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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자(시57:7-8)-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2. 09:04

새벽을 깨우자(57:7-8)

 

 

목사 주태근

 

미국 펜실베니아 포즈(Forge) 계곡엔 한 사나이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가 바로 죠지 워싱톤입니다. 177512월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습니다.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주둔지 트렌톤을 공격할 때 워싱톤이 이끄는 독립군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령관 워싱톤은 병사들이 잠든 이른 새벽 숲 속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위하여 이 전쟁에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병사들은 이슬에 젖은 사령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 자신만만하게 흐르는 승리의 확신을 역력히 볼 수 있었습니다. 패배감에 젖어있던 병사들은 사기가 진작되었습니다.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훗날 워싱톤의 기도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포즈 계곡에 동상을 세웠고 미국인들은 오늘까지 저들의 나라가 기도로 세워진 나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무서운 영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썩은 고목나무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중국 땅으로 이전하기에 바븝니다. 정치인들이 갈팡질팡 방황하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백수인생이 늘어만 갑니다. 교육이 무너지고 청소년들은 길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교육 이민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교육정책으로 학교들과 학부모들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기울어진 타이타닉처럼 기울어졌습니다. 교회들은 저마다 빛을 잃었고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온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거리에서 들려옵니다. 정치인들의 정쟁에 국민들이 점점 피곤해 합니다.

 

국론이 분열되어 서로의 갈등의 벽이 높아만 갑니다. 지도자들의 도덕적 부패로 미래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경제문제는 너무 심각한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살기 싫어 이민가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화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때야 말로 온 민족이 기도해야 될 때 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 골목골목에서 의인 열 사람의 기도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시편 57편의 말씀은 다윗 왕의 시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쓴 시라고 합니다. 다윗은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긴 후에 백성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고 다윗을 더 칭찬하였습니다. 사울은 시기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좇아다녔습니다. 시편 57편은 바로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피하여 아둘람 굴이나 엔게디 굴에 숨어 있을 때 쓰여 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굴속에 피하여 있으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1)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시편572절에서는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심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즉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심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의 확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굼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고 그의 확신은 최고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는 말은 "내 영혼아 깰지어다"로 번역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비파와 수금을 잘 연주 할 수 있었던 다윗은 이런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시적인 언어는 어두운 절망의 밤이 지나고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았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만물이 고요히 잠든 새벽부터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겠다는 그의 결단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말씀은 내가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며 기도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시편 46편도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고 고백하며서,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을 깨운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35에 보면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분주한 생활은 동네마다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회당과 거리에서 가르치시고 , 그리고 그에게 찾아 나오는 많은 병자들을 치료 하시면서도, 매일 새벽마다 일찍이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벽 기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받은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분명히 알고 능력을 받아 일하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종교개혁자들도 새벽기도에 힘썼습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내가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는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매일 세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지탱해나갈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장로교 창시자 깔벵 역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또한 직접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유용한가를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새벽기도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감리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죤 웨슬레는 새벽기도를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88세 까지 살면서 생애 동안 50년 가까이 말을 타고 40만 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했고, 4,200회에 달하는 설교를 했으며, 2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매우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그 건강의 원인을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계속적인 운동과 기분 전환을 한다.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몸이 아프든 건강하든 간에 밤에는 반드시 수면을 취한다. 필요하면 언제든 잠을 잔다. 지쳤다고 느껴질 때에는 밤이든 낮이든 잠을 청한다. 60년 이상을 새벽 4시 기상을 유지해 왔다. 50년 이상을 새벽 5시에 기도와 설교를 계속해왔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의 기원은 초기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은 1903년경부터 싹터 1907년에 와서 결정적인 발전을 하였습니다. 당시 한국 교회 부흥운동의 기원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한 흐름은 1903년 감리교 선교부 일단이 원산에서 일주일 동안 기도와 성경공부를 위해 가진 모임 도중 캐나다 선교사 하아디(R. A. Hordie)가 자신의 대부분의 선교생활이 실패한 원인을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시작된 원산의 부흥운동입니다.

 

다른 한 흐름은 길선주 목사가 평양에서 찬국 최초로 시작했던 새벽기도회로서 그 뜨거운 열정이 대부흥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열심히 기도한 것이 대부흥운동을 일으켜 세계 기독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한국 교회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그리고 6.25와 같은 민족의 비극 속에서 새벽기도로 지친 영혼이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60년 이후로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의 감격을 서서히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를 통한 부흥의 불길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는 1980년 개척 당시부터 시작된 새벽기도회를 지금은 5부로 나누어서 드릴만큼 활성화 되었고, 주일학생부터 장년부에 이르기 까지 20,0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새벽기도회에 모인다고 합니다.

 

주안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등 부흥하는 교회에서는 새벽기도회가 매우 활성화되었습니다. 기도는 가문 땅에 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들어가는 곳마다 죽었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 주변에 죽어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기도가 있으면 전성기가 옵니다. 어떤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기도가 있으면 전성기가 옵니다.

 

기도는 씨를 심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를 심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이번 12일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에 성도님들 가족이 모두 다 함께 모이는 기도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순절에 120명의 성도들이 매일 열심히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림을 체험했습니다.

 

새벽은 그날의 첫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살려면, 잠에서 깨어나 그 시간인 새벽은 거저 보내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첫 것은 거룩하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 땅에로 인도하려 하셨으나, 애굽 왕이 거절하여 재앙을 내렸습니다.

 

열 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 살고 있었으나 이스라엘 집의 장자들은 지켜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첫 것은 "내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장자. 짐승의 첫 새끼, 첫 열매. 처음 거두는 곡식 등, 모두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첫 것"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사상대로, 물질도 맨 처음에 하나님께 바치고 사용해야 하고, 시간도 하나님께 첫 시간을 바치고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한 사람들의 삶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하나' 이시며, '첫째'되십니다.

 

'하나님'이란 뜻은 우리가 섬길 신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유일신이란 뜻이 있습니다. ''은 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첫째 자리를 드려서 모셔야 합니다. 즉 시간적으로 첫 시간을 드려야 할 분이십니다. 순서적으로 사람보다 먼저. 첫 번째로 모셔야 할 분이십니다. 물질적으로도 첫째로 모셔야 할 분이십니다.

 

새벽은 너무나 소중하고 거룩한 시간입니다. 새벽을 바로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새벽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고요한 새벽에 주님을 만나고저 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새벽을 깨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요,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요, 새벽에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는 건강한 믿음으로 복 받은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새벽의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 죠셉 알레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새들보다 먼저 일어나 기도해야 한다. 새들은 일어나 노래하는데 우리는 잠자거나 찬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교회는 활기차고 주님의 뜻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성도는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새벽에 불을 켜지 않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새벽에 잠든 나라는 위험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자신의 심령이 깬 사람이며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어두운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명의 새벽을 깨웠고 우상숭배에 깊이 잠든 심령을 깨워 주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멸망의 잠에 빠진 민족에게 새벽을 깨우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새벽을 깨우는 파숫꾼을 찾습니다. 이사야 21:11"파숫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파숫꾼 가운데는 새벽을 기다리지 않는 밤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과 그늘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벽을 기다리며 새벽을 알리는 파숫꾼이 있습니다.

 

교회는 죄악으로 인하여 흑암에 처했던 인류에게 새벽을 깨워주는 파숫꾼의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수많은 노예들이 멍에와 사슬에 짓눌려 있을 때 사슬을 풀고 해방을 준 사람들은 새벽을 깨우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자유와 양심을 억압하는 독재자에게 항거하여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온갖 고통과 희생을 당하면서도 역사의 새벽을 깨운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 순교자의 신앙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