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삽시다(출20:1-17)
목사 주태근
미국에서 십계명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는 공원에 10계명이 새겨진 돌비석이 미 헌법의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오스틴 지역에서는 법원 벽에 부착되어 있는 십계명을 제거해야한다고 어떤 무신론자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3년에 앨라배마 주 대법원장이 법원에 10계명을 새긴 돌비석을 설치하려다가 시도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 분은 미 헌법이 성경에 기초했는데 구약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공공에게 알리는 것을 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하고 대법원장 직을 사임까지 했습니다.
십계명을 전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쪽 입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서적인 원칙에 의하여 만들어진 미합중국 헌법이 미국 생활에서 정치 종교 분리가 아니라 기독교 영향을 제거해 버리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8.15 해방 이후 제정된 이래 여덟 번이나 개정되어 왔습니다. 태국의 헌법은 열 한번이나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헌법은 1787년에 제정된 이래 2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허셀 포드 목사는 그 이유를 말합니다.
미국의 헌법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맞는 인간의 변함없는 생활원리를 제시한 십계명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물질적으로는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으로도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바람직한 생활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국가의 경제원리와 풍요로운 사회의 건설원리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정신적인 행복이 물질적 행복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는데 있습니다.
주간 신문 "미래한국" 지난날 기사 중에 보면 "이 시대의 가장 재능 있는 소장파 역사학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퍼거슨(N. Ferguson) 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게재한 기고문을 요약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퍼거슨 교수는 "미국이 유럽을 앞지르는 이유는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근면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는 근면하고 경건한 개신교 노동윤리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그 윤리가 유럽에서는 죽었고 그것이 유럽연합의 어두운 미래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O E C D 경제개발협력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년 평균 근로시간은 1,976시간인데 반해 독일인에게 있어서는 1,535시간이고 북부유럽 국가에서는 이보다 더 적다고 말합니다.
또한 1979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인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약 50시간 늘었는데 반해, 같은 기간 동안 독일인들의 근로시간은 평균 12%가 줄었다고 말합니다. 파업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근로자 1,000명 당 파업으로 날려버린 날 수가 스페인의 경우는 271일이고, 덴마크,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의 경우에는 80일에서 120일인데 반해, 미국은 50일 미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가 어떻게 해서 생겼다고 퍼거슨 교수는 주장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북유럽 국가들에 있어서의 노동시간의 감소는 교회에 가는 횟수가 격감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는 사람의 수가 전체인구의 10%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민 약 50%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경우에는 82%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유럽은 계속해서 미국에게 뒤처질 것이라고 퍼거슨 교수는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신앙에 기초한 근면성", 이것이 오늘날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로 만든 이유라는 것입니다.
(서울서노회 40주년 기념행사)
(서울서노회 40주년 기념행사 : 행운권 추첨 당선)
십계명을 영어로는 데컬로그(decalogue)라 말합니다. 데타(deca)는 "열"이란 단어이고, 로그(logue)는 로고스(logos) "말씀"이란 단어 입니다. 합하여 "열 가지 말씀"이란 뜻입니다. 열 가지 계명들 중에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사람들에 대한 계명들입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사랑"인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입니다. 하루는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어느 계명이 최고의 계명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둘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골자이다"(마 22:37~3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들은 이제부터 이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내 백성이 될 수 있다. 만약에 너희들이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내 백성이 될 수 없다'라고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은 언제나 이를 어길 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족쇄가 됩니다. 죄의 웅덩이에 빠진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 빠져 나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살아라." 그게 바로 십계명입니다.
한 신자가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 성지순례에 대한 희망 사항을 말한 뒤 "목사님 저는 반드시 시내 산꼭대기에 올라가 십계명을 낭독할 거예요."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저는 그 보다 더 좋은 것을 추천하고 싶군요."라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신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목사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십계명을 낭독하기 위해 먼 곳까지 가는 것도 좋지만, 먼저 댁에서 그 십계명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십계명과 모든 율례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지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을 건져 주심에 감사해서 기쁨을 가지고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 십계명 속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들의 영원한 잦대가 되는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언제 주셨습니까? 그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 십계명을 주시어 이것을 잘 지키면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주겠다고 조건부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비록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집트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이긴 하지만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꽁꽁 묶어둘 족쇄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이집트의 노예가 아니라 세상의 주인인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으니 이집트에서 가졌던 누더기 같은 옛 생활은 벗어버리고 새 옷과 새 생활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기준을 가지라고 십계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기념으로 이전에 입고 있던 무질서와 노예근성이라는 누더기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깨끗한 '새 옷'이라는 선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은 자유를 구속하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는 다른 민족들처럼 막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한 삶'을 산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인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시면서 그 나라의 백성의 특징을 먼저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십계명의 서문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 하나님이니 너를 종 되었던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한 자로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연히 방황하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인도한 사람들이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선포하시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 자기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선언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주도되시고, 우리의 하나님도 되시고, 또 우리의 구속자도 되시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그의 계명들을 지켜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3절서부터 제1계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먼저 너희들이 얼마나 은혜를 입은 존재들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내가 말하는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시는가?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하여 낸 것입니다. 너희들을 인도하여 내었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들을 인도해 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들을 인도하실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들을 이집트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말씀을 지켜야 내 백성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지 않느냐? 너희들이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가를 보았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래? 그래 맞다 이제 내 특별한 백성들처럼 그렇게 살아야지 거룩한 백성처럼 그렇게 살아야지 알았니?"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계명이 먼저가 아니고 은혜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먼저 주시고 이제 은혜를 입은 자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계명을 주면서 '이것을 지켜라 그러면 구원해 줄게'가 아니라 '구원해 주시고 이제 구원받은 자처럼 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자들인가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즉, 은혜를 입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은혜를 입었으니 이렇게 살라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십계명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 것이고 즐거운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한한 영광이요,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이 시대의 슬픈 기사가 났습니다. 죽음으로 끝난 10억원 만들기입니다. 세무공무원으로 퇴직한 어느 분이 퇴직금 5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부인과 사별하고 딸과 함께 상경해서 옥탑방에서 부녀가 살면서 10억원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주식에 투자하고, 로또복권을 샀습니다. 이들은 1년 4개월 만에 돈을 모두 날리고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딸은 죽고 아버지는 구속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1년 이내에 10억을 만들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하여 퇴직금을 모두 투자하였다가 다 날린 것입니다.
가장 큰 축복인 생명을 세상의 헛된 것과 바꾼 것입니다. 세상에는 축복을 저주로 바꾼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사람도 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의 장군이었던 윌리엄 넬슨(William Nelson)은 켄터키 전투에서 말다툼 끝에 가슴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사소한 말다툼 끝에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병사들이 장군에게 달려갔을 때 장군은 “목사님 불러주게. 세례 받고 싶네”라고 하였답니다. 남은 자신의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남군의 로버트 리장군을 생각했겠습니까? 의사를 불러달라고 했겠습니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영혼을 준비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것입니다. 교회에 주신 율법도, 십계명도 다 현재와 영혼을 이어주는 은총입니다.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입니다. 생명을 다 하여 지켜야 할 축복입니다. 영혼을 향한 현재적 은총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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