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나를 기념하라(고전11:23-26)-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9. 10. 10:34

나를 기념하라(고전11:23-26)

 

 

목사 주태근

 

초대교회는 매주일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성찬식을 자주 행하다 보니, 뜨거운 감격이 차츰 사라지고 매주일 행하는 성찬식이 형식화되어 갔습니다. 또 중세 교회는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신학적인 논리를 근거로 해서, 교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게 '수찬정지'라는 벌을 내렸습니다.

 

'수찬정지'라는 벌을 받으면 성찬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와 교황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형식적이 되어버린 성찬식, 교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잘못된 도구가 되어버린 성찬식이 포기되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우리 한국 교회는 1년에 2번 정도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인들은 성찬식은 일년에 2번씩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 개혁자이자 우리 장로교의 창시자인 깔벵은 가능한 한 성찬식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7가지 예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7가지 예전이라 함은 세례, 성만찬, 고해, 견진, 결혼, 도유, 안수입니다.

 

7가지 예전 가운데에는 여러분들에게 생소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있으실 것입니다. 견진, 도유, 등 입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이들이 다 자란 후에 다시 성숙한 신앙으로 재결단하는 것을 견진성사라 합니다. 도유는 병자성사라고도 불리 우는 것으로 임종의 순간에 혹은 병자에게 베푸는 예전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에서는 2가지 예전만을 인정하는데 세례와 성만찬이 그것입니다. 그 중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이고, 성찬식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연희중앙교회 새성전 헌당식

 

세례는 불신자가 신앙에 입문하는 예식이라면 성찬은 믿는 자의 믿음을 북 돋우어 주며 은혜를 더하게 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찬의 유래의 이해입니다. 먼저 성찬이라는 말은 영어로 '유카리스트'(Eucharist)라고 말합니다. "감사를 드린다"는 뜻의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서 "주의 만찬" 혹은 "거룩한 교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전체 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공동 식사시간이 있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음식을 준비해 와서 공동식사 시간을 통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 공동식사를 가리켜서 초대교회에서는 '아가페 식사'라고 했습니다. 혹은 사랑의 식사라는 의미로 "Love Feast"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회식은 공동식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부 사랑의 식사가 끝나면, 두 번째 식사를 실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유산으로 물려주신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다락방에서 문을 닫은 채, 비공개적으로 했기 때문에 '비밀의 식사'

 

혹은 '밀의 식사'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성찬식은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물려주신 예전입니다. 누가 복음 2219절 말씀을 보면 최후의 만찬이 나옵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증거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찬식의 원형입니다.

 

또 구약의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그 기쁨을 주님과 함께 하는 축제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유월절과 성만찬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 유월절이야말로 성찬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성경에서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냥 의식 하나 보기 좋게 만들어서 시행하는 게 아닙니다. 안 해도 되는 걸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숭고한 맘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성찬을 바로 알고 바로 참여하여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너무 자주 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왜 성찬식을 행하는지, 왜 우리가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십자가가 던져져서 잔잔한 은혜의 파도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너무 성찬식을 하지 않음으로서 성찬식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감동을 느낄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떡을 떼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고 죄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떡을 떼면서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갈기갈기 찢기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잔을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시기 위하여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려주신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좀더 발전하면 이 예식은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서는 사람의 이름이 높여져서도 안 되며 떡과 포도주의 맛에 취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높여지고 기념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자마자 그들은 날마다 떡을 떼며 주님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 주님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우리는 떡을 떼며 잔을 마십니다. 우리 위해 죽으시고 고난 받으신 주님을 잊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으로 풍성하게 넘치는 가장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 백성은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14:9-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