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 강의록(10) : 교수 주태근
Ⅲ. 교회력과 성서일과
20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교회의 예배의 현장에 커다란 두 가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나는 주의 날에 드리는 예배가 초대교회의 모습대로 말씀과 성찬이 균형 있는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 더욱 최근의 발전된 모습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모두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사용에 관한 일치이다. 즉 교회력에 따른 세계공동성서일과의 등장과 함께 신. 구교 모두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력은 특별한 절기예식이나 통과의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독교 예배의 기초가 된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안에서 완성되어진 우리의 구원역사를 매년 재현하는 것”이다. 교회력이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로는 1589년 루터교 목사인 요한 포마리우스(Johann Pomarius)의 한 설교집에서 발견되어진다.
종교개혁가 칼뱅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들려지고 설교되어지는 곳마다...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배에서 읽혀지고 해석될 성경말씀의 선택을 위한 조직적인 체계가 필요하였다. 교회는 그 역사를 통해서 바로 그런 조직적인 체계를 만들어 왔는데, 그것이 바로 성구집인 것이다. 성구집, 즉 성서일과란 “교회력(The Church Year)에 수록되어 있는 다양한 날들과 관련 있는 성경구절의 목록”이다. 즉 “성구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드릴 때에 말씀선포를 위하여 정리되고 의도된 성경말씀의 목록”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성구집들은 4세기에 이르러 초대교회가 “교회력에 따른 계획에 의하여 성경말씀을 읽도록 정리해 놓은 것”으로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교회력의 신학적 의미
교회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수난, 죽으심, 부활, 영으로 임하심, 그리고 재림 안에서 완성되어진 우리의 구원역사를 매년 재현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교회력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바 은혜를 계속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해 동안의 여러 절기와 축일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되어진 구원이 여러 가지 양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기억하게 한다. 즉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고난, 죽으심, 부활, 영으로 임하심, 그리고 재림 안에서 완성된 우리의 구원역사를 매해 되새김으로 우리에게 구원사의 모든 과정을 계속적으로 체험케 만들어 준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력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항구적인 은총의 수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Pius Parch는 교회력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 책의 제목을 “은총의 교회력(The Church's Year of Grace)”라고 한 것이다.
또 한편 은총의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를 나타내 보이고 증거 한다. 우리가 교회력을 따른 설교를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의 죽으심뿐만이 아니라, 그의 오심과 사역, 고난당하심,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승천, 영으로 임하심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기를 계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교회력을 따라 만들어진 성서일과를 통하여 설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놀라우신 일들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감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는 표현하기를 “교회력은 선포이자 감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력을 따라 구원의 역사를 되풀이해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 사건에서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를 새롭게 얻도록 해준다. 즉 예수님의 출생, 세례 받으심(사역의 시작), 고난 십자가의 죽음, 부활...이러한 모든 것들이 재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사건들은 과거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예배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반복함으로써 우리 개인의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교회력에 맞추어 선택되어진 성서일과를 따라 설교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의 죽으심뿐만이 아니라, 그의 오심과 사역, 고난 당하심, 십자가의 죽으심, 사흘만에 부활하심, 승천하심, 영으로 임하심,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그가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전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진실로 교회력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항구적인 은총의 수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교회력에 의한 성서일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또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여 설교한다고 할 때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장단점들이 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 알아보자.
B. 주일과 교회력
교회력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째는 주일 곧 일요일(Sonntag)을 주님의 날로서 예배드리고 있고, 둘째로는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에 따라 그 시기와 사고들을 인식시키는 형태이다.
1. 주일
유대교적인 유산으로부터 초대 기독교인들은 매일의 기도시간과 안식일을 통하여 성일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7일로 된 주제도(週制度)가 유대교에서 유래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주간은 고대에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로마시대에 1주일은 8일이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한 7일 주제도는 그 기원을 서아시아에 두고 있다. 이 주중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에 유대인들은 금식하였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이에 비해 기독교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였고, 주일을 성일로 지키고 있다.
주일을 성일로 지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증거로서 우리는 고전 16장 2절과 행 20장 7절을 들 수 있다. 1세기말에 비로소 처음으로 '주님의 날'이라는 이름이 나타난다(계 1장 10절). 이 '주님의 날'은 바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동일시되고 있다.
