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시리즈

성경의 영성(딤후3:15-17)

주 바나바 2019. 10. 25. 20:09


성경의 영성(딤후3:15-17)

 


주 바나바 목사

근대 이후 성경의 권위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이후 모든 권위는 이성의 심판 앞에 서야 했습니다. 이성에 대한 강조, 역사의식의 대두, 비판적 사고는 학문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사회제도와 정치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21세기, 주어진 권위를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18세기 이후 약 200년 동안 성경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입니다. 현대인은 자율적 비판의 시대에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도 타율적이고 맹목적인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원하고, 권위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기독교인은 그렇게 믿습니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가 도전받을 때 답답하지만 침묵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함구해야 합니까? 바른 신앙도 아니며 바른 신앙자세도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성경의 권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권위를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독교가 경전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자연종교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자연종교는 인간의 이성이나 자연을 통해 에게 도달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찾고 신을 만들어 갑니다. 이렇게 이성을 통해 도달하려는 시도는 이신론으로 나타났고, 자연을 통해 도달하려는 시도는 범신론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신론은 철학의 형태에서 자주 보이고, 범신론은 원시종교에서부터 현대의 다양한 종교적 형태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기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와도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집니다. 불교는 인격적인 신 개념이 약하고, 모든 사람이 각성을 통해 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계시에 대한 기록인 성경을 경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계시는 열어서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주는 계시종교입니다. 인간이 진리를 얻기 위해 해탈을 하거나, 각성해서 깨닫거나, 대자연의 이치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이 계시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의 권위가 있습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든, 학문이든 각기 진리의 타당성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에 의존합니다. 다른 어떤 기준이나 근거로 성경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를 계시종교, 혹은 경전종교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 대한 권위는 결정적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포기하는 순간 기독교의 믿음인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의 메시아 됨, 성령님의 임재하심, 그리고 부활신앙도 모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실제로 성경의 권위는 기독교 초기부터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동원했습니다. 매 시대는 그 시대의 도전 앞에서 성경의 절대성을 주장했습니다. 교회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가 교회에 의존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교권이나 일부 성직자가 성경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비롯되는 근거는 하나님 자신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그의 선하신 섭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 성령의 은총, 새로운 공동체, 그리고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일방적으로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에 의하며, 다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의 권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권위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종교적 권위가 아닙니다.

 

교회 조직이나 교권에 의해 유지되는 강제적 권위와 다르다는 말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사람이 성경을 진리하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스스로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집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을 성경되게 하라고 말했고, 칼뱅은 성경의 진리는 최종적으로 성령의 증거에 의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진리를 만들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성경 안에 있고, 그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교회이고 기독교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권위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주 성경의 진리가 이성과 충돌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지성을 포기하면서 성경을 믿어야 하는지 갈등합니다. 물론 성경의 진리가 언제나 합리성에 바탕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이 인간의 합리성을 넘어서기도 하고, 합리성과 다른 범주에 속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당한 부분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믿음으로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두 부분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많은 학설과 주장이 있습니다.

 

이 도전들에 대해 교회는 무조건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이런 태도는 권위주의적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킵니다. 모든 것은 그 시대의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가 자신과의 대화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성입니다.

 

즉 우리 시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누구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성경 인식의 주체는 누구인지, 그리고 성경은 무오한지 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바른 성경관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3:15-17의 말씀은 성경 본문 가운데에서 성경 자체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바로 성경의 영성입니다.

 

첫째로, 15절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 말씀은 성경의 유일한 특질을 가리키는 말씀으로서, 오직 성경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진리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온갖 사상서 전문서적 교양서 참고서 시집 만화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교양과 전문지식과 흥미를 줍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성인군자가 쓴 책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만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는 목적이 영생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환경이나 조건이나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속에 죄가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인생 문제가 각기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안식과 평강이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고독하고 불안합니다.

 

정욕, 열등감, 탐심, 교만과 불순종, 미움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을 떠난 죄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나 돈이나 쾌락을 사랑하는데서 온 결과입니다 누가 이런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바로 성경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놀라운 지혜가 있습니다. 지혜는 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영성입니다.

 

둘째로, 16절 전반부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말합니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기원에 관한 것으로서 성경만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영감설입니다.

 

성경은 시대를 달리하여 1500여년 동안 40여명의 저자들을 통해서 기록되었지만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통일성을 갖고 쓰여졌습니다. 모두가 구원자 예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합니다.

 

마치 조금도 빈틈이 없는 퍼즐처럼 기록하였습니다. 그 퍼즐을 맞춘 것이 관주 성경입니다. 성경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머리를 써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보면 성경이 이해됩니다. 성경을 그렇게 한 책처럼 기록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의 저자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은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성경이 이렇게 하나의 책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영감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God-breathed’,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력과 감동력이 있습니다.

 

인간을 만들고 영을 불어넣어주셨듯이 그렇게 성경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계시로 특별한 사람에게 영감을 강하게 불어 놓아주셨습니다. 누가 진리를 깨달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감을 불어넣어준 것입니다.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영성입니다.

 

셋째로, 16절 후반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유일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만이 인간의 죄를 책망하고, 잘못된 것을 옳게(의로) 바로 잡아주는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성경이 주는 네 가지 유익을 말합니다. 첫째, 교훈의 유익으로 가르침의 지식을 말합니다. 성경은 지식을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공산주의는 지식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르치는 것의 근본이요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없는 교육은 약 바른 악마를 키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훈하기에 가장 유익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우리의 바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갖게 만듭니다.

 

둘째, 성경은 우리의 죄를 책망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바르고 정확하게 죄를 책망합니다. 모든 책망이 성경에서 이루어져야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고집을 피우고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자신이나 돈이나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셋째, 우리가 바르게 살게 합니다. 굽은 길을 곧게 펴게 합니다. 성경은 나를 교정합니다. 내가 바꾸고자 하나 잘 안 됩니다. 나를 교정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성경입니다. 나쁜 습관과 생활을 고치는데 성경이 필요합니다. 노예제도를 없애고 남녀 차별을 없애고 축첩제도를 없앴습니다.

 

넷째,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교육은 훈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정의롭게 살도록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점점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넷째로, 17절의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목적을 가리키는 말씀으로서 성경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통한 전인적교육이 바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온전하게 하는 것은 성화시키는 일입니다. 전체적이고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경건을 행할 능력을 주십니다. 성경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이루십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자들은 성경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절대 권위와 능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영성입니다. 요즘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판 공부를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고, 컴퓨터도 286, 386, 486, 펜티엄 등으로 해마다 바뀌어 갑니다.

 

또한 전에 없었던 핵문제 환경 문제 자원 문제 주택 문제 교통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발맞추어 X세대 N세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성경은 너무나 단순하고 오래된 책으로 복잡한 시대문제나 새로운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뒤떨어진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도 그들은 역시 인간이요.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와 사망의 문제입니다.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이런 죄와 죽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정말 절실히 필요한 책은 성경책입니다. 말세에는 자기중심적이 되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쾌락을 추구할수록 더욱 영적으로 기갈을 느낍니다.

 

이때 이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들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고 소망과 가능성을 제시하며 구원과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세에 성경 말씀을 더 사랑하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른 성경의 영성으로 승리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