가 늘어나서 줄을 놓아도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바로 이런 현상과 같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장기적으로 침체되어 자신의 힘으로는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 정서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우울증이 생기는 원인의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첫째, 기질적인 요인입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심각한 스트레스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뇌 속의 신경전달 호르몬인 세로토닌입니다. 신경세포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충분히 작용하지 않으면 우울증 증상이 나타납니다.

 

둘째, 환경적인 요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에 우울증상이 나타납니다. 열심히 일한 직장에서 갑자기 밀려났을 때도 우울증상이 일어납니다. 고부갈등이 심하거나 부부관계가 좋지 못할 때도 나타납니다. 자기가 정해 놓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저히 이룰 수 없을 때 나타납니다. 반대로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도 나타납니다. 환경적으로 자기가 견딜 수 없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우울증상이 나타납니다.

 

셋째, 심한 상처로 인한 요인입니다. 대부분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거나, 성적으로 수치심을 당한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시절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그러다보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지고, 우울증에 쉽게 빠집니다.

 

넷째, 죄책감으로 인한 경우입니다. 특별히 신앙인의 경우에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의 고통과 함께 죄의식이 따라옵니다. 이런 양심의 고통을 빨리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결국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학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감정을 침체하게 만드는데 우울증 증세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날 여배우 이은주 씨의 자살 원인은 우울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씨는 우울증과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분당서울대병원서 치료를 받았으며, 가족과 동료 배우들에게도 우울증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전합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홍콩의 톱스타 장국영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습니다. 퓰리처상과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한 미국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론(William Styron)은 자신의 우울증 투병기 보이는 어둠(Darkness Visible)’에서 우울증을 자살에 이르는 샛길 없는 통로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체리듬이 있으며, 우울증은 바로 감정의 리듬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병입니다. 이렇게 감정의 리듬이 잘못 되어 우울한 기분이 몇 주 동안 지속되고 점점 심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된 상태를 "우울증" 이라고 진단합니다.

 

우울증의 증상을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경한우울증의 경우는 정서적으로 우울하며 슬픈 기분을 느낍니다. 자신감이 결여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습니다. 불면증이 있으며 항상 피곤하고 모든 일에 재미가 없고 집중도 되지 않습니다. 대인관계가 귀찮고 어려우며, 머리속이 꽉 막힌 듯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식욕이 없고 체중이 줄고 가슴이 답답하며 두통, 소화불량, 변비, 쇠약감 등이 흔히 동반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이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전혀 못할 정도는 아니고 뭔가 평소와는 달리 현저히 저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한 우울증의 경우는 경한 우울증과 증세가 비슷하지만 정서적 고통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약 15%에서 정신증적 증상인 망상이나 환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나 정황이 어려워질 때 침체를 경험하기도 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사업이 어려워질 때, 직장생활이 불안할 때, 자신의 삶의 길이 불투명하고 불안해 보일 때,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며, 좌절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때의 마음은 숲에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것처럼 슬픈 마음이 마음속에 우거져서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알지 못하며 모든 관계가 단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우울상태를 다른 말로 영적침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엘리야는 참으로 멋지고 통쾌한 사역을 이룬 선지자입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참으로 신나는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거대한 국가, 민족, 왕을 상대로 싸워서 이깁니다. 갈멜산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승리하고 우상 숭배하는 모든 선지자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기도했더니 비가 오지 않았고 36개월간이나 내리지 않던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그는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승리의 감격이 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심한 우울증 증세입니다. 분명히 갈멜산에서 보았던 예전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지금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지칠 대로 지쳐서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밑바닥을 헤매며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지금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야고보는 엘리야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희망과 의욕에 넘쳐서 열심히 살고 있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며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를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헌신했는데도 이 현실은 도저히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충성했는데 문제는 아직도 상존해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물으면서, ‘! 이제 나 홀로 남았구나!’하는 절망감에 빠집니다. 일종의 피해주의입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별것 아니다. 나는 초라하다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적인 침체에 들어가면 이렇게 자기 한계에 부딪치는 처절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울증 역시 영적침체입니다. 우울증과 영적침체에 빠졌는지 어떻게 판단합니까? 다음과 같은 상태입니다.

 

무언가 모르게 도망갑니다. 사람을 피합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심통이 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탓이 아니라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계속 미워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탓이라고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기도하기조차 싫어집니다. 말씀 펴서 읽는 것도 아주 귀찮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동행하신다고 하는 인지 의식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려고 하는데 그 위로도 받기가 싫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게 되고 알지 못하는 죄책감이 자기를 붙잡아 매고 자신은 죄책의 철창 속에 가두어 둡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조차 마음에 통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의욕이 사라집니다. 기대가 없어집니다. 소망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지금 어떠하십니까?

 

일생을 사는 동안 세상 사람은 누구나 엘리야가 경험했던 로뎀나무 아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정도와 깊이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살아 있는 이상 로뎀나무 아래를 전혀 경험하지 않고 살 사람은 없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허탈의 경험입니다.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모든 것을 잃고, 버림 당한 자의 고뇌, 사랑하던 친구를 잃고, 사랑하던 부모 형제를 잃고,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작스러운 경제 파동으로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여 그 많던 재산을 다 잃고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은 자기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며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는 경험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 (7:24)”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은 유명한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며, 회막 문 앞에 엎드렸던 모세, 그가 회막 문 앞에 엎드리면서 나약한 자신을 보며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던 경험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은 전후좌우가 꽉 막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이 완전히 막혀버린 막막함의 경험입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살기가 등등한 애굽의 군사들앞으로 가도죽고 뒤로 가도 죽을 이스라엘, 그들이 겪은 진퇴유곡의 경험이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입니다.

 

의사로부터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선고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이의 경험입니다. 우리 인생은 예외 없이 형태와 크기는 다르지만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망과 좌절과 절망감과 허탈감과 패배감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때가 많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로뎀나무 아래의 경험을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떻게 로뎀나무 아래서 일어설 수 있는가를 생각함이 현명합니다.

 

삼화실업의 김현식 사장의 간증입니다. 강원도 태백 출신인 그는 서울에 올라와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2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아 40세가 되었을 때 공장을 차렸습니다. 오랜 직장생활로 인한 경험과 노하우로 사업은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직공도 많아지고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뜻밖의 전기누전으로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1차로 화재를 당하고 2, 3차로 화재를 당한 후에 잘 나가던 공장이 문을 닫게 되고 부도가 나서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 절망에 빠져 죽음밖에는 택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 이상 재기할 기력도 없고 가능성도 없자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침체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가기 위해 청량리 역으로 갑니다.

 

그런데 역에서 두 팔과 다리가 없이 구걸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두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저 사람도 살고 있는데 사지가 멀쩡한 내가 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누군가가 1억을 준다고 하면 과연 내 팔을 팔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계산하니 4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사업을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여 연간 매출 120억 원의 튼튼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우울증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와 인생을 승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울증과 침체는 능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엘리야 역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도피했던 엘리야가 다시 일어납니다. 새롭게 회복되는 역사를 체험한 다음에 다시 더 큰 사명을 가지고 사역의 현장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엘리야가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그의 삶의 초점을 맞춥니다. 자기의 목숨을 취하시기를 기도했던 엘리야가 이제는 자기의 후계자를 삼기 위해서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절망과 피곤함과 지친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는 삶을 살 때, 지치지 않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주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31). 아멘.

 

 

 

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