110년경에 편집되어 당시 교회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책인 『디다케(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는 주일에 모여 성찬 성례전을 행했음을 전하여주고 있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리고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에게서 정확히 "일요일(Sonntag)"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부터 초기 기독교인들은 점차 안식일인 토요일이 아닌 주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 성례전을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321년 로마황제 콘스탄틴(Konstantin)은 기독교의 일요일에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하였다. 그는 일요일을 휴일로 공인하였다. 이로써 이제 일요일은 예배의 날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일요일은 다른 기독교 기념일들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준수되는 유대교의 안식일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서 일요일 준수는 교회의 규정들에 의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4, 5, 6세기 동안에 많은 교회회의들과 제국의 법들이 일요일의 적절한 준수를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일은 기독교의 많은 축일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서, 교회력의 기초와 핵심이 되는 날로서 그 위치와 중요성이 불변한 가운데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2. 교회력
ⓐ 대강절(Advent)
성탄절 절기는 일정한 기간을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 포함되고 있다. 이 절기가 바로 대강절(Advent)이다. 이 대강절 기간은 12월 25일 성탄절 4주전에 시작된다. 초기에는 동방교회의 영향이 스페인과 고올(Gallien)지방에서 로마교회의 것보다 더 강하였다. 스페인에서는 4세기에 3주간의 준비가 12월 17일에 시작되어 1월 6일까지 지속되었고, 이 기간에 날마다 교회에 출석하도록 되었다. 이 관습은 스페인에서 고올로 전해졌으며 여기서 북 이탈리아로 전해졌다. 4세기에서 7세기까지는 이 대강절의 기간은 다양하게 지켜졌다. 즉 3주간에서 7주간까지 여러 가지로 지켰다. 고올 지방에서는 11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6세기 중엽까지도 로마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6세기 후반에야 성탄절 전 4주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레고리 대제 하에 비로소 오늘날에 잘 알려진 대강절 예전이 확고하게 되어졌다. 처음에 대강절은 참회의 절기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또한 수난절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세기에 어떤 곳에서는 흰색 제단색깔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할렐루야 찬양은 대림절 기간에 사용되었으나, '대영광송(Gloria in excelsis)'는 예전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제단색깔이 보라색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강절이 점점 엄숙하게 되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결혼을 이 기간에 삼가게 되었다. 또한 꽃 장식이나 오르간 연주가 제한을 받기도 하였다. 실제로 가톨릭에서는 대강절 셋째주일에만 꽃 사용을 허락하고 있다. 대강절 기간인 4주간 동안에 교회와 가정에서 '대강절 트리'나 '대강절 화환'을 만드는 관습이 유행하였으며, 오늘날 이 관습은 성행하고 있다. 대강절 트리는 화분에 심어 첫째 주일부터 매일 혹은 매주일 새 촛불을 하나씩 달아 장식하는 작은 전나무나 가문비나무이다. 새 촛불을 하나씩 더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읽고 기록하여 옆에 놓아두었다. 새 촛불을 하나씩 켤 때마다 이미 달아놓은 촛들도 다 같이 환하게 켠다. 이리하여 성탄절 이브에는 나무가 온통 촛불로 환하게 밝혀진다. 대강절 화환은 교회나 가정에서 매다는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로 만든 화환이다. 대강절 첫째 주일에 붉은 초 하나를 화환에 달고 불을 켠다. 대강절 주일마다 다른 초를 하나씩 더 켠다. 가정에서는 날마다 흰 초를 하나씩 더하며, 때로는 한편에는 구약예언을 기록하고, 다른 편에는 신약의 성취를 기록한 종이별을 첨가하기도 한다.
