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성령님으로 탄생하시다(눅 1:26-38)-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7. 13:37

성령님으로 탄생하시다(1:26-38)

 

 

목사 주태근

 

추리소설 하나가 2004년 가을과 겨울 얼어붙은 출판시장을 강타했습니다. 다 빈치 코드 1권과 ·2베텔스만코리아가 6월에 출판된 뒤 6개월 동안 각종 온·오프라인 출판물 집계에서 줄곧 1위를 달리며 120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다 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은 한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지만, 요즘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팩션(faction)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팩션이란 역사적 사실 팩트(fact)에 바탕을 두고 상상력 픽션(fiction)을 보탠 것을 뜻하는 합성어입니다.

 

다빈치 코드가 바로 팩션입니다. 즉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혼합하여 추리소설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소설이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옆에 앉은 사람이 우리의 판단과는 달리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예수가 교회를 맡긴 사람은 베드로가 아닌 마리아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충격적인 내용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조작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독자들을 사로잡은 내용은 저자 댄 브라운의 서문 때문에 더욱 기독교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모든 예술 작품들, 건축물, 비밀 의식 등에 대한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고 단언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 중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내용의 교리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성령에 의한 잉태는 2000년 동안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과 이단들에 의해서 무수히 공격 받아왔던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고대 바벨론이나 아카디아, 로마의 설화나 신화를 보면 접신하여 잉태된 아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오늘날 과학을 신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완전히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이 사실을 부인하려 듭니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아두고, 휴머니즘을 보혈과 구속의 자리에 대치하고, 심리학을 성령의 자리에 대치하고, 최면술을 종교의 경험과 비슷하게 설명하면서 말하는 이런 지성인들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신앙에 깊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또한 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성령 잉태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외아들입니다. 기독교는 지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확실히 고백합니다.

 

라빈슨이라는 자유주의 신학자는 "성경은 2000년 전 신화적 세계에서 써진 책이므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민족이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유대인은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말씀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누가복음은 1세기 중 가장 훌륭한 역사서라고 불리 웁니다. 저자 누가는 의사로서 의사답게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누가복음을 기술하였습니다. 이는 11절이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사실에 근거한 기록입니다.

 

13절에서 모든 자료를 미루어 볼 때라는 기술에서 동정녀 탄생의 기사도 그 사실자료 중 하나로 보았음을 압니다. 동정녀 탄생은 신화가 아닌 믿음의 핵심입니다. 사도신경에 나타난 믿음의 내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고백이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믿음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33년간 육신의 몸으로 사셨지만 전기(biography) 형식으로 기록하지 않으시고, 생애의 일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탄생,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나 성경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적보다도 병자들과 함께 하셨고,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신 단순히 한 인간의 모범적인 행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예수님을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이 분이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으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냐? 를 고백하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에 역점을 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일주일 간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거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류구원을 위해 나타난 표적입니다.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기적적인 방법으로 잉태되셨으며, 남자 없이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교리이다. 하나님만이 이룰 수 있는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자에 의해 잉태되셨다면 인간들의 죄의 성품을 이어받으셨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분은 세상 죄를 제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죄 없는 어린 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우리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국의 에딘버러에 있는 로슬린 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 낸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연구소의 월머트 박사는 암 양의 세포에서 유전자를 때어낸 후 다른 양의 난세포와 결합시켜 양의 자궁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모체인 암 양과 유전자가 똑같은 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방법은 그 동안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던 시험결과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힘과 인간의 노력으로 드디어 이루어 냈습니다. 이 연구소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내에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유전자가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내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양이나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복제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에 도달하였다 할지라도 복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세포의 유전인자, 그것을 결합시킬 난세포, 그리고 그 결합된 것을 키울 자궁 등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전인자, 난세포, 자궁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복제 기술도 그저 주어진 것들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것도 자세히 보면 다 이런 범주의 것들입니다. 그저 주어진 자원을 이용하여 좀 색다른 것을 만들어 낸 것뿐입니다.

 

인간은 유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있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침하지 않아도, 즉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없어도 아이를 갖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인간처럼 유전인자, 난세포, 자궁 등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겠다고 한 것은 여자의 자궁을 이용하여 사람을 만들겠다는 인간 복제의 선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시겠다는 위대한 선포입니다.

 

창세 이래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령의 특별한 능력으로 이렇게 태어나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 능력의 표적인 동시에 인류구원의 참된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