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한자가 되리라(롬6:3-5)
목사 주태근(성찬식)
《지난해에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젊은 두 남녀가 김포공항 근처로 가는 전동차에서 갑자기 일어나 말했습니다. “저희는 고아로 자라 남들처럼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못돼 저희가 처음만난 이 5호선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승객들을 하객으로 삼아 주례도 없이 결혼식을 올리며 서로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옆에서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혼인서약을 하고는 감동적인 포옹을 신랑과 신부가 함께 나누었습니다. 감동의 순간입니다.
전동차에서 내리려던 한 아주머니는 이들의 등을 두드려주며 “잘 살라”고 격려했고 승객들은 이들에게 계속 박수를 치며 앞날을 축복했습니다. 이 동영상이 퍼지면서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하철 결혼식은 진짜 결혼예식이 아닌 바로 연극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대학 ‘연극 동아리’가 2개월간의 연습 끝에 지하철을 무대로 정해 1분짜리 ‘게릴라 연극’을 벌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결말이 사람들을 또 아쉽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왜 사람들이 그 동영상에 감동하고 아쉬워하고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테마가 결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들 결혼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결혼은 그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연극의 대사였을지라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고 한 그 말이 참 중요합니다. 결혼의 본질은 둘이 합친 후에 살아갈 새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새 삶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을 말하는 용어를 발견합니다. 사도 바울이 ‘결혼’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는 않더라도 ‘그리스도와 합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즉 결혼의 본질을 기초로 삼아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연합에 있습니다. 연합이란 기독교인의 출발이며 진행이며 결과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주님 앞에 가는 날 까지 거쳐야 할 의식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가 세례요, 둘째가 성찬이요, 셋째가 부활입니다. 세례는 시작이며 성찬은 진행이고 부활은 완성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나도 죽었고 죽은 목숨이 살아난 후에는 오로지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였던 자가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기 싫어하는 이유를 대개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교회에 대하여 구속을 받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축복이 아닌 구속과 속박으로 생각하여 세례 받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집안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맞추어 주느라고 세례를 받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오해요, 자신들에게는 큰 손해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훈하신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는 나무와 가지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와 예수님과 관계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깊은 영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 받은 우리는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와 한시도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연합은 모르는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것같이 하나 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하기 전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예식을 하면서 신랑, 신부가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연합입니다.
또한 연합이 된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교제를 나누어야합니다. 그 교제가 바로 성찬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예식은 세례를 받은 자들만이 참예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믿고 고백하는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성찬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주의 성찬은 곧 성례이니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즙을 주며 받는 것으로 그 죽으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와 정욕으로 참예함이 아니요 믿음으로써 그 몸과 피에 참예하여 자기의 신령하게 받는 양육과 은혜 중에서 장성함으로 그의 모든 효험을 받음이다.'
예수님의 은총의 효험이 성찬을 통하여 신자에게 공급되는 은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어 연합함으로 영적은혜를 계속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이요 성찬을 통한 영적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받은 자로서 이 성찬 상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독일에 곱사등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가 한 처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싸늘하게 대할 뿐입니다. 몇 번이나 퇴짜를 맞은 곱사등이는 어느 날 여자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당신은 결혼이 하늘에서 맺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여자는 믿는다고 답하였습니다. 곱사등이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나에게도 미래의 신부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아내는 곱사등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차라리 나를 곱사등이를 만드시고 나의 신부는 그 고통에서 제하여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내가 이렇게 곱사등이가 된 것입니다."
이 말에 여자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결국 곱사등이를 남편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제스 멘델스존과 그의 헌신적인 아내인 프롬체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이란 헌신과 사랑 그 자체임을 말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찬식은 바로 결혼한 부부생활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고 죄인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수치를 당하셨고, 우리의 저주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오늘 이 성찬상은 우리 위해 피 흘리시고, 몸 버리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고 사랑을 드리며 헌신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신랑 신부의 서로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과 영원토록 살기를 다짐하면서 영적교제를 매일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님을 마음의 주로 고백하시고, 믿고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모시는 일은 우리 일생의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 일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과 결혼하고 그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날마다 교통합니다.
《두 개의 어린 나무가 서로 나란히 자랐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두 나무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이렇게 된 가운데 점차적으로 두 나무의 껍질은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수액이 섞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나무는 결국 하나로 연합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점점 진척이 되면서 이윽고 두 나무는 아주 튼튼히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더 강한 나무가 약한 나무의 생명을 흡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다 더 강한 나무는 점점 더 크게 자라나는데 비하여 다른 한 나무는 점점 더 작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른 한 나무는 시들고 쇠퇴하기 시작하여 결국은 흔적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밑의 줄기는 둘인데 위로 올라가면 한 나무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서로 만나 영적으로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 말씀합니다. (롬 6: 3, 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가이드 포스트지에는 실린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재 터키에 이스탄불이라고 하는 수도가 있고, 그 수도는 본래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입니다. 이 콘스탄티노플 그 옛 도성 안에 성 소피아 사원이라고 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1700년 된 엄청난 성전입니다. 그런데 세 차례나 지진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서 있어서 기독교문화의 그 화려했던 옛날을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소장되어 있는 비밀한, 아주 소중한 보고서가 있어서 가이드 포스트에서 소개하였습니다.
그 제목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라고 하는 문건입니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빌라도 총독의 보고서로서 대단히 중요한 증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 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각하께 소상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라고 시작이 되고 그 다음 내용은 대체로 성경에 있는 기록과 비슷하게 그 내용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무서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 부활했다고 전파하게 됩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하나님에 아들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 본디오 빌라도"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부활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후 3일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찾은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오백여명이 넘는 군중들에게 40일 동안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 놀랍고 엄청난 하나님의 사건은 목격자들에 의해 온 세계로 전해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해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부활하셨다” 이것이 부활의 목격자들의 증언이요. 복음의 내용 입니다.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자랑이요. 능력이요.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로움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수양, 금욕, 고행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악과 불의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에서 해방되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온 인류가 죄인이 되고, 한 사람 아담으로 사망이 왕 노릇했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의인이 되고,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죽음의 저주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증명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분, 모든 이들에게 죽음에서 건져내 영생을 얻게 하실 이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주님과 더불어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연합한 자들로서 영적생활을 성찬으로 교통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에로 온전히 구원되는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완성은 부활에의 참여입니다. 세례, 성찬 그리고 부활에의 참여 이것이 기독교의 정체성입니다.
《이슬람교를 믿던 터키 사람이 성경과 예수교 서적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사들에게 들켜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문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내게 질문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질문인데?"
"일전에 내가 어디를 가다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두 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길을 물어 본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봐야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 줄 알면서 왜 당신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라고 하십니까?"
"아니 이 사람, 누가 죽은 사람보고 길을 물으라고 했나?" "당신들이 믿으라고 하는 무함마드는 죽은 사람이요,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예수는 산 사람입니다. 어찌 죽은 무함마드를 의지하겠습니까? 길 되신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 뻔한 노릇인데 인도자를 찾아가는 나를 왜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교사는 아무 대답도 못하다가 한참 후에 "네 마음대로 하라."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심을 믿습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부활은 신앙의 완성입니다. 세례로 주님과 연합한 자, 성찬으로 주님과 교통하는 자, 반드시 주님의 부활과 연합한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부활절에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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