대강절은 주님께서 성탄절에 육으로 오시며, 또한 주님께서 말씀과 영으로 오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대강절의 주제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종말론적이었다. 즉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영광으로 오심을 온 성도들이 기대하며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대강절에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 성탄절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이시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심에 대한 고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짧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고백도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교회의 한 절기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과 그 절기는 부활보다 훨씬 늦게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였던 영지주의와의 싸움이 그 원인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정확한 연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학자들은 월력에 따라 그의 탄생의 해를 주전 4년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탄생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의 명령에 따라 실시된 인구 조사에 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였다(눅 2장 1-7절). 이러한 인구조사는 농업국에서는 모든 추수가 끝난 후 가을 파종이 완료된 후에 되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가지 그의 생애와 업적, 특히 그의 부활이 그의 자세한 초년에 대한 것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아무도 주님의 탄생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해서 사람은 상징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주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날이 1월 6일이었다. 4세기까지 동방과 스페인과 고올 지방에서는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현하신 날로 지키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4세기 초에 로마에 의해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이 날은 당시의 동지였다. 이날은 연중 해가 제일 짧은 날이었고, 이후부터 해가 날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이 날이 태양과 관련되어 선택되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태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탄생은 태양이 떠오름을 의미하였고, 그의 부활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해돋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위해 해돋이였다. 이 날이 택하여진 이유를 당시에 이미 행하여지고 있었던 '태양신의 탄생(dies natalis Solis Invicit)'에 근거하고 있음을 학자들은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이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12월 25일로 지켰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의 연대기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유추를 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안디옥에서는 375년경에 지켜지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5세기에 지켜졌다. 이것은 점차로 주현절에 촉매작용을 불러 일으켜 그리스도의 탄생을 옮기게 하였다. 주후 400년경에는 로마의 경기장에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주현절에는 경기가 금지되었고, 점차로 교회력의 다른 주요 경축과 예를 들면 순교자 스데반의 기념일, 사도이며 복음서 기자인 성 요한 기념일, 크리스마스 후 제 8일로서 1월 1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일로 지켜졌었다. 함께 고대 영어 명칭으로 '그리스도의 미사(Christ's Mass)'인 크리스마스는 오랜 동안 길게 연장되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가 2-3일 동안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일반 경축기간이 크리스마스에서 열두 번째 밤(Twelfth Night)로 널리 알려진 주현절까지 연장되었다. 이러한 관습에 대해 많은 이견이 나타났다. 청교도들은 크롬웰이 17세기에 영국을 다스리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였다. 1644년에서 1660년까지 이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교회의 예배가 금지되었고 급기야는 교회 문을 열지 못하였다. 곧 평상시대로 일을 계속하였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절기는 어리석은 자들의 절기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스코틀랜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로마 가톨릭 제도의 흔적으로 보았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는 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민속적 관습과 풍물들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관습들과 풍물들 가운데는 기독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관습들이 이날의 의미를 흐리게 되어질 때 우리는 이것을 중단하여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거룩한 절기의 메시지는 우선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야한다.
ⓒ 주현절(Epiphany)
부활절부터 오순절 다음가는 절기로서 교회력의 절기 중에서 오래된 것이 주현절이다. 주현절의 의미는 '주님이 나타나심'이라는 뜻이다. 학자들은 이 절기의 근원을 2세기에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발견하였다. 여기서 1월 6일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켜졌다. 또한 후에 로마에서 발전한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이 주현절도 그 기원을 이교도의 축제일에서 근원을 발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1월 6일은 동지로 지켜지고 있었다. 테베의 아메넴헷 1세(Amenemhet I of Thebes)가 통치하던 주전 1996년에 동지는 1월 6일이었다. 바로 전날부터 시작되는 밤의 축제는 동정녀인 코레(Kore)로부터 탄생한 에온(Aion)을 축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자 계산의 과오로 인하여 지일(至日)은 1월 6일이 아니었으나 축제는 이에 상관없이 지속되었다.
'주현(Epiphanie)'라는 단어는 동방에서 '주의 오심(das Kommen des Herrn)'을 이 축제로 기뻐하려 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헬라어 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신적인 존재'가 인간 세상에 '나타남'과 또한 통치자가 한 도시에 방문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헬라 교부들 사이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을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또한 동시에 빛을 상징하는 의미와 관련하여 이 단어는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나타나셨다. 주현절은 신의 출현제(Theophany), 시현 경축(Feast of the Manifestation), 빛의 경축, 그리스도의 시현의 경축 등으로 불리워졌다. 주현절에 기념된 최초의 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였다. 또한 고대 민간신앙에서 1월 5일은 포도주와 관련되어있다. 즉 이날에 물대신 포도주가 제공되었다. 이는 1월 5-6일에 많은 근동지방에서는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교회에게 주현절에 가나에서 행하신 곧 최초의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또한 세례에 대한 생각들을 관련시켰다. 세례시 물은 놀라운 힘 곧 조명(照明)의 힘을 지닌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에서 세례는 조명(照明)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주님이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주현절은 4세기에 서방교회에서도 지키었다. 이 절기는 동방과 서방교회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절기가 동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와 관련되어 경축되어 세례축하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에 반해 서방교회는 동방의 영향아래 있던 고올과 스페인 지방 외에 대체로 주현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와 결부시키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과 관련시켜 이 날을 기념하였다. 곧 이 그리스도의 탄생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사실이 아니라 온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새로운 왕의 탄생과 관련시켰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4세기에 동방박사들의 유물들을 콘스탄티노풀에서 밀란으로 옮긴 데 기인하였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 동 서방이 지켰던 주현절의 차이는 로마의 예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육신의 신비는 두 번 나타난다. 즉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것이고, 이에 비해 주현절에서 이 인간 되신 하나님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는 거룩하심과 관련된다. 또한 요단강의 세례와 가나잔치에서의 기적은 이와 관련하여 신비로운 축제에 포함 된다: "예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었다(요 2장 11절)."
