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선교가이드(13) : 중동지역 초기 기독교교회(글-주태근)
(2)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그리스도교의 3대 주요 교파 가운데 하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 베드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대교회에서 유래하며, 2~3세기에 걸쳐 유대교회와 다른 교의와 전승을 구축했다. 312년 로마 제국에 의해 공인된 후 중세를 거치면서 전 유럽에 걸쳐 영향력을 갖는 강력한 교파로 발전했다. 이후 14~16세기 교회의 분열과 종교 개혁을 통한 프로테스탄트의 출현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국에 있는 교황청이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며, 교황이 가톨릭교회를 대표한다. 1054년 교회 대분열 이후 동방 교회는 스스로 ‘정교회’(Orthodox)라고 부르지만, 교황과 친교를 이룬 서방 교회는 ‘가톨릭교회’(Catholic)라고 자처하였다. 그리고 16세기 서방교회 내부의 문제에 대한 종교개혁 시기 서방교회의 개혁 찬성파는 문제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교황과 대립하였고, 교황청은 개혁 찬성파를 파문하여 관계는 단절되었고, 개혁 찬성파는 현재의 개신교회가 되었다. 서방교회의 개혁 반대파는 교황청과 관계를 유지하여 현재의 로마 가톨릭교회에 이른다.
단순히 가톨릭이라고 할 때에는 동방정교회(그리스 정교회)까지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최고의 직위가 로마 교황인 정통 가톨릭교회를 이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로마가톨릭이라고 한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2세기 무렵부터 교회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또 4세기에 이르러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의 두 공의회가 그 신앙선언 속에서 '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그 이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은 특정한 개인·인종·시대를 초월한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므로 이 명칭은 그 교회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약 13억 명의 신자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기독교 교파이다.
① 정통가톨릭교회(Latin Church)
서방교회는 11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중심의 5개 대교구(콘스탄티노폴리스, 로마, 안디오키아,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로 이뤄진 보편교회에서 분리된 로마교회 교구 지역을 의미하며, 교회 대분열 시기인 11세기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11세기 로마교구가 보편교회에서 이탈 이후 형성된 서방교회는 12세기 정비되어 교황제 중심의 국가형태의 교회로 약 400년간 지속되었다. 서방교회의 적폐가 늘어나며 16세기에 이르러 개혁 요구가 시작되었고, 서방교회의 개혁을 위한 종교개혁 시기를 맞이하였다. 서방교회 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로 종교개혁 시기 이후에 서방교회는 '개혁 찬성파'와 '개혁 반대파'로 16세기에 분열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란 이태리 로마에 있는 바티칸 교황청의 지휘를 받는 교회로서 서방교회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가톨릭교회라고도 불리는데 같은 말이다. 서방교회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교회들이 주로 서유럽의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의 교리도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므로 서방교회는 언어 자체가 동방교회와 다르다. 단순히 가톨릭이라고 할 때에는 동방정교회(그리스 정교회)까지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최고의 직위가 로마 교황인 정통 가톨릭교회를 이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로마가톨릭이라고 한다. 중동지역에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 지역에 약간의 정통가톨릭(라틴교도)들이 분포되어 있다.
② 마론 교회(Maronite Church)
마론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최대의 동방전례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오늘날 레바논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비가톨릭 교회나 비정교회에서는 맞수가 없는 유일한 동방전례 교회이다. 그 기원은 성 마론 또는 마로(아랍어로는 Mrn)라고 하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에 살았던 시리아 은수자와 685~707년에 안디옥 총대주교였던 성 요한 마론 또는 성 요한네스 마로(아랍어로는 Yanna Mrn)에서 비롯된다. 684년에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끌고 온 비잔틴 침략군을 마론 총대주교의 지도에 따라 격퇴함으로써 마론 교회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마론 교회는 전통적으로 로마 교황청과 늘 연결되어 있는 정통 그리스도 교회로 강조되어왔지만 수세기 동안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세르기우스의 이단 교리를 따르는 단성론자(Monothelite)들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세르기우스는 예수 안에 인간의 의지는 없으며 신적 의지만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세 때 티레(두로)의 주교 윌리엄에 따르면 마론 교회의 총대주교는 1182년 라틴계 교구인 안디옥 총대주교구와 연합하려 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결정적인 연합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예수회 소속 요한 엘리아노의 노력 덕분이었다.
1584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로마에 마론대학을 세웠는데 이 학교는 20세기까지 예수회의 행정 아래 학자와 지도자 훈련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씩씩하고 용감한 산악인인 마론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자유와 민속을 용감하게 지켜나갔다. 이슬람교의 칼리프조(632~1258)도 마론교회 성도들을 흡수할 수는 없었으며,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두 칼리프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아래에서는 프랑스의 보호로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지킬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주로 지역적인 고립 때문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오스만 정부가 레바논의 인근 산악인 드루즈파 교도들을 불러 1860년 마론인 대학살을 감행하는 정책을 폈다. 이 사건으로 마론인은 오스만 제국 안에서 외래인 그리스도교 지도자 아래 공식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소멸로 레바논의 마론인은 프랑스의 보호 아래 자치권을 획득했다. 1943년 레바논이 완전한 독립국이 되자 그들은 두 중요 종교집단을 하나로 구성했다. 정부는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도, 드루제 정당의 연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대통령은 언제나 마론 교회인이다.
