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 설교원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히(출40:17-33)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9. 11:07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히(40:17-33)

 

 

목사 주태근

 

어느 집의 가장인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자기 집에서 인기투표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이 누구인가를 정하는 투표입니다. 아니 식구 4명인 집에서 무슨 인기투표를 합니까? 우스운 일입니다. 그래도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인기투표를 했는지 방법은 이러 합니다.

 

아버지는 기호1, 엄마는 2, 큰 애는 3, 작은 애는 4번이라고 정하고, 각각 무기명 투표로 번호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 표는 나올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내한테 평상시에 잘해준 것도 없고,

 

큰 애는 암만보아도 엄마편인 것 같고, 작은애도 더욱 그렇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자존심이 있지 한 표도 안나오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 고심하다가 자기가 자기 번호를 썼습니다. 그런데 개표를 하고 보니까 전부 아버지 표만 나온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에게 동정표를 던진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들의 마음을 모른 아빠는 그만 들통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아내도 자기를 안 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두다 아빠만 바라보고 온 식구가 참다못해 폭소를 터트립니다. 결국 아빠는 쪽팔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식구들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정말 인기투표를 하면 표가 나올 수 있는 존재입니까? 내가 내 번호를 써 넣어야 할 만큼 절박하지는 않는지! 우리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자기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원숭이가 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기에 나온 이야기로서 자신의 삶을 위하여 탈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경제 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살아가기 힘든 때 한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동물원에 들러 일자리를 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며 간곡히 부탁합니다.

 

사정을 들은 동물원 주인은 그렇다면 일을 주겠다고 하면서 원숭이탈을 꺼내 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숭이 우리에 들어가서 원숭이처럼 놀아주되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합니다. 밥을 먹기 위해 원숭이탈을 쓴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원숭이탈을 쓰고 우리에서 근무합니다.

 

하루는 우리에서 원숭이처럼 그네를 타고 놀다가 그만 잘못하여 옆에 있는 호랑이 우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 순간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아이쿠! 어머니!"라고 소리치게 되었습니다. 떨어진 그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구석에 엎드려 있던 호랑이가 서서히 일어서더니 천천히 그 사람 곁으로 오더니만 눈 감고 두려워 떠는 그에게 속삭이듯 말합니다. "너도 내 팔자와 같구나."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탈을 쓰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룩한 탈을,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탈을 뒤집어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탈은 결국 벗어지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 세상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 참된 생명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일년에 약 1000만 명 이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이 런던과 파리입니다. 런던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버킹검 궁전입니다.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하는 장면이나 여왕의 황금마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궁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립니다.

 

그 버킹검 궁에 가면 국기 게양대에 아주 멋진 깃발이 하나 휘날리고 있는데, 그 깃발은 이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깃발이 달려 있으면 여왕이 지금 궁에 있다고 하는 뜻이요, 혹 깃발이 없는 때는 여왕이 출타 중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깃발이 있으면 큰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여왕과 황금마차의 행렬을 보기 위함입니다.

 

 사우디 담만한인교회 임직식 기념(1997년)

 

  (담만교회 임직자들과 동역자들 기념)

 

오늘 본문 말씀에 계속되는 403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 성막을 완성했을 때 성막 위에 구름이 덮였다고 기록했습니다. 깃발 대신에 영광의 구름이 임하였습니다. 당시 모세와 브사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영국 여왕과 그가 타는 황금마차 보는 것도 황홀한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구름을 보는 순간 그들은 너무나도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배치를 하면서 또 그 감격은 갑절이나 컸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성막에는 여러 기구들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배치한 후 반드시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다고 하는 후렴 귀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막 동편에 난 문을 통해 성소를 들어가면 유대인의 뜰이 나옵니다. 뜰 앞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번제 단입니다.

