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 설교원고

기질과 변화(창 25: 19-34)-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5. 10:25

기질과 변화(25: 19-34)

 

 

목사 주태근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이며 저술가로 명망이 높은 하워드 가드너교수는 열정과 기질이란 책을 기록했습니다. 이 책은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을 주장해 심리학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인간은 가능성, 잠재력, 즉 다중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학설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천재와 지능지수와의 관계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I. Q.가 보통 사람의 수치 120정도만 넘으면 누구라도 월등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흔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보고 "똑똑하다" 거나 "지능이 우수하다." 라고 말하지만, 가드너는 이런 발상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지능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어떤 한 사람이 무조건 지능이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고 단정 짓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 처럼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논리, 공간 지능이 강한 반면 인성 지능은 약했으며, 미술가 피카소는 공간, 인성, 신체 지능이 좋은 대신 학문이 약하고, 문학가 엘리엇은 언어, 학문이 강하고, 음악과 신체 지능은 약했다는 것입니다.

 

음악가 스트라빈스키는 음악 및 기타 예술에 전반적으로 강했고, 무용수 그레이엄은 신체, 언어 지능이 강한 반면 논리, 수학은 약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가 간디는 인성, 언어 지능은 뛰어났으나, 예술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창조성을 발휘함으로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들 일곱 명이 보여준 지적인 강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와 양상 역시 상당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어릴 때부터 학문적인 문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참다운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무용수 그레이엄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무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엘리엇은 어릴 때부터 중요한 작업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해당 분야에서 신동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이들 일곱 명 중에 오직 피카소만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신동에 가까웠다고 가드너는 말합니다. 그러나 피카소 역시 어린 시절의 신동에서 곧바로 거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피카소는 상당한 진통을 겪고, 완전히 다른 표현 양식을 개발한 후에야 성인 거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인물들은 일단 어느 분야에 전념한 후로 무척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인물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동질감을 가지게 하는 학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껏 자신의 재능을 특별히 발견하지 못했거나, 타고난 신동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가드너 이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질에 따라 열정으로 얼마든지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갖게 하는데 공헌한 이론으로 판단됩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영성센터의 설립자인 게리 토마스의 저서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의 기질에 맞는 다양한 영성의 칼라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아홉 가지 영성의 칼라를 말합니다. 자기 기질에 맞지도 않는 영성을 추구하다 보면 영적 성장도 없고 신앙생활에 생산성이 없어서 열매도 적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인간은 자기 영성의 색깔을 가질 때,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비교하거나 불평해대는 편협성에서 벗어나서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지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또한 이 책은 신앙의 연륜과 성장에 따라서 누구나 영성의 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금욕주의 영성에서 출발했지만 특별한 계기를 맞아서 지성주의 영성으로 갔다가 그 후에 다시 경건주의 영성으로 전환되므로 풍성한 영적 체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독불장군과 같은 영성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홉 색깔 무지개를 생각해 봅니다.

 

비가 온 뒤 맑게 게인 하늘의 한편에는 무지개가 찬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지개의 아름다움은 햇빛이 공중에 떠있는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면 빛의 경로는 꺾입니다. 빛의 꺾이는 정도는 빛의 색깔마다 다른데 보라색이 빨간색보다 더 많이 꺾입니다. 물방울에 들어가기 전의 햇빛은 모든 색깔의 빛이 섞여 있는 백색광이지만 물방울로 들어가면 색깔별로 꺾이는 정도가 다릅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에서도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고 보면 물방울은 작은 프리즘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 하나하나의 작은 물방울에 하나님의 능력의 빛을 비추어서 저마다의 색깔이 표현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영성은 인간에게 심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에너지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관계를 맺으시는 방법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관계와 그 임재의 방식이 나름대로의 색깔로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각자의 다른 색깔이 있지만 모두 다 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영성의 세계는 참으로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인간의 기질은 어떠합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으로 타고난 기질만큼 묘한 것도 없습니다.

 

