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성숙한 민족의 모습으로(창45:1-8)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6. 10:53

성숙한 민족의 모습으로/45:1-8

 

 

목사 주태근(광복절기념주일)

어느 자리에서 함께 했던 두 분의 무명인사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한 분은 북한에 대한 증오를 가진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가진 분입니다. 북에 대한 증오를 표하신 분은 북에서 월남해 오신 가족의 일원이었고, 일본에 대한 증오를 표하신 분은 일제 시대 공출을 실제로 경험하신 분이었습니다.

 

전자는 북에 구호를 한다는 것 자체를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한국 전쟁시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후자도 일본의 짓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고 특히 친일파를 파헤쳐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지불케 해야 한다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이 더 극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완장을 팔에 두르고는 집집마다 꼬챙이를 들고 다니며 숨겨둔 곡식을 찾아다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들 때문에 곡식을 다 빼앗기고 배고팠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은 일제의 쇠사슬에 풀려나 조국의 광복을 찾은 지 60년이 되는 날입니다. 1875년 강화도 사건을 계기로 그 이듬해 병자수호조약을 체결 후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1910829일 강압적으로 합방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36년 간 식민지 생활로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갖은 쓰라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 침략에 만족치 않고 만주사변, 중일전쟁과 더불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일본은 연합군과 싸우다 1945815일 항복하여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패망으로 드디어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상처는 오늘날에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독도 문제, 해결되지 않은 정신대 문제 등등 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련 사태들은 우연히 보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일본교과서의 왜곡은 작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이 군국주의의 못다 이룬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일본 총리는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역사의 상처를 더욱 부풀게 만듭니다.

 

그의 참배 의도는 전범을 의사로 참배하겠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대동아 일본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된지 60년이 되었으나 우리 민족이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곪아가고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이 쇼크를 받으면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분함, 두려움, 미움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잠재해 남아 있으면 인간은 소위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아프면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게는 밥맛이 없고 잠이 잘 오지 않고, 근육이 경직되고 머리가 쑤십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계속되면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생기는데 여기서 암과 같은 무서운 것도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응어리를 푸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묶인 것 들을 풀어야합니다.

 

피난처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코리텐 붐 이라는 분은 나치 독일 점령 시에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것 때문에 수용소에 끌려가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종전이 되어서 풀려 나와 그가 경험했던 것을 책으로도 쓰고 세계 각 곳을 다니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독일의 어느 교회에 가서 원수를 사랑하자는 제목으로 간증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 가운데 낯익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에 자기를 맡았던 간수였습니다.

 

그 간수가 얼마나 악질이었든지 그 간수 때문에 코리텐 붐은 많은 고통을 겪었고 언니는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그 수용소에서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간수가 자기에게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간수는 코리텐 붐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간수의 차례가 되어 악수를 청하는데 도저히 자기의 손이 내밀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오른 손이 마비가 되는 것 같고 온몸에 전율이 생기며 고통스러운 증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원수를 사랑하자는 말을 하고 또 그러한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기를 괴롭히던 그 원수가 앞에 나타나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도저히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기도를 하면서 힘을 다해 오른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그 간수의 손을 잡는 순간에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 사람을 안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서는 자기를 극복하며 남을 사랑하는 성숙한 인격의 열매입니다. 용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은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많은 하인들을 부리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 요셉이 하루아침에 자기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이집트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손발에 쇠사슬이 묶여져 이집트로 개처럼 끌려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집트의 보디발의 집으로 팔렸을 때 시뻘겋게 달군 쇠로 보디발의 종이라는 표시를 몸에 새겼을 때 그 고통은 말로다 할 수 없었고, 그 표시를 볼 때마다 요셉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12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학대를 받다가 기적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자기에게 상처와 원한이 되게 했던 그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을 때 그 형제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45:3).

요셉의 형제들은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간 요셉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놀래서 말을 못한 것이 아닙니다. 눈앞에 있는 이집트의 재상이 요셉이었기 때문에 놀래서 말을 못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요셉의 손에 죽었구나' 라는 충격 때문에 겁에 질려서 말을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반응은 형제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인신매매로 팔아버린 형제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벌써 오래 전에 형제들이 자신에게 한 일에 대하여 용서하며 살았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죽을 뻔 하였다가 노예로 팔려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지만 그 마음에 원한을 갖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를 갈 시간에 그는 꿈을 갖고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바라보았고, 더욱더 성실히 충성스럽게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에게 이를 갈 시간에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더 충성스럽게 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바랍니다. 이 길만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악과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과거의 죄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미움과 욕망의 응어리 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두려움과 공포에서 우리를 풀어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주리라." 우리는 묶인 것을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남은 것, 응어리진 것, 속상한 것, 남김없이 다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남도 삽니다.

 

풀지 않으면 남의 속에서는 못이 되고 내 속에서는 암이 되는 것 입니다. 이재는 우리 민족이 성숙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스스로 사랑의 마음으로 씻어야 합니다. 성숙한 국가와 민족은 스스로 상처를 씻고 회복하여 용서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합니다.

 

상처는 용서할 때 스스로 치유됩니다. 용서하면서 성숙한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호프대학에서 71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과거의 상처나 원한을 기억하도록 했더니,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화를 낼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미시간 대학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1,3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누군가를 용서한 사람이 한을 품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니까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절반정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면 퇴원할 수 있는 환자들이라는 임상보고가 나왔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건강과 성숙한사람의 표지입니다.

 

캐서린 그리핀 이란 분은"친구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보다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교제하며 사는 사람들이 치명적 병을 이길 가능성이 높고, 더 강하고 탄력적인 면역체계를 갖게 되고 정신건강이 향상되고 사회적 유대가 약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입니다.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른 대학교에서 27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친구와 사귀고 사이좋게 지나는 사람은 감기에 걸릴 확률도 4분의 1이라고 말합니다. 276명 콧구멍 속에 감기 바이러스를 떨어트린 후 5일 동안 격리한 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평소 친구나 친지들과 사이좋게 지낸 사람들은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무엇입니까?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돕는 것이 친구입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하여 어떠한 감정을 가졌느냐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이재 친구로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합니다. 그들은 용서를 구하는 입장이고 우리는 용서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용서를 받을 자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용서할 자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유서 깊은 미국의 기독교 명문인 휘튼대학의 총장을 지낸 분 가운데 허드슨 애머딩박사 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그가 이 학교를 지원하는 후원 이사회로부터 심각한 사임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자유화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머리가 길어지고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물을 드린다는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점차 학교의 후원자들이 감소하고 학교는 재정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 학생들에게 호소했지만 학생들의 행동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총장의 마음속에도 학생들에 대한 원망스런 마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도회가 채플에서 열리게 되었고, 총장의 권면 시간이 되자 그는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머리가 긴 학생하나를 강단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자네와 자네의 친구들은 우리학교의 후원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네. 그리고 이 긴 머리 때문에 나와 내 동료 교수들이 그동안 심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을 알리려 하네. 그러나 내가 자네를 이 앞으로 불러낸 이유는 자네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네.

 

나와 나의 동료 교수들은 우리가 받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후원자들이 자네를 바라보는 식으로 자네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네. 이 긴 머리와 상관없이 자네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진리를 향한 열정을 갖고 있음을 믿고 있다는 것, 우리는 자네들의 머리의 길이와 상관없이 자네들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라네."

 

학생들은 일어나서 박수와 환호성으로 반응했고, 이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기도하는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남을 정죄하고 원망하면 서로 상처만 남고 상처로 더 큰 아픔이 계속됩니다. 이재 우리 민족은 보다 성숙한 민족으로 거듭나야합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6:14-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