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제사문화(고전10:18-21)
목사 주태근
(설날주일예배)
경북 영주에 권성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박씨는 효성이 극진하여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생존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조석으로 상식을 차려 드리며 지성으로 받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남편 권씨가 기독교에 입교한 뒤에 그 아내로 하여금 조석상식을 금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 그 아내는 계속해서 자기의 효성을 한국 전통적 방법으로 지속할 수 있기를 애원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박씨는 남편의 불효한 죄과는 내가 마땅히 목숨을 끊어 사죄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 시어머니의 신주를 뒷동산 정결한 곳에 묻고 자기는 즉시 가까운 냇물에 몸을 던져 죽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1920년 9월 1일 자 신문 동아일보는 "애매 무죄한 기독교의 희생자 남편이 예수교를 믿어 상식을 폐한 결과 며느리가 대신 죽어"라는 표제로 기사를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기사가 발표되자 기독교의 제사 문제는 일대 사회문제가 되어 버렸고, 갖은 비난이 기독교에 퍼부어 졌습니다.
예수는 믿고 싶은데 조상제사 때문에 곤란하다는 말과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제사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교회를 못나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이왕에 믿으려면 천주교를 나가겠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천주교에서는 조상제사가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천주교도 조선 땅에 전래될 시기에는 제사가 금지되었었습니다. 18세기 말엽에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된 이래 조상제사와 제사를 미신으로 여겨 이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 문제화하여 1871년 신해교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발단 동기는 1791년 충남의 양반 가문의 윤지충이라는 천주교도가 모친상을 당했음에도 상례를 갖추지 않고 신주를 불태운 일로 한국의 천주교는 갈등과 핍박의 도가니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해박해 사건이었고, 곧 1801년의 신유박해로 이어져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3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뒤에도 박해는 계속되어 100여 년간 한국 천주교는 조상제사문제로 인해 약 만 명의 순교의 십자가를 곳곳에 세워야만 했습니다. 조상의 신주를 불살라 버리고 제사를 지내지 아니했다는 데서 윤지충은 결국 순교하게 됩니다.
이런 지난날의 천주교역사를 교황청으로부터 1931년 12월 8일 공자를 숭배하고 조상을 제사함은 시대의 변천과 풍속정신이 바뀐 현대 세대에 와서는 한갓 선조에게 효성을 표시함에 지나지 않는 민간의식이라고 성격을 규정하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1936년에는 교황청에서 신사차배는 일본 황실의 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국가의식으로 허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상제사를 우상시 하는 개신교 쪽보다 천주교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토록 기독교 신자들은 구교 천주교와 신교 기독교의 갈등 속에서 명절이 되면 제사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제사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문화라는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관혼상제라고 부릅니다. 먼저, 관례(冠禮)가 있습니다. 관례는 여자는 만 15세가 되면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꽂아 쪽을 찌어 주었습니다. 또 남자는 만 20세가 되면 상투를 올리고 관복을 입히고 의관을 씌워 준 다음 자(字)를 내렸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성인식입니다. 또한 혼례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결혼식으로서 인륜대사라 하여 그 의식과 절차가 엄숙하게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는 상례입니다. 장례로서 삼일장, 오일장, 칠일장 등 장례기간에 따라 명칭을 붙입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면서 제례가 따릅니다.
