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설교원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빌2:5)-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5. 8. 11:31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2:5)

 

 

목사 주태근

미국 동부의 유명한 성공연구가인 지그 지글러(Zig Ziglar)는 인간의 잠재의식이 한 사람의 성공과 성숙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실험을 통해서 입증하였습니다. 지그 지글러의 실험 대상은 벼룩이었습니다. 그는 벼룩을 병에 담아 놓고 뚜껑을 덮어놓았습니다.

 

벼룩의 점프력은 너무나 뛰어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생명체도 자신의 신장에 비례해서 벼룩만큼 높이 뛰어오르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 만큼 높이 뜁니다. 지그 지글러가 병에 담아 놓은 벼룩도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병 안에서 점프하여 뚜껑에 이르기까지 뛰어올랐습니다.

 

병은 꽉 막혀있기에 그 안에 있는 벼룩이 한참을 뛰어올라도 병 밖으로 도무지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벼룩이 생각을 하기를 ", 내 능력은 병뚜껑까지로구나"하고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 같습니다. 이쯤 되었을 때에 지그 지글러가 벼룩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이 뛸 수 있었던 벼룩이 병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벼룩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병뚜껑 높이로 제한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 벼룩은 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환경과 상황에 그만 갇히고 만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풍선형, 황소형 그리고 독수리형 이 세 가지입니다. 풍선형은 허망한 생을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사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며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황소형은 진흙탕에서 싸움하는 황소같이 세상에서 싸움만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목적도 없고 의식도 없는 인생입니다. 독수리형은 도전적인 자세로 삶을 사는 자로서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며 앞으로 무한히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생은 독수리형 인생이 되어야 삶을 승리합니다.

 

새 중의 최고의 새는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독수리입니다. 거기에는 독수리의 독특한 훈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새는 나무 꼭대기나 나무속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보통 절벽 위에 집을 짓습니다. 독수리는 집을 짓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나뭇가지를 올려놓고 바닥에는 뾰족한 돌이나 가시 같은 것을 놓고 부드러운 천 같은 것을 깝니다. 새끼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라면 그것을 치워버립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리고 독수리는 시간이 지나면 새끼 독수리를 절벽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새끼 독수리는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퍼덕입니다. 그러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날개근육에 힘이 생깁니다. 그 훈련 과정에 살아남은 독수리는 태양을 향해 솟구쳐 날아오르는 최고의 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한한 성장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성장의 목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인생의 새로운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임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기 마련입니다. 유전적으로 닮기도 하지만, 부모의 행동을 어려서부터 보았기에 그대로 따라하니 닮기 마련입니다. 김동인이 쓴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단편의 남자 주인공은 결혼 전에 매춘부를 많이 상대해서 성병에 이미 걸려 있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기 자식을 낳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던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그 아기를 들여다보았지만, 아무 곳도 닮은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닮은 구석이 꼭 한 군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그의 가운데 발가락이 가장 길었는데, 그 아이의 발가락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김동인이 쓴 이 단편소설의 제목은 "발가락이 닮았다"입니다. 자기 피가 섞이지 않았기에 닮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이의 몸을 구석구석 뒤져서 비슷한 곳을 찾은 것이 고작 발가락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독신으로 사셨다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일까?

 

예수님의 초상화처럼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기르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일까? 물론 이렇게 한다고 예수를 닮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그의 인격을 닮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 온유와 겸손, 섬김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품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도록 훈련시키십니다. 고대 희랍의 훈련장에는 뛰어난 무사들의 경기 모습을 그린 커다란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그 아래에 이런 문구를 써 놓았습니다. "주목하라! 모방하라! 반복하라!" 고대의 무사들이 투기장에 나가서 패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고된 훈련장에서 땀을 쏟으면서 육체적인 건강, 힘의 보존과 발산을 위한 기술연마와 전략개발에 생명을 걸었으며, 육체적 한계 극복을 위해 이렇게 적용하는 훈련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 원리를 적용하여 훈련을 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을 본받는 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을 주목하라! 주님을 모방하라! 주님의 일을 반복하라!" 영혼에 유익한 것을 목표로 삼아 날마다 믿음을 갖고 바라보게 되면, 건강하고 값진 위대한 열매를 지향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말과 행동이, 생각과 습관이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의 귀에 속삭입니다.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하라." 아니그 정도로 만족해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우리의 영적성장을 방해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이런 유혹의 속삭임에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속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더 이상 세상의 물결에 떠밀려 가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부단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비록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속에 다가오시는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볼 수 있기에 계속 전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예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의 시간을 훈련의 과정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결코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주님을 닮아가는 훈련을 통과해야합니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조건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선수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과학적으로 신체적인 조건을 분석합니다. 거기에 맞는 영양섭취를 합니다. 신체적인 체력을 담당하는 피지컬 트레이너가 있습니다.

