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선교강의록

권역별 이슬람 형편-교수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7. 23. 19:42

아랍선교 강의록(4) : 교수 주태근

 

3. 권역별 이슬람 형편

 

1) 아프리카 이슬람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슬람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매년 이슬람교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기독교에 대한 핍박도 증가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의 총 인구수는 109,710만 명인데, 그 중에서 무슬림의 수는 58,189만 명으로 전체 아프리카 인구의 53.04%를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현황은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북부 아프리카는 거의 80% 이상 무슬림화가 되어 있으며, 남부 아프리카의 무슬림 수는 대부분 20%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남부 아프리카는 기독교 또한 크게 성장하고,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와 이슬람이 크게 충돌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남부에서부터 북부로 아프리카 대륙을 기독교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슬람은 반대로 북부에서 남부로 전 아프리카를 무슬림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55개국 중 이슬람협의회기구(OIC)에 가입된 회원국은 23개국, 이슬람 인구는 19240만 명(1982)에 달한다. 이들 중 말리키파 무슬림은 주로 서북 아프리카, 시아파 무슬림은 동남 아프리카에 각각 분포되어 있다. 1982년 무슬림 소수파 인구는 11420만 명, 이들 중 93%8세기부터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모잠비크, 가나, 아이보리코스트, 콩고(자이레) 등지에서 이슬람 신앙의 전통을 이어 온 무슬림이다.

 

 

2) 유럽과 북미 이슬람

 

유럽에 처음 무슬림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에 살던 서유럽은 이슬람지역을 식민지로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슬람을 접하게 되었고, 무슬림들은 학생이나 노동자의 신분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유럽으로 이주한 이슬람교의 노동자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더 강력한 신앙으로 뭉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2017년도에 유럽에서 증가하고 있는 무슬림 인구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전체 유럽 인구 중 4.9%에 달하며 비이슬람 인구 대비 높은 출산율을 기반으로 매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 자연증가분에 따라 유럽 내 무슬림은 앞으로 2050년까지 이민을 아예 한명도 받지 않는다 해도 20162580만에서 2050년에는 3580만으로 1000만명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만약에 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로 이민을 받을 경우엔, 2050년 무슬림 인구는 7560만명으로 전체 유럽인구 예상치인 53860만명 대비 14%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현재 유럽 각국에서 많아야 8% 정도에 지나지 않는 무슬림 비율은 유럽 주요국에서 20%를 육박할 정도로 높아진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전체 국민의 30.6%가 무슬림이 될 수도 있어 가장 무슬림 비율이 높아질수도 있다고 퓨 리서치센터는 내다봤다.

유럽 내에서 이민을 제외한 이슬람 인구의 자연증가는 지난 2010년 이후 꾸준히 이어졌다. 비이슬람인구가 2010년부터 2016년 사이에 167만 감소하는 동안, 무슬림 인구는 292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민자의 경우에도 비이슬람 이민자가 129만명 증가에 그쳤지만 무슬림 이민자는 348만명을 기록했다. 단순 합산해도 2010년 이후 2016년까지 유럽 내 무슬림 인구가 640만명 증가했다는 수치다.

향후 유럽 주요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이민규제와 차별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정정불안에 따른 난민 유입이 계속될수록, 가뜩이나 경제난에 시달리는 유럽인들의 불만 또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미 유럽 각국에 살고 있는 이슬람 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심화되고 이것이 다시 이슬람계 유럽인으로 자라난 무슬림들을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트릴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화는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전후 유럽경제 회복을 위한 산업화 추진 과정에서 식민지의 이슬람 근로자들을 받아드린 데서 시작되었다(아랍권, 터키, 파키스탄). 1980~90년대에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내전과 혁명 등으로 더 많은 무슬림 이주자들이 유입되어 그 숫자가 크게 증가 하고 있다. 바트 예오르 라는 이집트 여인이 2005년 그의 책에서 유라비아에서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해 영국의 7.7 테러를 통해서 더욱 확산 되었다.

 

 

영국의 이슬람

 

영국은 전통적으로 개신교 국가이다. 잉글랜드지역에는 성공회(Church of England), 스코틀랜드지역에는 장로교(Church of Scotland)가 국교(state religion)로 공인되어 있다. 2001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인구 6천만 가운데 기독교인이 71.6%, 무슬림이 2.7%, 힌두교인이 1% 등으로 조사되었으며, 유대교, 시크교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세계종교들이 영국에 존재하고 있다.

