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디지털 시대의 리더(요10:1-10)

주 바나바 2022. 8. 23. 11:11

디지털 시대의 리더(10:1-10)

 

 

목사 주태근

 

중동지역, 시리아의 한 강변으로 한 목동이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목동은 그 많은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너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을 싫어하는 양들을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여행 중이던 아들이 이를 이상히 여겨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저 목동은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는 거지요?" "글쎄, 하지만 얘야, 저 목동의 얼굴은 아무 걱정 없이 평온하지 않니."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그리고는 목동에게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고 합니까?"

 

"하하하, 그야 간단하지요. 세상의 이치만 알면 말이에요." 아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강가에선 양떼들이 '매애 매애'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물을 본 새끼 양들 또한 놀란 눈으로 어미 양 옆에 바싹 붙어 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 있는 많은 양들 가운데서 귀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려고 저러지요?" "곧 알게 될 테니 두고 보자꾸나." 그제야 어머니는 목동이 양떼를 거느리고 강물을 건너는 방법을 알았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새끼 양을 둘러멘 목동은 성큼성큼 강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습니다. 순간 새끼를 빼앗긴 어미 양이 몇 번인가 '매애 매애' 하고 울더니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인도하는 방법에 익숙했던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길을 인도할 줄 압니다. 중동에 가면 지금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양치기로 생활하는 베두인 족이라는 유목민이 살고 있습니다. 한 번은 성경고고학자인 람제이 박사가 중동여행 중에 양떼를 몰고 가는 이 베두인 족 목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목동이 소리를 내며 앞서가면 그 많은 양들이 그 목동이 가는대로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람제이 박사는 하도 신기해 그 목동의 옷과 모자를 빌려 입고 목동의 소리를 흉내 내면서 양떼들 앞서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양떼들이 자기 뒤를 따라오나 돌아보았더니 양들이 뿔뿔이 흩어져 다 달아나 버리더랍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교훈하신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참된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양들은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에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주인이 아니면 도리어 도망을 칩니다. 선한 목자와 양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필립 켈러라는 사람은 팔년 동안 목장주인으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양의 특성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양은 뿔도 없고 물어 찢을 수 있는 이빨도 없고 뱀 같은 독도 없고 발톱도 없습니다. 빨리 도망칠 수 있는 다리도 없고 모든 짐승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양은 없습니다.

 

자기를 숨기는 보호 색깔도 없고, 적과 대항할만한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또 양은 고집이 세고 보수적 습관이 강한 동물이어서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도랑이 생길 정도로 똑같은 길을 다닙니다. 산이나 언덕에서 풀을 뜯으면 계속 거기서만 풀을 뜯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그 산이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질고 더러운 곳에서 그대로 싸고 먹고 누워서 자기 때문에 기생충과 질병이 많아서 쉽게 죽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리석고 미련하고 나약하고 고집불통인 양의 속성을 다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선한 목자라고 그는 말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이 배고픈지도 알고 병에 걸렸는지도 알고 목마른지도 압니다.

 

양은 미련해서 자기가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어디에 맑은 물이 있고 어디가 푸른 초장이 있는지 찾지를 못합니다. 양은 근시안이어서 맹수가 쫓아오는 것도 모릅니다. 목자가 없이는 한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양의 생활입니다. 양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양은 우둔하고 멀리 볼 수도 없고, 약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와 같습니다. 영리하고 지혜로워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생명에 있어서는 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 가운데에는 인간의 목자가 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싫든 좋든 우리는 전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다 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도 역시 리더입니다. 세탁소에서 직원 몇 명을 데리고 운영해도 그 사람은 리더입니다. 그 안에서 리더십을 가집니다. 회사에서 조그만 팀을 이끄는 팀장도 역시 리더입니다.

