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지으라(창6:9-22)
목사 주태근
성경에 나타난 신비의 이야기 중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수세기 동안 여러 차례 발견됐었습니다. 특별히 1916년 경 낙하산으로 투하된 백 러시아 군대 150명은 실제로 그 방주 안에 들어가 보고 배의 크기를 재었으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들은 방주 안에서 쇠창살이 달린 짐승우리와 짐승의 털 그 밖에 유품들을 발견하고 돌아와 당시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Ⅱ세에게 방주의 발견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곧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 이 같은 성경적 사실은 그냥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훗날 이 방주는 론 로날드 왓트와 데이빗 파솔드 라는 두 교수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들은 전자레이더와 지질 탐사기 등을 이용 시각적, 물리학적, 화학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아는 구멍 뚫린 여섯 개의 돛을 닻 대신으로 사용했으며 폭풍을 대비 배 모양은 우주선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라라트 산 밑에 도그베이짙 이라는 마을에서 이란 국경 쪽으로 5Km 가면 우젠길리와 마샤르 란 마을이 있는데 노아의 방주는 바로 이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방주의 길이는 157.08m 로 성경의 300규빗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나 폭은 50규빗으로 26.2m가 되어야 하는데 반해
실제 배의 폭은 48.8m로 상당한 수치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이것은 배의 파손 결과 넓어 진 것이라 해석 하고 있습니다. 파솔드 교수는 모세가 수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배의 크기를 기록하였으며, 이 규빗은 히브리규빗 개념으로 사용치 않고 이집트규빗 개념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아의 가족 8명과 많은 동물들을 태운 방주는 3층으로서 길이가 135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의 거대하고 긴 직사각형 상자와 유사합니다. 길이로는 축구장 길이보다 더 길며 면적으로는 20개의 농구장보다 더 큽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덩치가 커다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는 종으로 따지면 약 1만7천6백종이 있습니다.
이 종류대로 각각 쌍쌍으로 실렸다면 3만5천2백 마리가 방주에 실려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평균하여 환산해 볼 때, 12만5천2백8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습니다. 서너 배나 더 실을 수 있는 용량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이 성경을 기초로 모형방주를 만들어 실험한 적이 있는데 이 방주는 큰 파도에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정도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고도의 조선기술 그것이 바로 노아방주제작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귀한 근심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을 온전한 가정으로 지어갈 수 있을까 입니다. 좋은 가정을 만드는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계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세상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파괴된 사회가 온전할 수 없고 가정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노아방주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사람들이 세상의 쾌락만을 추구하려는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마태복음25장에 보면 노아의 시대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세상적인 일에 즐기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역시 사람들은 노아의 시대와 같이 어떻게 하면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까 에만 관심을 몰두합니다.
개구리가 실험실에서 서서히 끓어 가는 냄비 속에서 따뜻하니까 따뜻한 감각에 젖어서 자신의 몸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감각적인 쾌락을 따라서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족이 쉼을 가지고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원칙도 없이 세상 흘러가는 데로 즐기려 하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 것을 즐기는 데만 몰두했던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로 타락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이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라고 말했습니다.
노아의 시대가 다시 살아날 희망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시대도 무엇으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타락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고 사회가 타락하고 나라가 타락하여 가는 시대 속에 세상은 썩어만 갑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방주를 지음으로 자신의 가정을 구원하고 세상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은 가정을 든든히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면서 먼저 무엇을 가지고 방주를 지을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지혜입니다.
먼저, 방주를 짓는 재료는 잣나무입니다. 14절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잣나무는 삼나무입니다. 삼나무란 썩지 않는 나무를 말합니다.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성당의 문이 삼나무로 제작하였는데 1000년이 흘러도 썩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짓되 썩지 않는 나무로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가정을 잘 지으려면 영원히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지어야 합니다. 썩지 않는 재료를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놓으면 우리 가정이 자자손손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돈에 치중합니다.
그러나 돈은 썩고 우리를 실망시키고 자녀를 복되게 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도 역시 안전하지 못합니다. 사람관계 역시 믿을 것이 못됩니다. 썩지 않고 변하지 않을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요를 다 가져보았고 세상의 명예와 쾌락 세상의 지식을 가져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헛되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정을 지을 수 있는 최고의 재료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변하지 않는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을 지어 가는 것이 가장 완전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가장은 가정을 행복으로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남편과 아내는 결코 타락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자녀는 걱정하지 않아도 반드시 자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갑니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되 역청으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역청은 송진가루나 아스팔트와 같은 재료로 잣나무로 지은 방주가 물위에 떠 있을 때 물이 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는 우리 자녀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남편과 아내의 마음을 지배하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젖어 갑니다. 가정의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창세기에 롯의 가정을 보면 롯은 가장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살았습니다.
가장이 물질중심으로 가정을 인도했습니다. 롯이 선택한 소돔은 물질이 풍부한 땅이었습니다. 세상적인 기회가 많은 땅이었습니다. 요즘 강남처럼 학군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 중요한 하나님이 없는 타락한 땅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없는 타락한 소돔성이란 환경은 자녀들의 영혼에 아내의 영혼에 타락의 물이 스며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이익이 부족하고 세상적인 기회가 부족해도 어느 곳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는가를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젖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들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역청을 발라야 됩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 속에 우리의 가정이 떠 있어도 세상의 물이 우리의 가정을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가정이 가정이란 배를 잘 지었는데 역청을 바르지 않아서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젖어 자녀가 침몰하고 남편과 아내가 물들어서 침몰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역청은 성령님이 도우시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로서 우리의 가정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120년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산꼭대기에 방주를 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세상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이고 어리석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산꼭대기에 방주를 120년 간 지었습니다.
이 말은 노아는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함으로 방주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방주는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행복한 가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 인내하는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데 때로는 비바람도 불었을 것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고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열심히 120년간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평지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지 않고 산꼭대기에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산 위에 방주를 지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한 세상에서 온전한 가정을 짓기 위해서는 산위에 방주를 짓는 것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가정을 지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 폭풍이 부는 것 같은 위기가 우리가정에 올 수 도 있습니다.
또한 이해 할 수 없는 사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면서 끝까지 진실하게 우리의 가정을 지어 가면 이후에 우리는 튼튼한 방주와 같은 가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노아의 가정은 120년 동안 모든 식구들이 하나가 되어 신앙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이 방주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노아의 가정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노아의 영적 리더십으로 판단합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라 할 정도로 바르고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범적인 가장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잘 내조하는 사랑 많고 겸손한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시각으로 보면, 온 가족이 신앙생활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중심으로, 가장은 교회의 중직으로 교회를 책임지는 위치에서 봉사하고, 아내는 교회의 주방과 굳은 일에 열심을 내는 희생적인 봉사자였을 것입니다. 노아의 자녀들은 주일학교를 통해서 잘 양육되어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고 건실하게 자라는 자녀들이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은혜 받은 식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아는 가족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방주를 지은 노아의 가정은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세상을 살리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영적 리더십으로 방주를 잘 지은 노아와 같이 여러분의 가정도 영적 리더십으로 잘 지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우리는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건물이 튼튼하고 화려하다고 해서 그 가정이 튼튼한 가정은 아닙니다.
비록 그 건물이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 가정에 웃음이 있고,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으면 그 가정은 튼튼한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입니다. 영적 리더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기초가 되어지고, 그로 인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소망을 가지는 가정은 주초위에 세운 것과 같은 튼튼한 가정입니다. 주님은 시편기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1-3)”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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