영국 전체 인구60,975,000 만 인구 중 180만명의 무슬림 살고 있다. 이 추세로 간다면 10년 내에 영국 무슬림 인구는 6백만에 넘게 될 것이다. 1963년 영국에는 고작 13개의 이슬람성원이 있었는데 지금1500~1600개의 모스크와 3000개의 꾸란학교가 있다. 이슬람에서 전략적으로 교회들을 사서 모스크로 변경하기도하는 데 그것은 교회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런던에는 17%가 이미 무슬림이다. BBC방송국에서 영국 내무부 장관 재키 스미스는 2001년부터 매년 5만 명의 영국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이미 그 수가 4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6YouGov 조사에 의하면 2001년에 무슬림의 15%가 자신을 급진주의자라고 응답하였는데 200225%, 2006년에는 40%로 증가 했고, 영국 독립적 여론조사 단체인 Populus for the Policy Exchange(영국의 정책 연구기관)떨어져 살면서 때로 함께하기라는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난2007216세 이상 무슬림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는데 16~2474% 무슬림들이 히잡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37% 영국 내에서 샤리아법아래 살기를 원한다. 37% 자녀들을 이슬람 공립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36%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은 죽여야한다고 생각한다. 13% 알카에다처럼 서방세계와 싸우는 기관들을 존경한다. 교도소 내에서도 이슬람 급진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영국 내에는 약4000명의 무슬림 재소자들이 있으며 거의 모든 교도소마다 이맘이 한 명씩 있다.

 

 

프랑스의 이슬람

 

프랑스 무슬림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무슬림들에게 사의를 표하기 위해 1922년 파리에 최초로 이슬람성원(모스크)이 건축되었고, 2차 세계대전 뒤 폐허가 된 프랑스를 재건하기 위해 1960-70년대에 걸쳐 북아프리카로부터 100만명에 이르는 무슬림 노동자들이 프랑스로 이주했다.

프랑스에서는 종교에 대해서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으로 제한이 되어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식민지들의 다양한 문화를 프랑스 문화 안으로 흡수하고, 동시에 프랑스문화를 교육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성향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무슬림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는 그들이 적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정교를 분리하고자 하는 프랑스의 생활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1980년대 중반까지 무슬림의 기도처 및 성원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없게 하였으며,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는 행동도 종교로서 이슬람을 인정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공립학교의 교육과정에 기독교나 이슬람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이슬람의 지도자인 이맘들도 법적인 권위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

프랑스의 인구 약 6,400만 중 무슬림 인구는 600만으로 인구 약10%를 차지하고 있고, 1,300개의 이슬람성원과 센터 및 600여개의 이슬람단체들이 있다. 또한 24시간 방송되는 무슬림 라디오방송국이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인구는 15년 후 8백만 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네덜란드의 이슬람

 

네덜란드 최고의 주민은 알프스 인종으로, 이들의 일부가 후일 북유럽형 인종에 의해 쫓겨났다. 작은 체구, 넓은 두개골, 갈색 또는 검정색의 머리털, 갈색의 눈을 특징으로 하는 알프스인종은 특히 중유럽에 많이 거주하였는데 남부와 남동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리후리한 키, 좁은 두개골, 금발, 파란 눈을 특징으로 하는 북유럽 인종의 전형은 서부와 북서부, 특히 남홀란트주에서 두드러진다. 에스파냐 통치시대에 많은 신교도가 안트베르펜 주변으로부터, 그리고 루이 11세 때에는 프랑스의 위그노교도가, 1617세기에는 유대인이 유럽의 남부와 동부로부터 종교적 압박을 피하여 네덜란드로 이주해왔다. 이들 이주민의 대부분은 원주민과 융화하였으나, 유대인만은 종교 관계로 아직도 별개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주민구성은 네덜란드인 90%와 그 외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어는 네덜란드어로 게르만계에 속하며, 특히 독일어에 가깝기 때문에 독일인에게는 네덜란드어로 말하여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방언은 약 18종이 있으며, 근거리에 있는 암스테르담·헤이그·로테르담의 세 도시 사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네덜란드어는 본국 및 1개 자치령 외에 벨기에의 북부지방, 남아프리카·프랑스·미국·캐나다의 일부에서 일상어로 사용된다. 프랑스어도 전주민의 20% 정도가 이해하거나 구사한다. 주민의 종교는 로마가톨릭교(31%), 네덜란드 개혁교회(13%), 칼뱅정교(7%), 이슬람교 (5.5%)이다. 이 중 이슬람교는 300년간 통치했던 인도네시아 이민자 및 이슬람권에서의 난민 신청자들이다. 1909년에 54명의 무슬림들이 있었는데 1960년이 지나서야 천 명을 조금 넘어섰다. 그러나 그 후 30년이 지난 1990년에 458천명이 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2005년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전 국민을 다 합쳐도 1700만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큰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의 이슬람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주축국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오스만제국과 정치적 협력을 하면서 이슬람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독일의 이슬람은 터키와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 터키인 무슬림들은 1962년 조약을 통해서 노동자로서 독일로 대거 이동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독일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독일은 90%이상의 무슬림이 터키출신인데 독일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 내 무슬림은 41개국 이슬람권 외국인으로 약 300~350만명으로 집계된다. 독일의 전체 인구 82,369,552명 중 약 4%이다. 206개의 모스크가 있으며, 120개 이상 성원이 건축 중이거나 계획 단계이다.