주현절은 중세기 독일에서 매우 중요한 절기로 여기어졌다. 동방박사들의 유물이 밀란에서 콜른(Cologne)으로 옮겨졌고 이날은 중요한 날이 되었다. 루터는 1월 6일을 '세 동방박사의 날'로 또한 동시에 '주현의 날'로 명명하였고, 동시에 이 축제의 내용으로 주님의 세례에 그 강조점을 두었다. 이러한 루터의 관점에 따라 16세기 루터교 예배 의식은 이날을 큰 경축일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주현절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있다. 주현절은 부활절 다음으로 세례를 주는 절기이다. 한때 완전히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물에 대한 축복예식은 동방교회가 있었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종의 민속적 축제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성직자는 바다나 강으로 나아가 기도를 하고, 수영자들이 건져오는 십자가를 물속으로 던지기도 한다. 어떤 동방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옛 교회력에 준하여 행하기 때문에 이 날이 1월 18일에 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와 이 주현절 중간기간은 서 유럽에서는 휴일이었다. 주현절은 영국에서는 열두 번째 날이었으며, 이 주현절 이브는 잘 알려진 섹스피어의 연극 중 한 제호가 되었다. 또한 크리스마스와 주현절 사이에 있는 금요일들은 금식에서 제외되었다. 중세기 영국에서는 주현절 다음 월요일이 '밭갈이 월요일(Plough Monday)'로 밭갈이가 시작되는 날이었고, 경작하고 파종하는 일에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현절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 되며 이 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음을 상기하는 귀한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빛으로 자신을 태우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절에 다시 점화되는 역사를 조명하는 계절이 되어야한다.
ⓓ 사순절(Lent)
사순절의 기원은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즉 파스카(Pascha)절 앞에 오는 금식과 세례지망자들을 위해 마련된 준비기간이다. 성주간은 전자에서, 수난절의 다른 부분은 후자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파스카절은 원시교회에서 수난과 부활을 다 포함하는 구속의 기념이었다. 이 예배중 초기 특징의 하나는 토요일 밤에 베풀어지는 세례이었다. 초기 4세기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절차는 쉽지 않았다. 하나의 지하 조직으로서 교회는 모든 후보자를 세심히 점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검 기간은 보통 부활절 때 거행되는 세례로 교인으로 받아들임으로 끝이 났다. 후보자는 금식을 하여야 했었고, 정기적인 시험이나 검사를 받아야했었다. 4세기 중엽 세례지망자들은 예루살렘에서 40일간 금식하여 부활절에 끝이 났다. 주후 313년 신앙 자유령에 따라 기독교가 공인고어 세례준비기간 이었던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기간으로 준비되었다. 수난절이 시작되는 참회 수요일은 부활절 40일전에 온다(주일은 제외됨). 수난절 첫째 주일 앞에 4일을 더 첨가한 것은 6세기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전체금식 일수를 주님께서 금식하신 40일로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절기는 교회는 이 절기를 엄숙한 예배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생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의 결혼도 이 기간에는 금지하면서 육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금식을 하면서 참회하는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겪으신 수난 때문에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게 된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였다.
