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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영영히 감사하리라(시30:1-12)-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9. 20:29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라(30:1-12)

 

 

목사 주태근

 

어떤 사람이 밖에 나가서 호박 넝쿨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렇게 약한 넝쿨에 저렇게 큰 호박을 달아 놓으셨을까? 호박이 넝쿨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그러다가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면서 호두나무에 달린 호두열매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렇게 큰 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달아 놓으셨을까? 쯧쯧.... 하나님은 생각이 저렇게 모자라실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잠을 자고 있다가 갑자기 얼굴에 무엇이 딱 하고 떨어져서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호두가 얼굴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이쿠 하나님! 만일 하나님께서 저 위 호두나무에 호박 같이 큰 호두를 달아놓으셨다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망치로 두들겨 깨야 까지는 호두 같이 단단한 열매가 호박처럼 컸다면, 또 그런 것이 제 얼굴에 떨어졌다면 제 얼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호두열매가 작은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의 책의 저자 필립안시(philip Yancey)는 왜!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 고통을 포함시키셔서 이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셨을까? 고통이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기가 훨씬 더 쉬웠을 터인데...'라고 쓰면서 놀랍게도 고통이 없는 세계를 발견하였는데, 그 세계가 바로 나병환자을 위한 병원이었다고 말합니다.

 

나병환자들은 그들의 몸에 병이 번져 가면서 고통을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죽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필립안시는 크고 작은 수많은 방법으로 고통이 매일 우리를 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생명의 위험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 몸에서 맹장염이나 심장 마비, 골수 종양에 대한 경고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은 이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입니다. 고난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하고,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한국의 국악인들은 태평소를 만들 때 대추나무를 쓴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골라서 쓰는데 거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벼락을 맞으면 몇 만 볼트의 전압이 흐르게 되면서 입자가 단단해지기 때문에 나무 결은 고와지고 단단해집니다.

 

이러한 나무로 만든 태평소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가락이 흘러나옵니다. 마치 고난은 우리 삶의 입자들을 고르게 하며, 믿음의 고백을 더욱 굳세게 해줍니다. 그래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도 유익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아픔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당하는 고통의 문제와 그 이유를 다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의 시들은 인생이 좋을 때,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풀려갈 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눈물의 골짜기와 가시밭길을 지나면서 기록된 고백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평생 동안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어왔던 다윗이 인생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 일생 동안 지켜주시고 은혜를 덧입혀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그 은총을 높이 찬양한 시입니다. 다윗은 별명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찬송을 할 줄 아는 사람, 감사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용사, 목동 등' 의 칭호가 붙은 유명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때 밧세바에게 눈이 어두워 비록 간사하게 악독한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죄하심을 체험하고 감사를 회복하고 찬송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음부와 무덤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수많은 죽음의 고비 가운데서 구원받았던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생각 될 때 마다 원망, 교만하기 보다는 더욱더 겸손하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원망하면 원망한 만큼, 교만하면 교만한 만큼 감사가 없고 찬양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겸손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되어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자기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에서 되어진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에서 보는 것처럼 자기의 능력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구원하여 주신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만심에 찬 오류를 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는 능력이 있기에 자기는 재능이 있고 머리가 있기에 자기 자신이 잘 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데 다윗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려는 신앙의 자세이어야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면 감사하겠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위험한 때입니다. 성공하면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돕지 않아도 나 스스로도 충분히 살수 있다는 인본주의의 유혹을 받습니다.

 

다윗도 그것을 6절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형통 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라고 자신만만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만만하고 교만해져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지나면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11-12절 말씀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일시적인 감사가 아니라 영원한 감사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1361-3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심이 영원하시기에 다윗은 영원히 감사하겠다고 고백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쉬지 않는 감사와 주님의 도우심과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면서 영원히 감사 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라"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감사해야 할 이유들은 많이 있습니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나 바울만의 감사가 아닙니다. 다윗의 감사가 곧 나의 감사요 바울의 감사가 곧 나의 감사가 되어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어떠한 실패 속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어 영원히 감사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방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레나 마리아'라는 가스펠 싱어가 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두발이 없었습니다. 다리만 있는데 그 다리도 한 쪽은 짧습니다. 아마도 어릴 때,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엔 갈등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자학도 하고 방황도 하고 괴로워 하다가, 어느 날부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외적인 것 보다 내적인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외적으로는 장애인이나 내적으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하고 자신의 모습과 형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또 내가 할 일이었어 이곳에 보내주셨는데...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감사를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고통 속에서 깨달은 너무나도 보배로운 감사이기에 언제나 감사부터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녀가 감사를 찬양하면 듣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감사를 배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마지막 연에서 그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천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다윗은 주께서 그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고, 죽음과 슬픔을 상징하는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옷을 입혀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체험을 바탕으로 다윗은 "내가 잠잠치 아니라고 주를 찬송하며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죽음과 슬픔을 상징하는 베옷을 입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탓하거나 형제나 가족들을 탓하거나 시대를 탓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1618년부터 30년 동안이나 유럽 대륙을 휩쓸면서 초토화시켰던 참혹한‘30년 전쟁이 있었습니다. 고통의 시간, 죽어 가면서, 혹은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아픔의 시간에 원망과 불평, 자학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무서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찬송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7세기 말 음악가 환켄 나우어가 30년 동안에 경건한 성도들이 입을 통하여 불려진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무려 32,712곡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음악가 웨첼이 다시 수집하고 정리한 결과 총 55,500곡으로 늘어났습니다. 30년간의 처절한 전쟁 가운데서 어떻게 그들은 찬양할 수 있었을까? 평화로울 때 부르지 못하던 찬송이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샘솟듯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그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잠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패트 쇼프내시 목사는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리는 전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L.A.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합실에 괴한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그도 심하게 다친 중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수술에 들어갔으나 살 수 있는 확률은 3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매우 빠른 치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비록 한 쪽 다리를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다시 생명을 허락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만에요.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폭탄이 있는 것도 아셨고, 제가 거기에 있는 것도 아셨습니다.

 

폭탄이 폭발하여 나는 다리를 잃게 되었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새 생명을 저에게 허락하셨고, 또 이 일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더욱 영혼을 사랑하면서 사역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목회에 큰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일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해 진정으로 증거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저는 폭발 사건의 희생자가 아니라 덕을 본 사람입니다.”이렇게 믿음으로 서는 사람은 오늘도 승리의 삶을 넉넉히 살 수 있게 된다. 독수리는 둥지를 만들 때 둥지 위에 가시나무를 깔고 돌멩이를 놓고 그 위에 새의 깃털을 얹어 포근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새끼들을 독립시켜야 할 때가 되면 어미 독수리는 둥지의 깃털을 다 없애버립니다. 그러면 딱딱한 돌과 가시만 남게 되는데 그때 새끼는 가시에 찔려 아프니까 둥지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은 편안한 둥지를 떠나 높은 창공을 날아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독수리는 어려서부터 다른 새들과 달리 독립심이 강하고 높은 곳에 살 뿐만 아니라 높이 난다고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계십니다. 고난이라는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은 순결한 백성으로 빚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시인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 자세와 마땅히 드려야 할 고백은주님,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영원히 섬기겠습니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