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많으니라(행 18:4-11)

목사 주태근- 전도목적의 달
교수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독실한 성도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교수인 데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전도하여도 우이독경입니다. 예수 안 믿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전도를 받아 드리지 않는 것을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목사님에게 전도를 부탁합니다. 목사님이 교수님을 찾아가 전도합니다. <교수님! 예수를 안 믿으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그 교수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뭔가 자기가 부족하고 모자라니까 그것을 채우려고 예수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으니까 매달리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구차하게 그렇게 매달리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나 혼자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그 교수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금방 낫지 않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 감기 정도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교수의 입원 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또 한 번 병원으로 찾아가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어도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지 못 하시나요?> <무슨 말씀하세요? 감기는 누구나 걸리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제가 약하다고 느끼다니요?> 그래서 목사님은 전도도 못하고 돌아 와야만 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부인으로부터 아주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남편을 정밀검사를 한 결과 폐암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남편 교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침대에 멍하니 누워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찾아 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지금도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못 느끼십니까?> 교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참 바보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온 낙오자 같습니다.>
그는 이제야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은 그 교수에게 진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못 살았지만 영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고 구원받기를 참으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처한 곤고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도를 앞두고 바울의 복음전도사역이 미궁에 빠져 들어가 허탈감에 빠져드는 그의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전도가 기대한 성과에 못 미침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를 바라보고 판단한 결과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타락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구약성경에 소개 된 성적, 도덕적으로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 도시와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려는 마음뿐입니다. 바울은 전도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린도전서 2장3절에 보면 당시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렇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이렇게 약해져서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약해지고 두려워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변의 정황이 그것을 말합니다.
먼저, 앞서서 아덴도시에서 바울의 전도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바울은 아덴도시에서 자신의 학문과 철학을 다 동원하여 열정적으로 전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유식한 말을 듣고 예수 믿게 된 사람은 몇몇 사람일 뿐입니다. 전도에 실패한 것입니다. 낙심이 컷을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도시에서 전도하기가 아덴에서보다 더 어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도시는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가 발달하고 상업도 발달했지만 죄악이 관영한 도시입니다. 국제적인 항구도시가 다 그러하듯이 온갖 비행, 타락이 만연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도시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은 고린도의 부패와 타락상을 보여주는 온상이 되었습니다. 신전에 천여 명의 여인들이 있어서 성적으로 극도로 문란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고린도 인처럼 산다.'는 말은 매우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도가 두려웠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바울의 형편이 너무 곤고했습니다. 본문 18장 1절 이하에 보면 초기 고린도도시 전도 상황을 엿보게 됩니다. 당시 바울과 함께 동행 했던 디모데는 베뢰아 도시에 남아 있어서 바울 혼자입니다. 믿음의 동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진 돈도 떨어졌습니다. 바울은 몹시 약해져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과 여건이 아덴도시에서의 형편 보다 더 열악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도시 전도에 도전합니다. 그 때 교회사에 유명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납니다. 함께 장사하여 선교기금을 만듭니다. 얼마 후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가 돌아와 전도에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전도를 훼방하는 유대인 그룹으로 말미암아 큰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작정합니다.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이제부터 유대인 전도는 절대로 안하리라 이것이 바울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전도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인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이 예수를 영접하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전도에 자신감이 사라집니다. 지난 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한 밤중에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본문 9절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지원약속입니다. 고린도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은 고린도도시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일 년 육 개월을 더 머물러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세워집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복음전파의 전진기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지방, 우리들에게 택한 백성, 즉 반드시 예수 믿을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 다닐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요,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교회 다닐 사람이 우리 동네, 우리지방에 많으므로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됩니다.
예수님 역시 지상에 계셨을 때 직접 하신 말씀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마9:32)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다 익은 곡식이 많다는 말이요, 낫을 기다리는 곡식이 많다는 말입니다. 즉, 지금 예수 믿을 자, 전도하기만 하면 교회에 나올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꾼이 적다는 말은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건지려는 뜨거운 열정이 있는 교회와 교인이 적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추수할 일군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건지려는 열정이 있는 교회는 전도가 잘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있습니다.
지금 믿을 자, 전도를 기다리는 자들이 많지만 누구에게나 만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가진 교회와 교인에게 만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도를 하다보면 기다리는 영혼, 준비된 영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전도가 잘 되지요?"하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는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졌기에 성령님께서 추수할 영혼, 전도를 기다리는 영혼을 만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전도축복의 간증입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ess)라는 분이 있습니다.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모두가 유명한 책이요 한국에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객원 연구원입니다. 탁월한 분입니다. 그는 <내가 왜 목사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9개월 동안 교회에 가서 자원봉사자로 일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으로 정신없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동차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막간을 이용하여 그 주유소 직원과 재미있고 유익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도를 하였습니다. 주유를 끝내고 가려고 시동을 거는 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내가 지난 한 주간 살면서 불신자를 만난 것은 주유소 직원 한 명뿐이구나> 교회 봉사자로 일하다가 보니 불신자를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이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만일 목사가 된다면 불신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 그러면 전도의 기회도 없다. 세상일을 하자. 불신자를 만나자. 그리고 전도하자> 그래서 목사가 되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세상일을 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오직 전도뿐입니다. 전도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한 말입니다.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작은 일에 신실한 것은 큰일이다.> 전도는 작은 일 같지만 정성을 드리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가장 큰 일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큰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한다.> 작은 일도 큰 사랑을 가지고 하면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가 세계적으로 추앙 받는 성자가 된 것입니다.
전도자는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전도하면 예수님이 나타나 주십니다. 전도의 자신감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전도하도록 이끄십니다. 전도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전도하면 믿음이 자랄 수 있습니다. 체험이 없는 사람은 전도하면 체험이 생기게 됩니다.
금세기에 가장 영혼을 많이 구원한 이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966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하버드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전에 내가 전도를 할 때는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하고자 노력했는데, 그 후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힘을 완전히 빼버리고 전도에 임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나는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일은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하시도록 나는 내 힘을 완전히 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 좋게 전도합니다. 그 다음 문제는 성령님에게 맡기고 나는 전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할 대 성령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놀라운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유대인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대표자인 회당장이 회개합니다.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18개월을 더 머무르면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놀라운 전도의 성과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사람을 살리는 종교라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도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절망의 삶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또한 죽은 자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영혼구원은 일차적입니다. 세일즈맨들이 물건을 팔러 다닙니다. 그런데 통계가 있습니다. 판매원의 48%가 한 번 전화하고 포기합니다. 25%는 두 번 전화해 보고 포기합니다.
15%는 세 번 전화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합하면 88%의 세일즈맨이 한 통 내지 세 통의 전화를 해 보고 판매를 포기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12%의 사람은 끈질기게 전화를 해서 결국 판매를 하게 되는데 그 12%가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은 끝까지 도전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디안들이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비가 내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죽는 날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일행은 고린도에서 대적을 당하고 포기하는 결과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독일의 선교학자 칼 하르첸쉬타인(Karl Hartenstei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의무이며 유일한 존재 이유입니다. 교회는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이유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땅 위에 있는 목적은 한 생명 한 생명 전도해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2월은 전도목적의 달입니다. 전도가 우리를 이끌어 가야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인생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더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고 연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나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본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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