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강의록(4) : 교수 주태근
4. 이레네우스/터툴리안/클레멘트/오리겐/키프리안의 교회론
1) 이레네우스(Irenaeus) 교회론
이레네우스는 주후 130년 소아시아에서 출생했고, 서머나에서 자랐으며, 177년 가울(Gaul)에 있는 리용(Lyons)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포티우스(Pothius)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이레네우스의 주저는 「이단 지식을 논박함」(the Refutation of false Knowledge)로서 이는 당시 이원론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영육을 양분화하면서 육으로부터의 해방을 구원으로서 설파한 영지주의(Gnosticism)을 반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 반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그의 교회론의 윤곽지었다. ‘새 이스라엘’, ‘그리스도의 영광된 몸’, ‘신비적 은총과 힘’으로서 이해된 교회는 사도들의 전통과 성서를 수호하는 감독들의 계승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보았다. 교회는 진리의 수호자이며 사도들의 전통, 즉 신약성서와 신앙규범을 그 생명으로 삼는다고 해석한다.
사도적 전통이란 베드로와 바울에 의하여 시작된 로마 교회의 전승을 의미했고, 또 그것은 감독의 계승에 의하여 확증되는 역사적 연계를 의미하였다. 이레네우스에게서 교회는 동시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의하여 비로소 교회가 되고 있음이 강조되었다. 감독의 계승은 진리 수호의 직무로서의 계승이다. 여기서 진리란 성서말씀과 ‘사도들, 예언자들, 교사들, 감독과 장로와 집사들, 그리고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교제’로서의 처음교회를 의미한다.
2) 터툴리안(Tertullian) 교회론
라틴어로 저술 활동을 한 최초의 신학자로서의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은 법률가로서 193년에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213년 몬타누스주의자(Montanism)들과 연합했다. 그의 후기의 교회론은 몬타누스주의자가 되기 이전의 교회론과 비교할 때, 여러 측변에서 강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터툴리안의 주저인 「변증」(Apologeticus)에서 그는 몸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교회의 유기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상징을 통하여 교회를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그 존재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터툴리안은 교회의 영적 차원과 사도적 전통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강조한 교부 신학자였다. 그의 교회론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이 창조한 영적 사회로서의 이해하며 또한 영지주의와 마르시온주의(Marcionism)를 경고하고 또 시정하는 신앙적 규범을 따른 이레네우스의 사상을 따른 사도적 전통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3) 클레멘트(Clement) 교회론
터툴리안과 동시대 신학자이자 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독교와 접목시킨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였다. 클레멘트의 중심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로고스에 있었는데, 이 로고스는 고대 이스라엘 속에 빛을 비추었고 아울러 헬라 철학가들 속에도 빛을 비추었으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식으로서 새롭게 다가왔다고 해석되었다. 여기서 이미 일반계시와 특수계시에 관한 신학적 논지가 클레멘트에게서 암시한다. 클레멘트는 교회를 '지상의 교회' 와 '천상의 교회'로 구분했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와 형상(form)개념에서 온 것이었으며, 지상의 것은 영원 안에 그 완전한 실재와 틀을 가진다는 해석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지상의 교회는 천상의 교회, 참 교회의 영상(image)이었다. 그리고 클레멘트는 교회를 순수한 동정녀와 사랑스런 어머니로 비유하면서, 이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우유’로 그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몸과 피를 자녀들을 위해 주었으며, 그는 다시 은유로 몸은 영으로서 피는 말씀으로서 해석하였다.
4) 오리겐(Origen) 교회론
교부 오리겐(185-255)은 클레멘트의 후계자였으며 데시우스황제(Decius, 249-251년)의 박해로 인해 투옥과 고난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당했다. 오리겐은 교회를 ‘참교회’와 ‘역사적 교회’로 구분하였다. ‘온회중’과 ‘온교회’ 그리고 모든 세례 받은 신자들은 제사장직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오리겐은 강조하였다.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찬양, 기도 순결의 희생제물을 바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비록 역사적 교회가 알곡과 쭉정이가 공존하는 미완성의 공동체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인의 회중으로서의 믿는 이들의 모임이며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그리고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방'으로서 이해되고 있기에, 역사적 교회는 참 교회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참교회의 유기적 공동체로서 이해되었다.
5) 키프리안(cyprian) 교회론
주후 3세기, 로마의 박해가 극도에 이르렀던 시기에 카르타고의 키프리안이 등장했다. 키프리안은 터툴리안을 스승으로 수용하면서 로마의 법학도가 되었는데, 그의 교회론은 실천적이고 율법적이며, 논리적이고도 윤리적이었다. 키프리안은 투툴리안을 스승으로 수용하면서 로마의 법학도가 되었는데, 그의 교회론은 실천적이고, 율법적이고도 윤리적이다. 키프리안의 교회론은 코넬리우스(Cornelius) 계통의 감독직의 정통성을 근거로 이루어졌다. 키프리안이 내세운 감독의 정통성은 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에 의하여 강하게 주장된 사도적 전승과 신앙규칙(regula fidei)의 연속성과 보편성을 넘어서 현직 감독의 정통성을 의미했다. 반드시 현직에 있는 감독의 계승이어야 한다는 것이 키프리안의 교회론 이해이다. 키프리안의 교회론은 결국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신학적 선언으로 이어 졌다. 교권 주의적 성직 중심의 교회론은 그 후 몇 세기에 걸쳐 진행된 서구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론 사상을 지배하는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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