 

정신집중을 훈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있어서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여 최적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잘 훈련된 선수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신앙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육과 영의 전 분야에 이르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을 받지 않으면 평상시에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위기가 닥쳐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무너지게 됩니다. 훈련은 자기성숙을 위한 과정입니다.

 

얼마 전 아시아나 여객기의 아찔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주먹만한 우박이 갑자기 쏟아져서 비행기 앞부분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레이더와 자동항법장치가 고장이 났습니다. 유리창이 금이 가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련한 조정사는 조종관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전환한 다음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동체를 약간 기울여서 옆을 보면서 세 번 착륙을 시도한 끝에 무사히 착륙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200여명의 목숨이 위기에 처했었는데 노련한 조종사에 의하여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위기에서 노련하게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믿음으로 조정하고 믿음으로 운전해 가려면 반드시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신앙도 훈련의 연속입니다. 기도의 훈련, 예배의 훈련, 영성의 훈련 등을 받아야합니다.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훈련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한 인도 선교사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인도에서 한창 선교 활동을 하던 선교사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사 부부는 아이가 뒤틀려진 기형적인 발을 갖고 태어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장애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48시간 이내에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가 있는 곳까지는 무려 800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아기의 작은 발을 교정하는 병원까지 가는 데에는 무려 한 달이 꼬박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결과, 발을 고치는 데에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픈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아야했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돌아오는 날 정형외과 의사는 선교사 부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병 하나를 주며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아이 아버지!, 힘든 일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이 발이 수술 후에 예전처럼 뒤틀어지지 않게 하려면 반대쪽으로 다리를 굽혀야 합니다."

 

이후로 선교사 부부는 참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장거리는 아기를 붙잡아 다리를 병위에 올려놓고 반대로 굽으려는 다리를 최대한으로 굽혀야 했던 것입니다. 아이가 자지러지듯 놀라서 울부짖습니다. 부부는 서로 그만두자고 하기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부부는 아이가 야구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테니스 코트에서 사촌과 함께 복식 경기에서 우승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는 약간씩 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걷고 뛰고 하는 데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습니다. 저는 모습도 거의 표가 나지 않았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훈련이라는 것은 늘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왜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와 같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바른 삶을 살 수 있고, 온전한 인격자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원치 않는 고난의 훈련에로 우리를 이끌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후에는 우리 자신이 나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욥기 2310절 말씀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그렇습니다. 연단의 과정을 통해 정금 같은 인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훈련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다운 신앙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은세공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은이 도대체 깨끗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세공업자의 대답은 제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고 압니다.”라고 답합니다. 은을 정련하다 보면 은에 자기 얼굴이 비치는데 그 때가 바로 100% 깨끗하고 순수한 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깨끗할 때 우리의 심령이 깨끗할 때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질 때 우리 믿음의 불순물이 빠져버리면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편을 연구한 학자 중에 유명한 분이 고 김정준 박사님입니다. 전 한국신학대학교 학장까지 하셨는데 그 분은 지난날 결핵을 앓았습니다. 어느 정도 심했냐면 마산의 결핵요양원에서 결핵이 너무 악화되어 죽었다고 시체실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체실에 안치했는데 염하기 전에 살아난 겁니다. 거기서 다시 재기해서 목회자가 되고 시편을 연구하고 학장까지 하신 분입니다. 김정준 박사님 간증하신 말씀을 젊을 때 들었는데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자기는 결핵으로 시체실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겁니다. 그 죽음의 입구까지 가서 자기는 자기 영혼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태풍 속에서 강하게 하시고 맑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훈련하셔서 하나님께 합당한 영혼으로 만드시는 그 손길 그 섭리와 은혜를 감사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음이 거기까지 가야 되는 겁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인텔 인사이드는 제품에 인텔의 성능이 발휘되는 제품이 들어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엇이 들어있어야 할까? 바로 예수 인사이드입니다. 인텔 제품이 아닌 것을 두고 인텔 인사이드라 할 수 없듯이 우리 안에 예수 없이 예수 인사이드라 말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진정 예수님이 살아 있는가? 내 안에 예수님의 능력이 살아 움직이는가? 우리는 날마다 질문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훈련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4:15)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