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다시 태어난 사람(요3:1-7)-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9. 11:05

다시 태어난 사람(3:1-7)

 

 

목사 주태근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자끄 루소는 [에밀]이라고 하는 그의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생존을 위하여 어머니 배속으로부터 태어나고, 또 한번은 생활하기 위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다."

 

사람이 성장해 가면서 질문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요, 또 하나는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에 대해서 탐구하고 답을 구하며 확인하고 인격을 세워 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2의 탄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써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다시 태어남이란 생각이나 의식이 바뀐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전환되고 가치관이 변화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다시 태어남이란 태도나 행동이 바뀐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남이란 제도 개혁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을 다시 태어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다시 태어남의 외형적인 일부분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사람은 전과는 생각과 의식이 달라집니다. 태도와 행동도 달라집니다. 몸을 담고 있는 곳의 제도나 관행이 새롭게 바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다시 태어남의 본질이 아닙니다. 다만 결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성경은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두 번째 태어남 즉 중생입니다. 인간은 모태를 통하여 첫 번째 출생하고, 두 번째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일컬어 영적인 출생이라 말합니다. 바로 본질의 변화입니다.

 

어떤 귀족 부부가 아이를 데려다 길러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고아원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를 키우려 합니다."라고 말했더니, 고아원 원장이 나와서 하는 말이 "어떤 아이를 입양하기 원하십니까?"

 

이 부부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를 데려다 키우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손버릇이 나쁜 남자아이 하나를 데려왔습니다. 이 아이가 새로운 부모를 보고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양부모는 아이를 이제 데리고 나와서 바로 호적에 올립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먹이면서 이 아이를 보고 말을 합니다. "얘야, 너는 이 집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아들다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공부도 시작해야 하고 이 가문에 맞는 예절을 배워야 한다. 알겠지?"

 

그런데 그 다음날 하인이 그 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보니 어제 저녁 먹을 때 식탁에 나왔던 과자와 사탕이 침대 밑에 잔뜩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서 부모가 근심하면서 아이를 불러서 말합니다.

 

"얘야, 이 집의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네가 먹고 싶으면 가져오라고 하면 된다. 그러니 고아원에서 하던 버릇 그만 하고 이 집의 아들이 되어 다오." 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신분이 변하고 그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가 아닌 본질의 변화입니다. 본질이 변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이 180도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개입이 있어야합니다. 옛사람의 기질이 새사람의 기질을 갖기 위해서는 새사람으로 지음 받아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을 통한 중생의 체험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어린시절에 다른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다 부러워하는 공의회 회원 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니고데모의 가문은 매우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율법에 충실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린시절부터 그 누구보다 자기를 실현해 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충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언제나 무엇인가 모르게 늘 채워지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무엇으로도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열린 희망의 미래를 가져보려고 해도 닫힌 미래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공회원, 존경받는 유대교인 다른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자였지만 거기에 부합되지 않는 어두운 내면에 늘 시달렸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답지 않은 탐욕, 이기심이 있었고, 사회 공인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욕심,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좁은 마음, 독선, 부자답지 않은 인색함, 재물에 대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당시 유대종교에 대해 깊이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신봉하는 유대 종교는 그에게 생의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더 이상 도움이 되지못하였습니다. 외적으로 그의 행동을 규제하고 억제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니고데모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니고데모의 사회적 지위로 보아서 예수를 찾아 가는 일은 너무나 부적합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 마음에 언제나 중심인물로 떠오르는 사람은 예수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운명과 예수라는 사람과는 무엇인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와 그가 행하는 일을 전해들을 때마다, 반드시 그의 생애에서 그와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과제로 여겨졌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느 날 밤 비밀리에 용기를 내어 예수를 방문하였습니다. 예수는 밤에 자기를 찾아온 의외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오랜 공인생활한 사람답게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솔직히 쏟아놓지 않으면서, 품위 있게 먼저 예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은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런 질문을 받은 예수는 니고데모가 말로 표현하지 않고 있는 이면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중심을 아셨기에 그의 고민에 적합한 답으로 말씀하심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의 의외의 대답에 놀랐습니다. 그때 니고데모가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인간이 새 삶으로 살려면 반드시 설령으로 다시 나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삶을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함을 알고 지금까지 노력하며 살았으나 그것이 바로 헛된 노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겁나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인간에게 개입함으로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형 집행 장에서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 책을 보면, 유두영이란 사람은 아주 잔인한 살인범인데 새까만 눈썹이 맞닿은 듯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것이 마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게 하는 사형수입니다.

 

어느 날 그를 불러다가 상담을 하는데 살기가 등등해서 냉소적인 태도로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기도하자고 하니까 눈을 빤히 뜨고 째려봅니다. 그래도 얼음이 언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성령님의 역사로 유두영의 얼굴을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완악한 유두영도 그때서야 마음의 문을 열고 울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의 개입이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유두영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사형집행 날이 되면 사형수들 대부분이 난 안가, 죽기 싫어.” 한다던지 어머니, 엄마하며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바지에 대소변을 보며 벌벌 떨기도 하고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유두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다시 태어난 후부터는 만나는 죄수들마다 죽을 준비 돼 있어?” 하며 열심히 전도를 합니다. 그리고 사형집행 날이 되어 유두영이도 집행 장으로 끌려가는데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가 마침 박효진 장로님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두영아, 잘 가. 먼저 가.”하면서 더듬거렸더니 도리어 , 장로님 먼저 갑니다.” 하고 힘차게 말합니다.

 

사형장에 도착해서 소장님이 오늘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유두영 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집행 선고를 했더니 유두영은 아멘하며 응답합니다.

 

소장이 이름, 생년월일 등 인정 신문을 끝내고 끔찍한 죄상을 요약해 읽어 가는데 그때 유두영이 손을 쳐들더니 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소장님, 지금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제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기억도 아니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믿고 8년이란 긴 세월을 살다가 아버지 나라도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 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다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 받은 깨끗한 영과 몸 그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그 부끄러운 죄를 읽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그 말에 소장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임종 예배를 드리는데, 유두영이 요한복음 316절을 외우고 자기의 온몸을 장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 기증한다고 고백합니다.

 

유언을 남기겠느냐.”고 물으니까 잠시 있더니 소장님, 그리고 검사님,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밧줄 올가미를 목에 거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려오는데 누가 부르나 하고 살펴보니까 바로 유두영이 부르는 찬송소리입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찬송을 부른 뒤 덜커덩하고 지하실로 떨어집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장차 죽음과 심판의 과정을 거친 뒤에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생은 이미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믿음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죄 없는 순결하고 깨끗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다시 태어나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부흥성회가 열립니다. 다시 태어남의 경험을 제공하는 천국 잔치입니다. 이미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는 재 확신의 기회를 주는 성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63)”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