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반석을 치라(출17:1-7)
목사 주태근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샨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굉장히 친한 친구사이였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만 친구 샨이가 황제의 비유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나폴레옹은 친구 샨이를 감옥 속에 집어넣고 말았습니다.
감옥 속에 들어간 샨이는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원통하고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감옥에 앉아서 원망을 시작합니다. 자기 친구를 원망을 하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도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옥 벽에다가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답답한 마음으로 그런 글을 쓰고 비탄과 탄식 가운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벽 틈으로 아주 가녀린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조각의 빛을 받아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잎사귀를 보면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싹이 점점 자라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작고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면서 샨이의 마음속의 어둠이 거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캄캄한 감옥 속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쓴 글을 다 지워버리고 다시 새로운 글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신다." 이 글을 쓰면서 매일매일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샨이의 옥중생활이 옥 밖까지 소문이 퍼져 결국 왕후 조세핀에게 들어갔습니다. 왕후가 말합니다. "이렇게 꽃을 사랑하는 걸 보니 별로 나쁜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리고는 자기 남편에게 부탁을 해서 왕의 친구 샨이가 무죄 석방이 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원망은 삶을 죽일 수도 있으나 긍정의 힘은 인생을 살린다는 실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이집트의 오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400년이 넘는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다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더구나 만왕의 왕, 만군의 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이집트에서 건지심을 받았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바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좋아서 악기를 잡고 춤을 추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과 기쁨과 감사가 결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대략 물을 3만 리터 정도 마십니다. 인체에 있는 동맥과 정맥의 총 길이는
10만km나 되며 그 속을 흐르는 피의 대부분 약70∼80%도 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에 갖고 있는 물의 2%만 잃어도 갈증을 크게 느끼게 되며 갑자기 7%정도를 잃으면 혈액순환이 멎고 죽게 됩니다. 물이 없으면 동물이나 식물의 그 어느 것이라도 살 수 없습니다.
물은 모든 호흡 있는 것들의 생명입니다. 지구 표면의 71퍼센트가 물입니다. 깊은 곳은 바다 깊이가 11킬로입니다. 바닷물이 물의 97퍼센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물은 전체 물의 3퍼센트 정도입니다. 강물 전체 다 계산해도 우리가 쓰는 물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남극, 북극에 있는 빙산의 69퍼센트는 영원히 쓰지 못하는 물입니다. 이처럼 땅에 흐르는 물은 바닷물에 비해서 비교가 되지 않게 적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이 물이 귀합니다. 물의 선물은 우리에게 필요 불가결한 선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농사지을 땅도 없고
특별히 식량을 준비한 것도 아니기에 200만의 인구를 기적이 아니고는 먹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예에서 자유를 얻은 기쁨과 해방감만으로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모세를 원망하고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목말라 죽을 지경에서 모세를 원망하고 서로 다투는 것은 쉽게 동정이 가는 상황이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히 그러한 불평과 원망과 다툼을 책망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죽음의 바다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의 기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베푼 직후에 그런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메추라기와 만나의 하늘 양식을 주신 것만 봐도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목말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서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을 안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 왔느냐, 우리의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 당장 물을 달라고 생떼를 썼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
급기야는 모세를 돌로 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매우 극단적으로 도전합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저들이 당장 돌을 들어 쳐 죽일 것만 같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돌질 당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그 동안의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사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 더욱 더 가슴 아팠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내가 네게 지시한 한 반석 앞으로 지팡이를 들고 나아가라 내가 호렙산 반석 옆에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러면 물이 나올 것이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데로 홍해를 쳤던 지팡이를 들고 호렙산 반석위에 서서 반석을 내리쳤습니다. 그랬더니 반석이 터지고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박 인환 목사님이란 분이 전임지에서 학교를 건축할 때의 일입니다. 건물 400여 평을 짓는데 흙벽돌 5,550장을 찍는 일로부터
벽을 쌓는 일까지 쓰여 지는 물을 꽤 멀리 떨어진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지게로 져 와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박 목사는 기도하는 중에 교회 맞은편 산 중턱을 파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71년 10월 25일 청년들과 함께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깊이 5m 정도를 팠습니다. 그러자 암반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암반이 있는 곳에는 물이 나오기 힘들다고 하며 다른 곳을 파자고 말했습니다. 박 목사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할까 하다가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생각나
암반을 깨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하지 않고 힘을 다해 암석을 깨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도 교회 종소리가 듣기 싫다며 종종 시비를 걸어오던 남자 두 사람이 우물 파는 곳까지 쫓아 올라 와서는 소리칩니다.
"당신 미쳐도 단단히 미쳤소. 산 깎아내고 교회, 학교 짓고, 또 운동장 닦는다고 소란을 피우더니 이제는 또 무엇이 원통해서 야 밤 중에 두더지처럼 산을 파 뒤집어 놓는 거야? 이 높은 산에서 무슨 놈의 물이 나온다는 거야. 당장 메워요."
그뿐 아니라 "이곳에다 우물을 파면 이 산 너머에 당집이 있는데 그 당집의 귀신이 노해서 동리가 망해요"라고 시비를 겁니다. 이에 박 목사는 "여보세요! 당신네들이 섬기던 귀신은 6.25때 모두 대포에 맞아 죽었는데 귀신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하고 소리 질렀더니 그들은 내려가 버렸습니다.
교인들은 계속 돌을 깨어냈습니다. 11월 17일 새벽 2시에 드디어 흙이 섞인 물줄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샘이 터진 것입니다. 박 목사는 수도관을 묻고 교회와 사택 그리고 학교, 운동장 등 20여 곳에 상수도 시설을 하여서 그 높은 지역에서도 수돗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신앙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치라 명하지 않으시고 대신에 한 바위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위에서 모두를 살리는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그 가축들이 살수 있도록 해결해 주셨습니다.
후일에 바울은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바울은 여기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친 그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반석’ 바로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원문은 그냥 반석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반석”이라고 표현합니다. 호렙산의 아무 반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한 특별한 하나의 반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반석’이라는 말속에는 하나님이 계획한 어떤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석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반석을 칠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법정에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이 “치라”고 명령합니다. 그 지팡이로 무엇을 치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닙니다. 호렙산 ‘그 반석’을 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반석을 치라고 명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라고 말합니다. 반석위에 하나님이 서 계신다음 그 반석을 치라는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쳤는데 누구를 친 것입니까? 하나님 자신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나를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실은 저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쳐야 마땅합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지팡이는 죄를 범한 인류를 향한 하님의 진노를 쏟아 부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하셨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나를 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기 백성들을 심판하는 대신 자신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대신 맞으신 하나님,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심판과 진노를 쏟아 붓는 대신에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가 서야 할 심판의 자리에 대신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깨어진 반석은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맞고 심판받아야 할 그 자리에 오셔서 대신에 깨진 반석이 바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반석이 깨어지면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완악하고 불신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대신 구원의 샘물이 반석에서 솟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이며 인류를 구원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죽었지만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돌리시지 않고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전가시켰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맞으셨습니다. 대신 피 흘렸습니다. 대신 아파하셨습니다.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반석에서 솟아난 샘물은 그런 의미에서 은혜의 샘물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버리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과제입니다. 모세를 향하여 반석을 치라 명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들도 역시 반석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반석 되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들 모두에게 구원을 선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반석을 치라는 주님의 명령은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반석 되신 주님 안에 살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힘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살이에 목이 마르십니까? 삶이 피곤해졌습니까? 원망 불평만 생깁니까? 반석이며 생수 되신 예수님 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반석에 샘이 터지게 하듯 우리의 문제를 해결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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