 

번제 단을 지나면 손과 발을 씻어야 할 물두멍이 나오고, 성소로 들어가면 정면에는 분향 단이 있어서 늘 향기로운 향이 성소를 가득 메웁니다. 그 오른쪽에는 떡 상이 있고, 왼쪽에는 촛대가 있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속죄소, 곧 시은소가 법궤를 중심해서 놓여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모세의 취향도 아니고 기술자인 브사렐과 오홀리압의 취향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명하심대로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8차례나 반복되어지는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고 하는 말씀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 2절과 17절에 보면 2가지 중요한 내용이 반복되어져 나옵니다. 그것은 성막을 세우는 날짜입니다. 성막을 세우는데 정월 초일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완성하고 영광 돌려 드리는 그 날이 제 이년 정월 초일일이라는 것입니다. 제 이년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만 일년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출발의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날, 성막을 세우고 예배를 드리는 바로 그날이 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작의 날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의 근원입니다.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세워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백성들 위에 머무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세우시기 위하여 당신의 영광을 이스라엘 위에 나타내시고 이스라엘의 성전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이스라엘을 상상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 없이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것을 아주 잘 보여 줍니다. 에스겔 432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동편에서부터 임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할 때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이 건축한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처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은 엄청난 과오를 범합니다. 우상숭배와 더불어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그 때 에스겔이 받은 계시입니다. 에스겔 1018, 19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고 동문에 머무르는 환상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일삼고 타락하여 언약의 말씀을 헌신짝 버리듯 파기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성소를 떠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떠남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멸은 멸망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동문 밖으로 나가자 이스라엘은 곧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영원히 멸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존재의 시작은 곧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가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가봇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일어난 일을 기억해 봅니다. 당시의 엘리 대제사장에게는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안 좋게 표현되어 그들을 일컬어 불량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사장을 가리켜 불량자라고 하였던 까닭은 이러합니다. 하나님 앞에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서 송아지나 양을 끌고 와서 제사 드리려고 하면, 그 두 아들은 사환을 시켜서 제사 드리기 전에 고기를 빼앗아가곤 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은 삶을 것은 삶고, 기름은 다 태워 제사 드린 후에 제사장에게 주게 되어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고 말합니다.

 

사환이 제사 드리러 온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제사장은 삶은 고기를 원치 않고 생고기로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그들 자신이 먼저 먹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괘씸합니까? 결국 이 일로 인하여 민족에 시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나라로 하여금 쳐들어오게 합니다. 백성들의 간담이 녹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소원은 한시바삐 법궤를 가져오는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홉니가 법궤를 앞에서 메고, 비느하스는 뒤에서 메고 전쟁터에 나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고 그만 법궤는 빼앗기고 맙니다.

 

그 법궤를 메고 나아갔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두 아들의 아버지 엘리 대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고, 둘째아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기를 해산하기 직전이었는데 충격을 받으면서 아기를 낳고 이 여자는 죽어갑니다. 그러자 산파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때 둘째 며느리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는데 아들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 제사장 집안에게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거나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이상으로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가정에 가득한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을 넘어서는 차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제하고 관련이 됩니다.

 

영광이 있으면 그것은 부흥이요, 성장이요, 빛이지만 영광이 거두어 지면 그것은 멸망이요, 고통의 시작이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이스라엘에게는 최대의 축복의 사건입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지금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성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적 삶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일으키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새롭게 하시는 놀라운 은총의 사건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어야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임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는 자리였습니다.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제사 즉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함 입니다. 즉 정결입니다. 정결 없이 제사란 것이 불가능합니다.

 

올바른 제사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만 백성을 사하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거룩케 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에게 주님의 의가 주어집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임합니다.

 

믿음은 주님과의 약속입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약속은 거룩의 삶입니다. 거룩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의 삶을 삽니다. 우리는 결단해야합니다. 거룩의 삶이 하나님 영광의 회복이요 축복의 은혜입니다.

 

가정을 거룩하게 교회를 거룩하게 나라를 거룩하게 만들어야합니다. 내가 먼저 거룩하면 세상이 거룩해집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4:7-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