현재 유럽의 이슬람 교세는 무슬림 5400백만 명으로 6,000개의 모스크를 가진 큰 세력집단으로 성장하였다.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 합세하는 날에는 이 숫자는 12천만이 넘게 된다. 이런 자신 감에 고무된 이슬람 측은 2025년까지 배가의 성장을 장담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급속한 이슬람의 세력 확장에 직면한 유럽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미국의 이슬람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70.6%가 기독교인이며, 그 중 개신교 신자가 약 46.5%, 가톨릭 신자가 약 20.8%이다. 무신론자/불가지론자 또는 특정 종교가 없다라고 답한 비율은 22.8%이며 그 외에 유대교 신자가 1.9%, 이슬람이 0.9%, 불교 신자가 0.7%, 힌두교 신자가 0.7%이다.

미국은 1900년도 말에 로스앤젤레스 이슬람 선교 대회를 개최하면서 이들은 앞으로 미국에 5000-7500만 이슬람 개종 목표 선언하였다. 현재 미국은 600백만 명의 무슬림이 있으며 이들 중 200백만 명이 미국인이며 약 1500개의 모스크가 미국 내에 있다. 워싱턴 DC의 공립학교들은 이슬람 라마단 기간 무슬림 학생들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단식을 허용하였으며 뉴욕시 교육 위원회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상징물 외에 이슬람 상징물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흑인 거주 지역의 40%의 식료품상들은 아랍 사람들로 대처 되고 있으며 이들은 상점을 이슬람 전파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기에 흑인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데 흑인들은 이슬람을 통하여 형제 우의를 느끼기에 이슬람을 선택했다고 한다. 도시 전문가 레이 베이크에 의하면 흑인들이 미국 이슬람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은 흑인들의 억눌린 욕구 불만을 직접 이용하여 인종적 억압에서 해방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슬람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흑인의 도덕적 문화적 우월성을 가르치며 알라의 뜻을 따라 흑인은 이 세상의 문화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도록 예정 되었다고 선동하므로 기만적인 이슬람 전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 이슬람이 전파된 시기는 미국 역사 초기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근거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 모로코는 이미 1787년 미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한 바 있고 그 외의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가 이어졌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 산업의 발달과 전후 복구 및 개발 사업 등으로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교류가 증가하게 된다. 특히 공무원, 사업가, 유학생, 교사 등과 대규모 이민으로 많은 인적 교류가 시작되는데 이 때 본격적인 이슬람의 유입이 있었다. 1933년에는 미국이슬람의 중요 조직인 "NOI"(The Nation of Islam)이 창설되어 많은 수의 사람들 - 특히 아프리카 계 흑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된다. NOI는 미국 내 흑인 무슬림들에게 인권 운동의 기초를 제공하고 단합의 시초가 되어 기독교계의 흑인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 주의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NOI의 대표적 무슬림 운동가로는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말콤X(알 핫즈 말리크 앗샤바즈)와 무함마드 알리를 꼽을 수 있다. 마약과 강도 등으로 장기 복역수였던 그가 옥중에서 이슬람을 접하고 개종한 후 이슬람의 만인 평등사상을 기초로 흑인 인권 운동의 지주가 되기에 이르렀다. 알리 역시 권투 선수 출신으로 이슬람을 접하고 클레이라는 이름을 무함마드 알리로 개명하고 흑인 인권향상에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