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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만 의지합니다(시17:1-7)-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3. 17:20

주님만 의지합니다(17:1-7)

 

 

목사 주태근

 

1912년 영국에서 뉴욕으로 첫 출항하던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있었습니다. 그 유람선은 길이가 300미터나 되는 거대한 유람선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보았지만 정말 그 안에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그 유람선에는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만 탈 수 있었습니다. 누구하나 그 호화 유람선이 바다에 가라앉으리라고 생각을 갖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미국의 신문은 타이타닉 유람선을 바라보며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 유람선은 가장 안전한 유람선이 될 것이라는 기사까지 실었습니다.

 

얼마나 안전하다고 생각이 되었으면 모든 승객의 보트를 준비하지 않고 절반만 준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타이타닉호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1500명이 죽고 보트에 탄 700명의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강력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세계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를 통해 그렇게 무너져 6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2001911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모든 사람들은 무너져 내리는 무역센터의 건물을 보면서 어떤 인간도 어떤 정부도 우리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의지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가하면 자기의 재능이나 가진 재물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이 필요한 것은 그만큼 우리 자신이 홀로 살아갈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사람을 의지하든 재물을 의지하든 자신에게 도움과 힘이 되는 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인을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답답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주의 살아 계심과 오늘도 역사를 통치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임을 확실하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섬세하신 손길을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시인은 눈동자와 같이 자기를 지켜 주실 하나님, 자기를 지금까지 친히 품에 안아 주신 주의 날개 그늘을 사모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지금 그의 삶 가운데 답답함이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결코 포기해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축을 중심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진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특히 철학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쓴 책들 가운데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라는 낱말처럼 무의미하고 추상적인 개념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막연히 인간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명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쉐퍼 박사는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항상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점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 계시지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19821월 무섭게 퍼붓는 폭설 속에서 여객기 한 대가 워싱턴 내셔널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포토맥 강 위에서 낮게 왼쪽으로 돈 후 갑자기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4번가 다리 위로 차를 몰고 가던 사람들은 그 비행기가 너무 다리가까이에서 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렸는데 결국 비행기는 얼음이 덮인 포토맥 강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로 모두 7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고의 원인은 날개 위에 덮인 얼음의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은 얼음의 무게가 아니라 비행기가 부력(浮力)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부력(浮力)이란 액체(液體)나 기체(氣體) 속에 있는 물체가 그 표면에 작용하는 압력(壓力)에 의해서 중력(重力)에 반하여 위쪽으로 뜨게 되는 힘을 말합니다.

 

물체에 작용하는 무게가 부력(浮力)보다 가벼우면 뜨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입니다. 즉 날개 위의 얼음이 날개 주위의 기류를 방지했기에 정상비행을 할 수 있는 부력이 상실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부력만 있었더라면 얼음으로 부가된 중량은 극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 원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재정적 위기나 사망, 이혼, 질병, 직업으로 인한 갈등, 깨진 꿈과 같은 '부가된 중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가된 짐에 깔려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위로부터 도우시는 힘과 지탱해 주는 능력인 '부력'을 충분히 유지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인은 기도함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답답함과 절박함으로 뒤덮인 상황 가운데서 오직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면서 그의 호소를 들어 주실 것을, 부르짖음에 주의를 기울여 주실 것을,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이러한 삼중의 표현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으며, 또한 그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지를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의 궁전에 나를 정착시키는 닻이 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은 돈과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돈을 의지하면 돈이 해줄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고, 인맥을 의지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줄을 서고 뇌물을 바치면 그 사람의 한계 내에서만 부분적으로만 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초라한 자신의 모습만 발견할 뿐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의지하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만날 때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가 과거에 만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과 관련한 모든 것은, 또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열쇠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기도는 전능한 힘을 끌어오는 통로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알며 승리하는 기도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진실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을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또 그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존 웰치(John Welch)는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가장 우뚝한 인물 중의 한명입니다. 그는 존 녹스(John Knox)의 사위로 위대한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장인 덕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장인인 존 녹스보다 오히려 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존 녹스가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소서,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주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사위인 존 웰치가 올린 기도입니다. 그는 하루에 일곱 시간에서 여덟 시간 동안 개인적인 기도 시간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존 웰치가 죽게 되었을 때, 그를 어린시절부터 지켜보아왔던 스코틀랜드인들은 말하길, "존 웰치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좀 적절치 못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이 옛 스코들랜드인들이 자신들의 말에 담아내고 싶어 했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존 웰치를 통하여 자신의 성품을 강하게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존 웰치가 매일 그분과 7시간에서 8시간에 걸쳐 교제를 나누던 그 시간동안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심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7시간 혹은 8시간 동안 기도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현재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과의 개인적인 교제는 우리가 거룩하여지고 또 그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인을 통해 반듯하고 순결한 삶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그의 무고함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4절 말씀에서 그는 포학한 자의 길을 따라 살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 왔음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3절에서 그는 입으로 범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말을 조심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말만 하려고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임을 자부할 수 있으며, 자랑할 수 있을까만 은 시인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반듯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쳤음을 기억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오늘 혼탁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반듯한 삶을 살아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비결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복 있는 삶의 비결이며, 물댄 동산의 비결이 됩니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절대 진리 자체를 거부하고 방종하면서 사는 오늘의 문화는 소돔의 문화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반듯하고 순결한 신부의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그러한 주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는 나를 짓밟으려는 악인들로 둘러싼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며, 눈동자와 같이 돌보실 것입니다.

 

1939년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승선하였습니다. 그가 아직 젊은 나이에 독일로 향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 정권에 의해 세계 대전에 광분해 있었으며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의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바라보면서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교회의 잠을 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유유히 조국 독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 날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해하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간 그는 나치의 학정에 침묵만 지키고 있던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죄상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투옥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재질을 알고 있던 미국의 교회는 그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띄웠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행복한 인간이었고, 성공한 목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걸어갈 방향과 목표와 할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반듯한 인생을 사는 것이 바른 삶이라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성가 작곡가 중 주옥같은 많은 찬양을 작곡한 바 있는 최용덕 씨는 어떤 실패로 인해 깊은 영적 침체 가운데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음의 기쁨은 사라지고 좌절감이 그를 덮쳐왔습니다. 또한 내가 정말로 믿는 자인가, 나는 지금까지 찬양하고 증거한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던 위선자였음이 틀림이 없어. 영적 자학이 시작되면서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위기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나를 싫어하실 것이다. 나를 버리신 것이 틀림없어. 괴로움 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을 때 새벽의 어느 정점에 그는 일어나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버리십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몸부림치며 기도하고 있을 때 그는 그의 등 뒤에서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배신하고 등지고 도망가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너의 등 뒤에서 한 번도 눈길을 뗀 적이 없느니라. 나는 지금도 너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있느니라. 아들아, 안심하고 일어나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영광의 하나님을 뵙고 견딜 수 없는 감격에 그는 가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하여 작곡한 노래가나의 등 뒤에서라는 복음성가입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아멘.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만 우리를 붙잡아 주신다면 우리는 능히 서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 의지합시다. 주님은 고난 속에 사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