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주태근
199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미시시피 주 태생의 작가 리처드 포드 씨는 지난달 31일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남쪽의 미시시피 강, 북쪽의 폰처트레인 호수 사이에 끼여 있는 뉴올리언스는 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생활의 젖줄이자 상품교역 창구로서 주민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줬던 물이 이번에는 대재앙으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이 지역의 ‘사발효과’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고 분석합니다. 도시의 70%가 해수면보다 0.3∼6m 낮아 저지대 도심으로 물이 계속 유입됐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폭우로 물이 불어나 수압을 이기지 못한 운하 두 군데가 붕괴되자 도시의 80%가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로 모래주머니를 투하해 물이 더 유입되는 것은 막았지만 그러나 몰려오는 물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망자 1만 명이상이나 생기는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구는 계속 더워지고 있다”라는 책과 “비등점”이라는 책의 저자인 로스 겔브스팬은 지난 8월30일자 보스턴글로브지 기고문을 통해 “카트리나의 본명은 지구온난화”결과라면서 이번 허리케인을 인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초 미국 LA 지역에 60센티미터가 넘는 폭설과 스칸디나비아의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켰던 시속 198킬로미터의 강풍과 지난 7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휩쓴 사상 최악의 한발과 산불, 그리고 아리조나주의 살인적인 무더위도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대기가 뜨거워질수록 가뭄은 더 길어지고 폭우는 더 집중적으로 내리며 더위는 더 자주 찾아오고 폭풍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 허리케인 전문가인 윌리엄 그레이 교수와 동료연구진은 공포를 주는 연구발표를 했습니다.
“허리케인 시즌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아 카트리나에 이어 시속 177㎞가 넘는 강풍을 수반한 또 다른 대형 허리케인이 9월중 해안지역을 강타할 가능성이 43%나 된다”는 예측보고입니다. 그러나 태풍보다 더 불안한 예측은 캘리포니아주의 대지진의 가능성입니다.
남가주지진센터의 연구진들은 오는 2024년 이전에 진도 7.0 이상의 강력한 지진이 캘리포니아주 남부를 강타할 확률이 80~90%에 이른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지구가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수 없는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계속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광고 문구를 대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모세의 기적현장으로 모십니다." 이것은 여행사에서 여행객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내건 그런 광고 문안입니다. 간만의 차가 큰 서남 해안에서는 물때라는 시간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바닷물의 들고 빠지는 때를 말합니다.
물때를 구분하는 말 가운데 '한 사리'와 '조금'이 있는데, '한 사리'는 음력 매달 보름날과 그믐날에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를 말합니다. 즉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상에 있어서 만유인력이 가장 센 때이므로 물이 가장 많이 들고 또 많이 빠지는 때입니다.
'조금'은 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음력 매달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때는 해와 지구와 달이 서로 직각인 위치에 있어서 지구가 느끼는 인력이 상쇄되므로 물이 가장 적게 들고 적게 빠지는 때입니다. 우리나라 진도의 회동마을 앞바다에 장장 2.8km에 걸쳐 드러나는 신비의 바닷길은 해마다 음력 3월과 10월에 나타납니다.
이렇게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현상은 회동과 모도 사이의 바닷물이 썰물로 인해 빠지면서 나타나는데, 지형적 요인과 달, 태양의 위치가 1년 중 지구에 가장 강한 인력을 미치는 곳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이 같은 현상은 하나의 자연적인 그런 현상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출애굽기 14장의 말씀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모세의 기적"이라고 하는 그 기적의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판 허리케인 카트리나 현상과 비슷한 천재지변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 노릇을 하던 모세를 호렙산 기슭에서 부르시고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형 아론과 함께 바로 왕 앞에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고향 땅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바로 왕은 그 막강한 노동력을 상실하기 싫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 그리고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을 다 죽게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왕이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보내게 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은 그들이 이집트의 430년 종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에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다 쳐서 죽이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릅니다. 그 양의 피가 있는 모든 집은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면서 이스라엘 집은 모두 다 넘어 갑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라 명칭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풀려 나와서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서 진군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고 난 뒤에 이집트의 온 군대와 마차와 특별병거 600승을 포함한 추격대를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기 위해 다시 추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이집트의 군대가 이스라엘 근처까지 추격해 따라 왔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계곡사이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목도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대해서 불평을 합니다. "왜 잘 살고 있는 우리들을 이끌어내어서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 "우리를 상관하지 말아라. 우리는 차라리 이집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낫겠다" 하면서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추격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모세로 하여금 손을 내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바다 물이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추격하던 이집트의 군대들은 그 홍해바다에서 다 수장을 당하고 맙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위력으로 해일이 일어나 바다가 뒤집혀 갈라지며 다시 덮치는 기적의 사건입니다.
여러분, 유월절의 그 감격에 사로잡혀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 다다르자, 뒤에는 '이제 정말 독 안에 든 쥐다'라고 생각했던 이집트의 추격대가 따라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감에 어찌할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날 본 이집트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에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가게 될 것이다." 네 손을 내어 밀라는 말씀입니다.
손을 내어 미는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려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드라마 가운데 ‘모래시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과도기를 시대의 아픔과 함께 보여주었던 내용이었기에 모두가 더 공감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사람을 모으게 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제 주인공이 사형을 언도 받고 죽게 되는데, 사형장에서 친구 검사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 말도 유행했던 것을 봅니다.
당시 주인공은 강한 카리스마가 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전혀 무서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두려워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러한 입장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위기감을 가지게 됩니다.
지난날 미국 역사에 해충 재해로 남부 일대의 목화가 전멸한 일이 있었습니다. 1895년 바구미(weevil)가 번져 앨라배마부터 텍사스까지 소위 목화지대가 전멸해버린 것입니다. 당시 해충을 극복할 방법이 농부들에겐 없었습니다. 깊은 좌절과 절망만 찾아왔고 그저 땅이 저주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 하나로 다시 땅을 일구면서 바구미에 견딜 만한 작물을 이것저것 심어보며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20년이 지나지 않아 목화로 망해버렸던 이 땅은 세계 최대의 땅콩 생산지인 풍성한 땅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땅콩버터를 포함해서 땅콩을 재료로 만든 모든 음식들은 이 때 미국 남부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당시 1919년 세계 최대 땅콩 생산지가 된 앨라배마 주의 엔터프라이즈 마을은 세계 땅콩 수도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마을 법원 앞에 한때 절망과 좌절을 가져다주었던 바구미 벌레의 동상을 크게 만들어 놓고 동상 밑에 이런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바구미 벌레에게 감사한다.’자연재해로 인해 저주 받은 땅이었지만 하나님 주신 거룩한 땅, 약속의 땅으로 믿고 다시 일어섰을 때는 축복의 땅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손을 내어 밀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기도만 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대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생활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손을 문제를 향하여 내어 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홍해의 이야기는 먼 옛날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의 신앙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됩니다. 즉 우리가 일반 상식과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일지라도 믿음으로 밀고 나가면 홍해가 갈라지듯이 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아무 일이나 무조건 믿습니다 하고 나아가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욕심 내공명심을 위해서도 아니고, 세상에 연민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앞길에 홍해가 가로 막은 것 같이 문제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진퇴양란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의 홍해의 기적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손을 내어 밀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료하시면서 줄 곧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자연재해로 집과 가정을 잃었습니까? 절망하지 맙시다. 물질로 말미암아 쫓기는 빚쟁이가 되었습니까? 새로운 시작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건강을 잃어 포기상태에 있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살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느니라.”(히11:33-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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