1911년에 그들이 주장하던 이단설을 버리고 로마의 가톨릭교회와 통합한 것은 1182년이다. 마론교회는 시리아에서 기원한 교회로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들의 본향인 레바논지역에 살고 있다. 특별히 예전에는 시리아 아람어로 된 안디옥식의 의식을 담은 예전을 갖고 있어 시리아의 기도서를 사용한다. 레바논 지역에서의 가장 큰 크리스천 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약 6,000여명의 교세를 갖고 있다. 거의 대부분은 갈릴리 지역에 산다. 마론 교회가 예루살렘에 파크리아크 위상의 교구장을 둔 것은 1895년이다. 사이프러스에도 교인들이 있다. 전체 신도는 300만이 조금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③ 동방가톨릭교회(歸一敎會: Uniate churches)
1596년 브레스트 회의(1596년 폴란드가 지배하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정교회와 가톨릭교회가 일치를 선언한 회의)에서 공식 출범했다.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그리고 아시리아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 등과 유사한 전례와 교회법, 전통을 가진 동방 기독교의 범주에 속하지만, 교리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방교회와 차이가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교회·동방전례(典禮) 가톨릭교회, 동방귀일교회(東方歸一敎會)라고도 부른다. 16세기 초부터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던 종교개혁,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운동이 또한 루시인들의 정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1589년에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설립되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소속된 키예프 자치관구의 주교들에게 결정적으로 교회연합을 결행하게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예수회의 활동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측에서 볼 때 교회연합, 그리고 우니아트 교회야말로 정교회의 전통에 완전히 일탈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모스크바의 국내적 상황으로 인해 우니아트 교회가 성립되고 진전되는 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었다. 우니아트 교회의 가톨릭과의 교회일치 결과 오늘날 서부 우크라이나와 동부 우크라이나의 종교문화적 정체성의 차이가 야기되었고, 역사 전반적으로 볼 때 우니아트 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대립적 반목관계 나아가 적대적 갈등관계의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인정하면서도 동방교회의 독자적인 전례·관습·교회법·언어 등을 지키고 있다. 합동의 동기는 종교와는 관계가 없는 정치적인 이유가 많다. 이에 속하는 교회에는 레바논의 마론파(派)교회(1182년 합동), 아르메니아교회(1198~1291년 및 1741년 합동) 폴란드의 루테니아교회와 칼데아교회(1595년 합동), 안디옥 총주교 관할 하에 있는 시리아교회(1663년 합동), 멜키트파교회(1741년 합동), 아프리카의 콥트교회(1724년 합동)와 에티오피아교회(1839년 합동), 인도의 말라바르교회(1930년 합동), 말란카르 전례교회(1930년 합동) 등을 들 수가 있다. 그 밖에 헝가리·유고·루마니아 등에도 몇몇 교파가 있다. 가장 신도 수가 많은 것은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그곳의 귀일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정교회에 편입되었다. 전례·관습상 로마 가톨릭과 다른 주요한 점은 성직자가 대처(帶妻)할 수 있다는 점과 빵과 포도주로 성체배령(聖體拜領)을 하는 점, 세례(洗禮)를 침수례(浸水禮)로 한다는 점 등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최고목자인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반면,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상징적인 최고목자로 하되 각 지역별로 총대주교 제도가 있어 교회의 최고 의결권을 지닌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 분열 후에 로마가톨릭교회와 화해하고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일치를 이룬 동방교회도 있다. 이런 교회를 "동방귀일교회"(東方歸一敎會)라 칭한다. 동방귀일교회인 "동방가톨릭교회"는 로마(라틴)전례를 행하는 교회도 있지만 비잔틴(희랍)전례 및 각 지역의 고유한 전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본래 동방정통교회이었던 것이 그 조직에서 벗어나 로마가톨릭교회에 합친 교회이다. 동방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분리되어 있다. 네스토리우스 교회에서 분리하여 나온 칼데아교회, 희랍정통교회에서 나온 희랍가톨릭교회, 콥트교회에서 나온 콥트가톨릭교회, 시리아 정통교회에서 나온 시리아가톨릭교회, 아르메니아 정통교회에서 나온 아르메니아가톨릭교회 등이다.
각주:
1)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1173b
2) 로마 가톨릭교회, https://ko.wikipedia.org/wiki/
3) 두산 세계 대백과사전
4) “Vatican statistics report church growth remains steady worldwide”.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4년 5월 2일. 2014년 5월 30일에 확인함.
5) 주태근, 『아랍을 살리는 중동선교』, op. cit., p. 212.
6) 위키백과, 인터넷사전, https://ko.wikipedia.org
7) 로버트 홀 글러버 원저, 『세계선교의 발달』, p. 292.
8) 주태근, op. cit., pp. 213-214.
9)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4
10) 마론주태근, op. cit., pp. 214-215.파,
https://namu.wiki/w/%EB%A7%88%EB%A1%A0%ED%8C%8C
11) 주태근, op. cit., pp. 214-215.
12) 홍석우 “우크라이나의 종교와 민족주의”, 『소련과 동유럽의 종교와 민족주의』(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96), 참조.
13) 동방 가톨릭교회, https://ko.wikipedia.org/wiki/
14) 황영삼 “우니아트 교회 성립의 역사적 의미”,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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