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1-12
목사 주태근
일전에 세 살 시절에 잃어버린 딸을 스무 살이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T. V.를 통해서 본적이 있습니다. 안양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던 그 부부는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아이에게 애를 맡기고 돌아와 보니 동생은 없고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고아원이란 고아원은 다 뒤지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에 가보았지만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에 이 아이는 이탈리아로 입양이 되었고, 그곳에서 시인이자 아마추어 화가가 되어 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 엄마는 아이를 잃고 나서 웃음을 잃었습니다.
딸을 다시 만났는데 자꾸 눈물만 나오지 웃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는 선거 때마다 통장이나 반장이 와서 왜 아이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느냐는 말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내가 우리아이 죽은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망신고를 하겠어요?’
라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20년이 지났지만 호적에는 이 아이가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녀를 잃어버리거나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부모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처입니다.
지난주간 G. P. 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는 우리를 경악케 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김동민 일병의 몰지각한 행위로 일어난 범죄의 결과입니다. 김 일병은 부대 전입 때부터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참들에게 항상 반항적이었습니다.
김 일병은 이 과정에서 고참들에게 질책을 당했으며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 1주일 전부터 “G. P. 소대원들을 모두 죽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등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래서 총기난사와 수류탄 투척으로 전우들의 생명을 순식간에 8명이나 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가정의 애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명아, 종명아. 제대 11일을 남겨놓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너같이 착한 아이에게 왜 이런 참혹한 일이 생겼는지….”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국군 일동병원 영안실에서 고(故) 김종명(26) 중위의 어머니 배영순(56)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오열합니다.
한쪽에선 아버지 김용배(59)씨가 아들의 영정 사진만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전북 완주 출신의 김 중위는 지난 2003년 전주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며 ROTC 41기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이달 30일이면 28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평소 바라던 경찰관이 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주위에서는 김 중위가 최근 장교 기숙사를 나와 자취방을 얻어 경찰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중위의 형 종범(31)씨는 “농어촌 학자금 융자를 받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 동생이 ‘이왕 갈 군대라면 돈도 벌 수 있는 장교로 가겠다’고 학군단에 들어갔다”며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방학 때 막노동을 해가며 돈을 마련해 집에는 손 한번 벌린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중위는 군에서도 월급을 모아 자신의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았습니다. 지난겨울에는 대학 강사인 형 종범 씨를 위해 승용차까지 마련해 줄 정도로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했습니다.
그리고 사병들을 위한 마음 씀씀이도 남달랐다고 합니다. 형 종범 씨는 “동생이 ‘요즘 사병들은 군매점에서 파는 과자나 음료수는 잘 먹지 않으니 커피나 녹차, 과자 등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며 “한 박스씩 동생에게 보내면 자기 소대원들과 나눠먹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중위의 누나 수정(34)씨는 “한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면 밖으로 놀러 다니기보다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주는 착실한 아이였다”며 “이렇게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울먹였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천금보다도 귀한 생명입니다. 아마도 부모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일이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누가 자식을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전쟁마당에 기쁘게 내보낼 부모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대 성경에는 오래전에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시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백 살 나서 얻은 아들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의 제물로 드리는 장면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번제는 나무를 밑에 쌓고 제물을 그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질러 나무가 타면서 제물이 모두 불타버리게 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동안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엄청난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를 번제로 드리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네 아들을 죽이라 는 말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수많은 제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제물을 최선을 다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기적처럼 은혜로 준 선물 독자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청천벽력 이었습니다. 수많은 생각과 판단들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대가 끊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연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얻은 자식인데 내 손으로 그를 죽여 번제의 제물로 드리라니 하나님도 매정하시지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고 성경은 증언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나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이삭, 그 부자지간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 이삭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아들이 대답합니다. "아버지의 목숨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 잘 알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제단에 올라 누워라." 아들은 이 말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어서입니다. 그 신뢰와 그 사랑이 이삭으로 하여금 엄청난 말에 그대로 순종하게 합니다. 이제 칼을 들어 내리치려고 합니다.
그 순간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리고 예비한 산양으로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리게 합니다. 이삭은 살았습니다. 그때 서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프리카를 위하여 C. T. 스터드 라는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백 년 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케임브리지 7인이며 크리켓 선수며, 당시 영국인 가운데서 가장 촉망받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훌륭했고, 큰 저택도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의 전기를 보면 재미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영국에 있는 그의 저택과 아프리카에 있는 움막집입니다. 움막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나무 기둥만 있는 천막이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못 박혀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희생과 헌신은 헌신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하여 감격할 뿐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헌신의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번제의 제물로 이삭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순종한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안전하고 더 존귀하게 반드시 돌려주실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신학자 죠셉 티손(Joseph Tson)목사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끝내고 고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많은 친구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그 당시 루마니아는 공산당 정권이 지배하면서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손 목사는 어려움에 처한 고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는 순교를 각오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체포되었고 많은 고문을 받았습니다. 공산당 관리는 티손 목사에게 복음을 전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티손 목사는 "당신이 가진 무기는 죽이는 것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죽어 순교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나의 설교 테이프는 전국에 배포되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죽이면 수많은 사람이 피로 물든 순교자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야단일 것입니다. 나는 순교 당하는 것을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공산당 관리는 순교를 결심한 티손 목사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설교하고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티손 목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지나간 25년 간 나는 살기를 원했기에 겁에 질려 나약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왔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공산당 정권의 규정에 순종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교를 각오한 뒤로는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였지만 그들은 나를 죽이지 못하였다. 지나간 25년 나는 내 목숨을 살리려다 잃어버린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내 목숨을 버리려고 하자 나의 삶을 되찾게 되었다"】
사는 것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나 사는 길만 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는 길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알아야합니다. 주님을 위해 올바른 삶을 살고자 구할 때 더 멋지게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식물들에게 각기 독특한 열매를 맺도록 하신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기 다른 헌신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 하십니다. 종은 종으로, 왕자는 왕자로, 과부는 과부로, 젊은 여인은 젊은 여인으로,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으로 각각 자기만의 고유한 헌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교가 은둔자가 될 수 없으며, 결혼한 남자가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숙련된 기술자가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물러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뜻을 발견하면서 분수에 걸 맞는 헌신을 추구해야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일하든지 우리는 헌신의 삶을 열망할 수 있고 또 열망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1890-1969)은 육사를 졸업하고 1944년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으며 원수, 육군참모총장, 콜럼비아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에 앞서 “세계의 자유민들도 승리를 향해서 함께 진군하고 있다!”는 명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전국 언론인 클럽에서 연설을 하는 중에 이런 젖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인근 목장으로 젖소를 사러 갔습니다. 마음에 드는 젖소 한 마리를 고른 후 아버지는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젖소의 혈통은 좋은가? 유지방 성분은 어떤가? 매일 얼마의 젖을 내는가?"
그러자 그 젖소 주인은 “저는 그런 건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송아지 적부터 제가 키운 이 젖소는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젖소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나에게 다 주었습니다. 이 젖소는 틀림없이 당신에게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 저는 늙은 젖소와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가진 모든 것을 국민 여러분과 미국을 위해 다 바치겠습니다." 이 연설을 듣고 있던 그곳의 모든 언론인들은 일어나 뜨거운 박수로 연설에 화답 했습니다.】
헌신은 자신을 유익케 할 뿐 아니라 남도 유익케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만백성을 구원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육이오에 희생된 선열들의 헌신이 이 나라를 민주국가로 이루는 기초가 되게 했습니다. 조국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있습니다. 헌신으로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헌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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