ⓔ 부활절(Easter)
부활절은 초기 3세기를 통해 모든 교회가 지켰던 유일한 절기이다. 또한 이 부활절은 교회력의 모든 절기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교회력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부활절(독: Ostern, 영: Easter) 명칭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부활절 명칭의 어원적 근원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 근원을 앵글로색슨의 봄의 여신인 Eoster 혹은 Ostare에 두고 있다. 이 축일은 해마다 춘분에 행하였다. 둘째로, 이 기원을 고대 게르만 단어인 austrovon (aust=Ost)의 파생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상징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부활절과 그 기쁨과 승리의 기분은 원시 교회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이 부활절은 초대 설교자들의 전도 활동의 원동력이었으며 동시에 설교의 핵심이 되었다. 2세기 후기에는 이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가 논쟁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의 구원이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과 연결된 후에, 이것은 기독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지켜지게 되었다. 즉 오늘날까지 이 부활절은 달력으로는 유대교의 유월절과 연결되어있다. 서아시아에서는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인 Nisan월력을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매 달은 초승달로 시작된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새해를 Nisan월로 시작하고 있다. 이 Nisan월 14일 즉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 이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월 14일에 시작하였다. 이에 반해 로마에서는 Nisan월 14일이 지난 후 주일을 부활절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Quartodecimans(열 넷째 날장이)"라 불리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기어졌다. 서방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중(週中)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에는 달(月)이 중요시되었다. 이 분쟁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춘분을 정하는 데에도 난점이 생김에 따라 3월 18일부터 25일 사이의 여러 날자가 사용되어 상이한 부활절을 지켜왔다. 5세기에 이르러 천문학과 수학 연구가 활발하였던 알렉산드리아 감독에게 해마다 부활절 일자를 정하는 책임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날짜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활절에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역사 하시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신 그 주님의 구원하심을 감사하며 또한 기리고 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주님의 부활은 그들 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 부활절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 지켜졌다. 이와 함께 주님의 부활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7주간 동안 부활 주간이 계속되었다. 부활절은 토요일저녁 예배로 시작하였다. 이 예배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을 감사하며 밤새 진행되었고, 성서낭독이 있었으며, 세례식과 성찬 성례전이 거행되었고, 아마도 촛불예배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부활절에 대해 딕스(Dom Gregory Dix)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부활절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보다는 구원에 관한 예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물론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그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죄,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고난, 부활, 그리고 승천의 사건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속에 분리되어 있지는 않았다. 4세기에 이르러 부활절이 성금요일과 연관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즉 고난과 무덤에 묻힘,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3일(Triduum)의 연속성이 부각되었다. 이 오래된 3일(tridumm passionis)은 현재 고난 주간에 지켜지는 3일(tridumm sacrum) 성 목요일(Grundonnerstag), 성 금요일(Karfreitag), 부활절 전 토요일(Karsamstag)과는 구분되어 이해되어져야한다. 이 시기에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다수의 시편들이 예배에 사용되었고, 목요일에는 시편 68-76편만이 사용되었다. 이는 목요일은 당시의 부활절 3일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부활절과 관련되어 많은 관습들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기독교적인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사제들이 부활절 전날에 교인들의 각 가정들을 찾아가 부활절 음식에 축복하여 주는 관례가 남아 있다. 이는 원래 오랜 수난절 금식 기간 동안에 금지되었던 음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일부 중세기 교회에서는 수난절 초에 강단에 묻어 놓았던 관에서 알렐루야를 다시 꺼내거나 혹은 성 금요일에 안치한 관에서 그리스도의 초상이나 십자가 등을 꺼내는 관습이 행하여졌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부활절에 달걀 염색과 달걀 굴리기가 행해졌다. 이 달걀 굴리기는 백악관에서 매디슨(Madison)대통령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잘 준비된 부활절 연극이 부활절 이브에 상연되었다. 스위스 고올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14세기의 한 대본에 따르면 부활절 극이 9막 35장에 이르고 있다. 이 대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부활까지 다루고 있다. 또한 홀란드에서는 여기에 창조, 루시퍼의 타락, 인간의 타락, 발람, 이사야 그리고 구세주를 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 주간의 첫날에 이루어진 부활의 역사는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큰 생명이다. 그러므로 매 주일은 주님의 날로서 기독교 교회력에서는 또한 이를 작은 부활절로 강조하고 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과 영광을 함께 하는 새로운 존재를 경험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 오순절(Pentecost)
오순절은 레위기 23:15-16에 나오는 유대교의 추수 절기였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 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러나 1세기에는 때때로 오순절이 시내 산에서 토라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오순절은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탄생된 기념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이 유대절기인 오순절날 강림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토라를 받은 것과 성령 받은 것이 대비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시내 산에서 완성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순절날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계약을 맺었다고 그들은 믿었다. 적어도 2세기까지는 오순절이 세례를 위해 적절한 날로 여겨졌다. 미쳐 준비를 못해 부활절날 세례 받지 못한 자들은 오순절날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교회의 탄생 기념일인 오순절날 새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4세기까지는 오순절이 성령의 강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가 오순절날 승천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4세기 말에 이르러 성령강림과 그리스도의 승천은 분리되어 기념되었다. “사도헌장”(Apostolic Constitution)에는 “그리스도의 승천 기념일”이 부활절 후 40일째 되는 날이 적절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을 40일간 가르쳤다는 사도행전 1:3에 근거한 것이다.