장례 후 제례에는 3일 만에 산소에서 절을 하고 잘 살피는 삼우제 등이 있습니다. 이상 네 가지 의례를 가리켜서 관혼상제례(冠婚喪祭禮)라고 말하며, 소위 '사례'라고 칭합니다. 이런 관혼상제는 중국에서 성리학과 함께 전래되어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제사라는 말은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서 정성을 드리는 예절"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신령에게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신령이란 모든 신을 포함하는데 자연신, 영웅신, 수호신, 가정신, 기능신, 조상신, 터주 대감 등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제사는 영들에게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제사에 ‘조상’을 붙이면 조상들에게 예를 드리는 의식이 됩니다. 조상들의 신에게 후손들이 예를 드리는 행위가 바로 조상제사입니다. 그래서 미풍양속으로서 제사는 조상에게 제를 지내지 않으면 짐승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를 지내야만 효도를 하고 그래야만 인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구실을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맨 처음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1700년대 조선시대 서학을 연구하는 실학자 이승훈 선생이 서학을 연구하다가 어느 날 제사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사문제에 봉착하자마자 제사를 바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기독교를 한국에 먼저 전해 준 중국, 북경으로 가서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거기서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고, 17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갈등을 극복하고 기독교인이 된 대표적 실화입니다. 조상제사의 의미를 기독교 시각으로 올바로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믿음을 지키면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 민족 가운데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가장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는 곳은 원시적인 아프리카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대개 사람이 죽으면 멀리 묻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 묻는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일 년 동안 방구석에 시신을 모셔두었다가 그 시체가 썩은 뒤에야 장래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 이전에 중국에서는 하(夏)나라 때와 상(商)나라 때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부모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후에 제후들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재상들도 제사를 지내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모든 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이 왕들의 조상만 훌륭하냐? 우리조상들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왕의 허락도 없이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유교학자인 주희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나 고구려 때에 모든 왕이 아니고 특수한 왕에게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 고려시대에 걸쳐서는 불교가 성행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불교 국가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절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속과 불교가 뒤섞여서 후대에 생겨난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고려 말에 중국에서 성리학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유교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이 태조는 고려와 새 왕조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고려의 불교를 물리치고 성리학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유교를 조선의 종교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주자가 강조한 조상의 제사를 이 태조가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 때에는 상당히 제사가 퍼져 심지어는 서민들에게도 집집마다 가묘 즉 서당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왕가에서 제사를 상당히 강조했고 그것을 적극 장려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나중에 제사를 받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제사를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태조 때에 생사(生祀)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훌륭한 사람이면 고을 사람들로 그 사람의 이름으로 사당을 짓도록 한 것입니다. 백성이 다니는 곳에 사람의 영정을 하나 그려 놓고 그 앞에다 춘하추동 제사를 지내는 일이 성종 때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영정, 사람의 그림을 그려놓고 했던 것이 나중에는 나무토막에 이름을 써서 신주라는 것을 만들어 거기에 지냈습니다.
또 그 후에 신주란 말이 위패란 말로 바뀌어 지고 그 다음에 점점 시대가 발달되어 나무도 흔치 않고 하여 종이를 접어 지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제사지낼 때 하루만 쓰고 불태워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왕가에서 의도적으로 장려했던 제사는 그 후 점점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선비들 사이에 큰 쟁론이 되어 사화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비참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국모가 죽었을 때 복을 일 년을 입어야 하느냐, 삼 년을 입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크게 대립하여 사람을 죽이게 되는 비극적인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당시 사원이라는 곳은 글을 가르치는 교육의 행위와 위대한 선비들에게 제사지내는 제사의 행위가 동시에 행해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창 사화가 심할 때는 서원을 중심으로 많은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대원군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하여 몇몇 아주 유명한 서원만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워 버리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이 제사의 문제의 폐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 말기에 와서 제사의 폐단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사가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교적인 것과 불교적인 것은 한국적인 것이고 기독교적인 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한국적인 것이 아니면 불교도 유교도 한국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유교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에 전해진 제사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이 한국의 전통적 개념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죽는 즉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 안에서 잠든 영혼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고 죽은 영혼은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천국과 지옥에 간 영혼은 자기 마음대로 천국을 떠나 지옥으로 가거나, 지옥을 떠나 천국으로 가거나, 이 세상에 돌아와 여기저기 다닐 수가 없거니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간 영혼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위로와 평안을 얻습니다.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는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땅 위의 무엇을 가지고도 그 이상 더한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대문에 우리는 영혼을 위해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대접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지옥에 간 영혼은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도 허락되지 않으며 불꽃 가운데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무슨 노력을 기울여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한번 죽고 나면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제사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제사상을 아무리 잘 차려도, 자손들이 제사에 아무리 많이 모여도, 그 어떤 지성을 드려도 이미 죽은 영혼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속자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제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유일의 영원한 제물로 단번에 받으셨기 때문에 다시 다른 제물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구약 시대의 모든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제사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제사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한국인의 전통적 제사는 성경이 말씀하는 제사와는 다릅니다. 제사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조상의 영혼입니다. 제사의 대상이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에 대한 믿음이 잘못되었습니다.
제사를 드림으로써 조상의 영혼이 기뻐하여 자손에게 복을 주고 재액이 임하지 않게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조상의 영혼이 묘지를 근거로 활동한다는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조상의 영혼이 주려서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도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한 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유일의 진리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리고 우상문제도 동등합니다. 우상은 실존하는 신도 아닙니다. 아무 힘도 없는 돌이나 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다른 음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의 배후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앞에서의 제사는 바로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행위가 됩니다. 우상에 참여함은 귀신들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사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사이거나 풍습이거나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제사 행위는 생활 속에 자연히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살게 되므로 자연히 그들에게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를 하면 그 제사를 받는 귀신이 생활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귀신의 지배를 받고 귀신에게 종노릇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독교인으로 두 신을 모실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의 말씀에 근거한 유일신 신앙입니다. 동시에 삼위일체 신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거룩한 영 성령님이 하나가 되어 한 분으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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