눈송이의 모양이 천태만상을 이루듯이 인간은 이 기질로 인해 주위 사람들과 구별되고 그 사람 나름의 특징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질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좌우하는 근원으로서 잘 훈련되고 조절되지 못할 때 그의 정상적이고 건설적인 인품까지 비정상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질에는 강하고 약한 양면성을 지닙니다. 누구나 강한 면만 생각하고 싶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약점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을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본래의 강한 면을 살리고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통한 인간치료의 역사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체내에 있는 네 가지 체액 - 혈액, 황색담즙, 흑색담즙, 그리고 가래 - 에 비유하여 네 가지 기질의 이름을 정하였는데 그것들은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기질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나와 너 차이는 있으나 서로 다른 기질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주목합니다. 야곱하면 한마디로 그는 야심의 사람입니다. 쌍둥이로 태어나면서도 먼저 나오는 에서의 발목이라도 잡아야 성이 풀리는, 천성적으로 집념과 야심에 가득 찬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든 행했던 사람입니다. 머리 회전이 남보다 빠릅니다. 또한 계산에 능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그 야심에 찬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질러버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거짓말도 잘 했습니다. 도둑질도 잘했고, 필요하다면 아버지도 속일 정도로 사기 치는 일도 서슴없이 해냈던 사람 야곱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살아갔던 사람, 잡초 같이 살아갔던 사람 야곱, 이 야곱을 보고 있으면 제 인생의 모습을 한 단면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창세기 25장부터 시작되는 야곱의 인생 스토리를 가만히 묵상하면, 한마디로 야곱의 생애는 험악함 그 자체입니다. 쌍둥이로 잉태되어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싸웁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속여 당시의 모든 사회적 종교적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장자의 권리를 빼앗습니다. 또 형 에서가 아버지에게 받아야 할 축복을 사기를 쳐서 도둑질하기도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야곱은 형에서의 보복의 대상이 되었고, 그것이 무서워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에서 20년 이상이나 타향살이를 합니다. 외삼촌 집에서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만나 칠 년을 마치 칠 일처럼 봉사합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치르고 보니 첫날밤 침실에서 보낸 여인은 자기가 그토록 기다렸던 라헬이 아니었고 그의 언니 레아였습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한동안 일한 삯도 받지 못하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촌 라반과 속고 속이는 피나는 투쟁의 세월을 보냅니다. 또한 야곱은 여자들에게서 괴로움을 당합니다. 라헬과 레아 그리고 그들의 여종들, 이렇게 네 명의 여인들 틈에서 시달리고 시달리면서 그야말로 험악한 인생을 보냅니다. 아들 열둘을 얻었는데,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얻으면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라헬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어느 날 피 묻은 옷만 남긴 채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죽은 것으로 치부된 자식, 요셉은 아비 야곱의 가슴에 큰 그늘을 드리우고 맙니다. 이렇게 야곱의 인생은 참으로 험하고 외로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고 잊어졌던 아들 요셉을 만난 순간 야곱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팔레스틴땅에 임한 기근은 야곱의 가정으로 하여금 이집트 땅으로 이주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야곱은 살아 있다는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이집트로 건너갑니다. 바로 왕 앞에 선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 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러한 130년의 인생 역정에서 그를 버티게 했던 삶의 힘과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디에서 그런 질긴 인생의 힘이 나왔을까? 그것은 바로 삶의 열정이었습니다. 내면 깊은 데에서 솟아 나오는 생을 향한 강한 집념, 그것이 바로 야곱을 버티게 했던 원동력입니다. ‘인생에서 성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필코 받아내야 한다.’

 

그 무서운 집념, 그 집념이 야곱을 험악한 인생의 길에서 꿋꿋이 견디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물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실패와 낙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좌절과 실패, 낙심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내적 집념이었습니다. 그는 남에게 잘 어울리지 않은 기질의 사람입니다.

 

혼자는 살수 있어도 남과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타고난 기질의 강한 열정과 더불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창조적 인생으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존귀한 창조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질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 기질은 하나의 기질이 아닌 여러 가지 기질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유전인자는 수많은 다른 기질이 혼합되어 물려받은 기질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기질이 있습니다. 남의 기질이 내 기질이 될 수 없고 나의 기질이 남의 기질이 될 수 없습니다. 각자 자기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 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신의 기질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나갈 때, 인간관계뿐 아니라, 삶의 질에 있어서 풍성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질에 대한 이해는 자신에 관한 건전한 자아상과 공동체의 건강을 증대시키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기질은 인간이 타고나는 심리적이고 생화화적인 질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형성하신 방법이며, 이 기질과 함께 하나님은 각 개인을 향한 위대한 인생의 목적을 계획하셨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기질을 발견하고, 자기에게 맞는 위대한 인생의 도구를 선택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원색적 기질은 다루기가 힘들고 인간관계에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옵니다.

 

기질은 인간의 행동에 가장 적극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안해야 합니다. 기질 학습의 가장 큰 유익은 자신의 기질을 알고, 그 기질의 강점을 발전시키며,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질을 학습하면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기에 인간관계가 성숙해집니다. 동시에 기질 학습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형상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이 타락은 육체적, 영적, 정신적, 기질적인 모든 인간 범주의 전적인 타락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독생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을 때, 타락으로 파괴된 모든 것으로부터 회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의 기질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변하고 싶다면 변화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서 일하심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야곱 그는 타고난 기질을 인생학습을 통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기질의 사람으로 승화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기질의 열정으로 창조적 인생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다 탁월한 존재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어울리는 기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질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질을 변화시켜 복되게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