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선교강의록

아랍선교 강의록(14) : 중동지역 동방기독교(景敎) -글 주태근

주 바나바 2024. 1. 28. 15:24

아랍선교 강의록(18) : 중동지역 동방기독교(景敎) -글 주태근

 

 

3 부 중동지역 동방기독교(景敎)

 

이스라엘 성막

 

A.D.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가 망함으로,"2의 디아스포라"라고 불리는 피난민들의 도주는 시작되었다. 이 때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국경을 넘어 페르시아와 남부 아라비아로 도망하였고, 일부는 인도까지 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동방 기독교의 출발이 되었을 것이다. 아시아는 인문학과 문화의 요람이었듯이 기독교에도 요람이었다. 안디옥이 서방 선교의 전초기지였듯이, 에뎃사는 동방 선교의 근거지였다.

 

190년경에 안디옥교회는 에뎃사 지역을 희망적인 선교지로 꼽으면서 관심을 보였다. 201년에 있었던 홍수로 에뎃사의 교회가 파괴되었다는 기록은 이미 잘 조직된 교회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이다. 2세기의 기독교는 메소포타미아의 에뎃사를 뚫고 들어갔고, 좀 더 멀게는 페르시아, 메디아, 박트리아, 파르티아로 들어갔으며, 3세기에는 아르메니아와 아라비아로 들어갔다.

 

네스토리우스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자 그를 쫓는 자들이 모두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시리아 영토로 와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일찍이 421년에 서방 로마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시리아 동방교회와 합류하여 이들이 시리아 교회의 교권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양교회의 아시아 선교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 주의자들이 사산왕국의 영토로 넘어 온 것은 450년경이었다. 이때에는 벌써 로마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은 유티케스파인 단성론자들도 그곳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파는 동쪽 에뎃사를 중심으로 그리고 단성론자들은 서쪽에 안디옥과 북쪽에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489년 동로마의 제노황제가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해서 박해를 가하며 에뎃사에 있던 신학교와 수도원과 병원 등을 파괴하고 폐쇄하자 그들은 다시 로마영토를 떠나 페르시아 땅인 니시비스와 셀류키아로 이동했다. 이렇게 페르시아지역으로 이주한 네스토리우스파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과 안디옥 및 알렉산드리아 교회들과 모든 관계를 끊었다.

 

당시 사산왕국의 당국으로부터 로마제국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풀게 해주었다. 그리고 496년 네스토리우스파 총회에서는 서방교회로부터 독립을 결의하고 498년에는 명실 공히 동양교회를(The Church of East) 설립했다.

 

이렇게 하여 에뎃사를 떠나 니시비스에서 자리를 잡은 네스토리우스파의 동양교회는 서남쪽 셀류키아와 크테시폰 도시(수도)에서 더 왕성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래서 거기서 특수종교공동체인 멜레트(Melet)로 인정받아 일정한 사회적·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5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 네스토리우스교회가 점령한 선교영토는 유프라테스 강의 동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이집트, 시리아, 아라비아, 소코트라, 메소포타미아, 갈라디아, 페르시아, 메디아, 박트리아, 힐카니아 및 인도까지 포함되었다. 635년 당조 초기에 중국으로 전래된 경교(景敎)도 바로 이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였다.

 

각주 ;

 

1) 흔히들 경교(景敎)”네스토리우스파 교회"(the Nestorian Church)라고 부르는 데, 여기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제국교회에서 독립한 시리아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교회를 네스토리우파 교회라는 부르는 것은 이 교회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교회에서 독립하여 나간 시리아 교회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군다나 실제적으로 로마에서 갈라져 나간 시리아 교회는 네스토리우스 대신에 안디옥 학파의 수장인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Theodore of Mopsuestia, 350-428)의 신학을 그들의 기초로 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시리아 학계에서는 로마제국교회에서 독립한 교회를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라는 용어 대신에 동부 시리아 교회”(The East Syriac Church), “앗시리아 교회"(The Assyrian Church) 등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를 결의하였다. Sebastine Brock, An introduction to Syriac Studies (Piscataway, NJ: Gorgias Press, 2004), 74; 서원모, “기독교와 동아시아 문화”, pp. 11-14. Eastern Church는 보통 동방 정교회로 번역되지만, ‘Oriental Church’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

   영어에서는 Oriental ChurchesEastern Churches를 구분한다. 전자는 비() 칼케돈 교회를, 즉 칼케돈 공의회를 따르지 않는 교회(아르메니안 정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후자는 칼케돈 교회(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 및 그 파생 교회)를 가리킨다. 아랍어로는 -칼끼두니칼끼두니로 구분한다. 앗시리아 교회는 비()칼케돈 교회에 해당하지만 정교회는 아니다.

 

2) Samuel Hugh Moffet,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Vol. 1:Beginning to 1500,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4), p.45-46.

 

3) 김영재, 기독교 교회사(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0), p. 55.

 

4) Ibid., p. 66.

 

5)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2, 이길상 역,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 교회사 전집 2(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4), p. 40.

 

6) Georga A. Bevan. "The Case of Nestorius: Ecclesiastical Politics in the East, 428-451 CE." Unpublished Ph. D. Dissertation. University of Toronto, 2005. p. 312.

 

7) Mar Aprem, Nestorian Mission (New York: Orbis Books, 1980), p. 119.

 

8) 노성기, “페르시아에 정착한 시리아-동방교회의 역사(485-651)”, (가톨릭) 신학과 사상. 61(2008), p. 167.

 

9) 김광수, 동방기독교사(서울: 기독교문사, 1971), pp. 67-69.

 

10) 노성기, op. cit., p. 175.

 

11) 김성준, 한국기독교사(서울: 한국교회교육연구원, 1980), p.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