파스카(수난절/부활절)와 오순절(성령강림절)은 교회력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로 중요한 절기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 오순절은 부활주일부터 50번째 날을 지칭할 뿐 아니라 부활주일부터 시작하는 50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유대력에서는 오순절, 즉 “첫 열매의 날”(the Day of First Fruits)을 유월절부터 시작된 한 주기의 결론으로 여겼다. 이 주기 동안 출애굽 자체와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기념되었다. 오순절은 추수의 성별에서 시작되는 추수시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란 용어는 50일 주기의 마지막날과 50일 주기 전체를 지칭했다.
기독교인들 역시 “오순절”을 오순절의 날 하루 뿐 아니라 부활절에서 시작된 50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즉 오순절은 예수의 부활에서 시작하여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교회가 탄생된 때까지의 50일을 가리켰다. 어거스틴은 “주의 부활후 이 날들은 평화와 기쁨의 기간이다. 그러므로 금식해서는 안되고 부활을 상징하여 서서 기도해야한다. 이는 매 주일 지켜져야 하고, 알렐루야 송을 불러야 한다. 알렐루야 송은 장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위치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즉 오순절은 부활절기의 일환으로 지켜졌고, 성령강림과 교회의 탄생은 부활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니케아 공의회(AD 325)는 Lent(사순절)를 “40일”로 정했다. “40일”은 금식하고 사역을 준비했던 예수의 광야 40일과 비교될 수 있다. 어거스틴의 시대에 사순절은 세례를 위한 준비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주의 수난에 동참할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이었고, 영적인 훈련의 수단인 금식은 사순절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에도 매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했다. 주의 날은 사순절 기간보다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순절 기간 중 6번의 주일은 40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순절은 따라서 재의 수요일(부활주일 전 7번째 수요일)에서 시작되어 부활절 바로 전날까지 총 46일이 되었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일러서 “부활절 기간”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교회력의 중심이다. 이 기간은 교인들이 재로부터 정화에 이르는 순례의 행진을 하는 동안 도전 받고 갱신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3. 교회력 색깔
교회절기가 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강단(Altar), 설교대(Pulpit), 교독대(Lectern), 예복과 드림천(Stole)의 구별된 색깔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특정한 날에 특정한 색깔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198년에 교황이 된 이노센트 3세가 처음으로 색깔의 순서를 말하여주고 있다. 그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기념일과 오순절을 위하여 붉은 색을 지정하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수난절과 대강절은 검은색이었다. 흰색은 교회력 전반부에 어떤 색깔이 지정되어 있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보통 색깔로 사용되었다. 녹색은 오순절 이후 보통 날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색깔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옅은 색이나 대용색도 허용되었다. 즉 녹색 대신 노랑색, 검은색 대신 보라색, 빨간색 대신에 주홍색 등이 대체되어 사용되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식서에서 보면 영국에서 시골교회들은 흰색과 빨간색 두 가지만 사용되었음이 나타난다. 빨간색은 보통의 주일과 기념일들 그리고 순교자의 기념일에 사용되었다. 이를 제외한 특별한 날에는 흰색이 사용되었다. 여기에 또한 다른 색들이 선택되어 사용되었다. 예들 들면 대강절과 수난절에는 보라색이나 자색, 성 삼위일체 주일 이후 주중에는 녹색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색깔들은 그 색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의미를 색깔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라색: 위험과 존엄을 의미하고 있다. 즉 오시는 왕을 위한 임금을 나타내며 위엄과 존엄을 암시하고 있다. 엄숙성을 나타내며 청결과 영적 씻음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줌을 나타내고 있다.
흰색: 성결과 순결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 절기에 사용하는 색으로 기쁨, 빛, 즐거움을 암시한다. 연중 최상의 거룩한 날로 지키는 풍요함을 나타낸다.
빨간색: 보혈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희생과 수난의 표이며 또한 성령의 불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희생적인 삶을 의미하며 교회의 순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초록색: 성장을 의미. 영원성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영원불변과 종교적인 소망의 신선함을 의미. 영적인 성장과 희망, 성결, 생명을 상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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