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위기와 회복(창1:27-31)
목사 주태근 : 환경주일
해마다 6월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입니다. 세계 환경의 날은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유엔 환경정상회의를 기념해 그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선포한 날입니다. 유엔은 특히 올해를 '사막과 사막화의 해'로 정하고, 사막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해 발표한 성명에서 "세계적으로 빈곤과 지속성 없는 토지 관리,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육지가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특히 사막화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유엔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중국 고비사막에 이르기까지 지구 육지의 5분의 1에 이르는 면적이 사막이며 다른 지역들 역시 사막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1일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가 전 지구적 환경 보호에 심각한 암초로 등장한 가운데 급기야 미국 본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미국의 여러 기상관측소에 따르면 올해 4월 초 중국 북부 지역에서 발달한 시꺼먼 구름이 서울을 강타했습니다. 그리고 검은 구름은 동진을 계속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부 해안에까지 진출했습니다. 문제는 중국에서 발달한 검은 구름 속에는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이 가득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입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은 석탄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의 석탄 소비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석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석탄 소비량은 매년14%씩 증가합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5년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뉴욕 타임스는 "중국이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중국발 검은 구름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날 KBS와 NHK가 공동제작한 「생명, 그 영원한 신비」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태초에서 현재까지의 시간을 1년으로 환산했을 때, 지구 위에 인류가 등장한 것은 12월 31일 오후 8시 30분경이다. 더구나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는 고작 13분에 불과하다.”
이 말은 인류가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3시간 30분전의 일이고, 13분 동안 인류는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망쳐 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1세기의 가장 심각한 인류의 문제는 생태계의 위기입니다.
환경파괴의 전반적 현상을 일컬어 환경오염, 공해,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1시간에 4종씩, 해마다 3만여종의 생물이 사라져가며, 매년 한반도의 반만큼의 땅이 사막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공기, 물, 땅이 썩어가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이 멸종되어 가거나 그 수가 격감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생물종의 감소는 생물종 상호간의 의존성에 의하여 더욱 감소하고 있습니다.
보통 1종의 식물이 멸종될 경우 이 식물에 의존하며 살아가던 다른 20-30종의 생물종들이 영향을 받게 되며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20-30년후에는 지구 전체 생물중의 1/4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사 이래 이처럼 규모가 크고 복잡한 환경문제에 일찍이 직면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날 지구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급속한 파괴는 인류로 하여금 "사실적 종말론"을 체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뿌연 하늘, 메케한 공기, 썩어 가는 강, 산성화되어 가는 토양은 서서히 이 지상에 "침묵의 봄"이 우리 주위에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하늘엔 새가 날지 않고, 땅엔 벌레나 짐승이 없으며 강엔 고기가 없는 그러한 생태계, 그리하여 죽음의 그늘이 서서히 뒤엎는 그러한 종말의 날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만든 지구 존재의 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에서의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일까? 우리 모두의 심각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지구위기의 해법은 바로 기독교창조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창조신학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의 완성'이요, '창조의 중심'이며,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기독교는 2천년 동안 가르쳐 왔습니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할 뿐이지,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 위에, 자연의 지배자와 소유자로 존재하며, 자연은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고 소유되는 재료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결국 오늘날의 자연 환경의 오염과 파괴, 생태계의 위기와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창조신학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 형상'도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정복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곧 하나님의 대리자란 뜻이요, 따라서 하나님을 대리하여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과 그것을 갖지 못한 다른 동물들을 비교하면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요,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든 동물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 명령에 근거하여 인간은 바로 자연의 지배자요 정복자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사귐과 나눔의 관계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해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연을 마구 정복하고 파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하나님이 '절대자'요, '주권자'이며, '왕'이신 것처럼 인간도 신적 권위를 가진 지배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배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이외의 사람이나 자연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 함께 살아가기보다는, 명령하고 지배하며,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혼자서만 모든 것을 차지하려 드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근대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남성우월주의, 유색인종의 문화에 대한 백인문화의 우월주의, 자연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주의가 형성되었고, 이것은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켜 왔고, 마침내 돌이키기 어려운 자연 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신학자들은 이제까지의 신학이 잘못되었음을 반성하고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고 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하여 노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창조신학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 대신에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창조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중심이 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뜻에 따라 지배되고 정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존되고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세계에 대한 지배자나 소유자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지배자요 소유자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계를 관리해야 할 관리자, 청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연의 세계를 관리하고 가꾸며 보존하여야 할 책임을 갖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심는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라고 지적하므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가꾸고 관리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창세기 1장 26절의 "다스리라"는 명령과 "정복하라"는 명령을 살펴보면 그 뜻이 분명하게 밝혀지게 됩니다.
"다스리라"는 말은 자연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돌보고 가꾸어야 할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어디까지나 주인의 뜻을 받들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보존할 책임이 있을 뿐이지 자기가 주인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자연을 다스리게 될 때 그것은 지배와 파괴가 아니라 관리와 보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복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땅을 마구 파헤치고 그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을 독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땅을 잘 가꾸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도에서 생산성을 높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1장 29절에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의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준다" 라고 말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은 바로 이런 먹을거리를 효과적으로 생산하여 사람들과 동물들이 함께 생존할 수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 인간만이 땅을 독점하여 그 생산되는 모든 것을 혼자서 먹어 버려서는 안 되고, 땅과 하늘에 사는 모든 생명을 위한 생산지로 이 땅이 제공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것은 자연의 세계를 관리하고 보존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것을 지배하고 착취하며 파괴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은 서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돕고 나누며 함께 살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청지기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면서 관리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태계의 진정한 회복과 보존은 바로 올바른 세계관의 형성입니다.
지난 5월24일(2006년) 중앙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링컨은 '우리가 신의 편이 돼야 한다(We have to be on God's side)'고 말했지만 부시는 '신이 우리 편(God is on our side)'이라고 말한다." 라는 주제입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최고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람 링컨의 종교적 겸허함을 예로 들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앙을 '종교적 절대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의 종교적 확신이 미국 외교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종교와 국제문제를 다룬 저서 '강자와 신(The Mighty and the Almighty)'을 출간하면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올브라이트는 "부시의 종교적 절대주의가 미국 외교를 경직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저서는 부시의 '종교적 절대주의'를 꼬집는 예가 나와 있습니다. 예컨대 부시는 텍사스주지사 시절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2004년 대선 때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선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하늘의 소명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올브라이트는 말합니다. “미국 전 부통령 고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더라면 이라크 사태가 달라졌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즉각적 위협으로 보지 않았으며, 고어가 대통령이 됐다면 이라크 침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문제는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링컨과 부시는 같은 기독교인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관이 형성되어 나름대로 정치인으로서 세계를 이끌어 왔고 이끌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세계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에이브람 링컨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는 정치인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세계관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인간중심의 세계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입니까?
생태계의 위기가 극복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본래대로 회복되는 길은 바로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의 회복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믿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느니라.”(골1:20) 아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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