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고후 13:13)
주태근
영국에서 발간되는 텔레그래프라는 잡지에 실린 2002년 5월 23일자 기사내용입니다. 부스라(Busra)라는 7세 된 아이에 대한 보도입니다. 이 아이가 세살 때에 라스무센 신드롬(Rasmussen syndrome)이라는 희귀한 뇌질환을 앓았는데,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 대학병원에서 절반의 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언어를 통제하는 신경이 있는 좌뇌를 수술로 모두 제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의사는 그 아이가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아이가 편도선염으로 로테르담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깜짝 놀랄 일이 아이에게 일어났습니다.
좌뇌가 재거되어 언어중추를 상실한 채 절반의 뇌만 가진 이 아이가 자기 여동생에게는 화란어로, 어머니와는 터키어로 유창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담당의사의 말로는 완전히 없어진 좌뇌의 역할을 우뇌가 대신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 일로 담당의사는 자기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배워 알고 있던 신경학의 모든 이론들을 다 잊어버리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 신비롭고 놀라운 기적은 의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이성과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고 증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영적세계의 원리는 더욱 신비합니다.
올림픽 100m 경기에서 100m 거리를 10초에 주파하여 우승한 육상 선수가 쌀 20kg을 어깨에 지고도, 다시 100m 거리를 전과 동일하게 10초에 주파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과학의 세계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빛의 빠르기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즉 300,000km를 돕니다. 그리고 전파의 속도도 역시 빛과 동일하게 1초에 300,000km/sec입니다. 빛과 전파는 구성요소가 서로 다릅니다. 빛은 파동(wave)과 입자(particle)로 구성되어 있고, 전파는 오직 하나인 파동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입자가 없는 파동만인 전파의 속도와 파동과 입자를 짊어지고 있는 빛의 속도가 완전히 똑같다는 증명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이 파동만으로 된 전파의 속도와 파동과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빛의 속도가 완전히 동일할 수 있는가?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통하여 증명한 과학적 원리입니다. 빛을 구성하고 있는 파동과 입자의 상태는 파동이 어떠한 경우에도 입자를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도 입자에게 전혀 방해받거나 간섭받을 수 없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입자도 파동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도, 간섭받을 수도 없는 자신만의 절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분리할 수 없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하나의 상태 즉 마치 단일 원소만의 상태처럼 존재한다는 증명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구성하고 있는 파동은 빛의 또 다른 하나의 구성 요소인 입자로부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므로 파동 자신만의 고유 속도인 300,000km/sec로 진행하는 것이며, 이때에 입자는 파동을 방해할 수 없으면서도 파동과 분리할 수 없는 단일 원소의 상태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입자도 파동과 완전히 동일하게 진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동과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빛이 파동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파와 똑같은 속도를 내게 됩니다. 상호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 똑 같은 속도를 내며 활동합니다. 이것이 빛의 존재방법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성경은 하나님을 일컬어 ‘빛’(요일1:5)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왜! 빛으로 비유했습니까? 빛이 하나님의 존재방법을 그대로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같은 존재임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 자신의 속성과 일치하도록 빛을 설계하셨고, 이 설계대로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주만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자연법칙은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법칙이기에 자연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성경 역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1장20절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자연법칙이 하나님의 법칙이기에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는 영광의 계시라는 말입니다. 자연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이신 것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이 되고, 성령이 성부가 되기 때문에 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거하시고 성부와 성자가 성령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십니다. 우리들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세 분 하나님의 세 인격이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므로 한 하느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세 분 하나님은 빛의 파동과 입자처럼 서로가 제한할 수도, 제한 받을 수도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인격과 독립적 객체로 또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분 하나님은 빛이 파동과 입자의 분리할 수 없는 단일체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십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가 방해하거나 방해받을 수 없는 자신들만의 인격과 몸을 각각 갖고 있으면서도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빛이 되십니다.
세계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삼위(三位)로 계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聖父), 아들 하나님(聖子), 성령 하나님(聖靈) 세 분이시나 ‘한’ 하나님이시며, ‘한’ 하나님이시나 ‘세’ 분으로 계시며 일하십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란 단어는 성경에는 찾아볼 수 없으나, 교회는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三)’위(persons)가 ‘한(一)’하나님이신 진리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란 말은 성경에 있는 내용과 교회의 신앙을 정리해서 3세기의 터툴리안이라는 신학자가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이 삼위일체론이 형성된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동기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에 근거합니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이면서 하나님인가? 처음에는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이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본래 하나님인데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이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할 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제자들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聖子)이시요, 그리스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의 고백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라고 했을 때, 전통적인 유일신 신앙에서 벗어나 「두 분의 하나님」 즉 이신론(二神論)을 섬기는 오류를 범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전통적인 유일신 신앙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가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으로 그들은 또 다른 신을 경험합니다. 바로 오순절에 찾아온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삼신(三神)신앙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체험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논리적으로 확실히 정리할 능력은 없었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같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렇게 믿고 고백하며 체험한 하나님의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신관은 논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초기 기독교성도들의 신앙고백에서 시작된 교리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후세의 신학자들이 희랍철학의 힘을 빌어서 논리적으로 정리해 나가게 된 것이 삼위일체론입니다. 이 교리는 교부학자 터툴리안에 이어서 오리게네스와, 아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신학자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리한 이론이 가장 성경에 가까운 최초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본질상 같은 분이지만 세 분이 고유한 인격과 특성을 가지고 존재하면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세 인격」(three persons)과 「하나의 본질」(One substance)을 가지신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고유한 인격성과 주체성을 가지지만 사람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영원한 사랑과 성령으로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삼위일체신앙은 성경에서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하나님이십니다. 구약성경 첫 번째 책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기록, 1장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삼위의 하나님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완전히 동감하여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위가 서로 독립하면서 일체가 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그렇게 우리는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할 때 그것이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일 때는 정확한 표현이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삼위를 지칭하는 말로서는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실례를 봅니다.
구약성경에 기술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경 신명기 6:4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말했습니다.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는“하나”라는 표현은 삼위일체론에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하나”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참 신이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중동 지방에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 모든 신들은 거짓 신들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이 표현 때문에 하나님의 세 분 되심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세 분되심을 뚜렷하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책장을 열게 되면 세 분 되신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나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16-17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세례 받으신 장면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성경에 계시된 대표적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고 있고, 하늘로부터 성부 하나님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시고,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의 모습을 뚜렷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성경 기자들은 동등하게 세 분 하나님을 나란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 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아버지 하나님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동등하게 언급하고 있고, 그리고 성령이신 하나님을 동등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세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바로 이 세례를 베푼 자리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이 형성된 삶의 자리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요20:28)이라고 기술하였고, 사도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라고 세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을 균형 있게 고백해야 합니다. 간혹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삼위 하나님 중에 어느 한 위격에 치우쳐 있다든지, 혹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제일주의로 치닫는 신비주의적인 신앙인들도 있고, 역사 속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사회 참여를 주장하면서도 신자로서 기본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교리에는 무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의 은사와 구원론은 확실한 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미약하여 역사에 대한 참여 등 창조질서 보전에 대해서 소극적이거나 아예 무지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 없는 중요한 신앙고백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잡힌 신앙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가 하나 되신 것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고, 우리도 이 하나 됨을 본받아 산다면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아름다운 팀웍을 이루어 조화 있는 통일성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삼위일체가 되어 오늘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0-11) 아멘.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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