 

교회에서 조그만 소그룹을 인도해도 그 사람은 리더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어디서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우리가 다가 서 있습니다. 새들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인간과 새들 뿐입니다

 

새들은 몸집이 작고 약할수록 고운 노래를 부릅니다독일 힐츠산맥은 카나리아의 천국입니다이곳에는 수십만 마리의 카나리아를 사육하는 조류공원이 있습니다카나리아의 합창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공원의 주인은 새를 팔 때 합창을 리드하는 솔리스트는 절대로 내놓지 않습니다

 

카나리아 합창단 속에는 노래를 주도하는 몇 마리의 솔리스트가 있습니다. 이 카나리아가 다른 새들을 자극해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는 것입니다새들에게는 `솔리스트 카나리아'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의미 없이 입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카나리아'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세계에는 항시 리더가 있기 마련입니다. 리더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지난 날 아날로그 시대에는 정보를 숫자와 문자만으로 교환하고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숫자와 문자는 물론, 영상과 소리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이용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의 의미입니다.

 

디지털 시대란 우리 주변의 모든 정보가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흘러 다니는 세상을 말합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신문에 인쇄된 활자나 전화로 나누는 대화, TV화면에 비치는 영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정보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고 전송됩니다.

 

빌 게이츠(Bill Gates)가 그의 책 빌 게이츠 @ 생각의 속도라는 저서에서 미래 사회의 경쟁은 빛의 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세계는 디지털 신경망에 의하여 하나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정보혁명의 시대입니다. 정보시대는 가속화 시대입니다.

 

정보시대는 인간의 위상이 변하는 시대입니다. 즉 인간이 모델이 되는 시대입니다. 인류의 1차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혁명 시대는 자연을 모델로 한 지식이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2차 혁명인 산업혁명 시대는 기계를 모델로 한 지식이 모든 것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3차 혁명인 정보혁명 시대는 사람을 모델로 한 지식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계가 고장이 나서 공장이 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고장이 나서, 노사분규 때문에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터득하고 교환하는 기술이 없으면 공장을 종업원을 소비자를 움직일 수 없는 시대입니다.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일어난 가장 커다란 의식의 변화는 지도자를 그들의 의식 속에서 추방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를 그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보고 있습니다.

 

신문이 나오고, TV가 나오고 이런 매스미디어가 발달되면서 사람들은 지도자들에 관한 모든 것을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지도자가 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 날 지도자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청중들이 지도자를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신비성이 있었고, 굉장히 뭐가 있는 것 같이 보였고, 그래서 지난 시대는 지도자가 쉽게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매스미디어의 발달, 민주주의 발달, 정보의 발달, 디지털 시대의 발달 등으로 모든 것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 정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재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간 뉴스에 보면 주미대사 홍석현 씨의 재산축적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730억에 해당되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위장 전입사례입니다. 숨겨진 일들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리더십이 요청됩니다. 삯군 리더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참된 리더, 즉 선한 목자는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은 선한 리더, 선한 목자가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궁중 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I’m something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말은 왕자의 권세를 지닌 자신을 꽤 가치 있고 대단한 인물로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겠다고 발버둥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아침에 궁중의 화려한 왕자의 신분에서 도망자의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광야의 도피 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I’m nothing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거칠고 험난한 광야 생활 중에 비로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을 비우는 신앙으로 무장된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라는대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그들과 함께 광야 생활 40년 동안 모세는 I’m everything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붙들어 사용하시는 사람을 성숙한 것입니다. 가장 귀한 리더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갈채 받고 환영받는 자리에 있던 모세를 끌어내려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자리까지 가게 하시고, 거기서 준비되고 훈련되어 출애굽의 지도자라는 위대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한 인간의 길고 긴 인생 여정을 통해 체험되고 닦여진 지도력은 훗날 날카로운 도구가 되었습니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 시대가 요청되는 리더는 양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선한목자와 같은 리더입니다.

 

2차 대전당시 독일 군이 폴란드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는데 폴란드에서 3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독일 군이 폴란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일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유대인 학생들은 가슴에 노란 다윗의 별을 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표시로 강제로 달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다윗의 별을 달고 있는 학생들과 폴란드 학생들이 거기 함께 있었습니다.

독일 군이 총을 들고 다가오니까 학생들은 벌벌 떱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 떠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학생들을 향하여 가슴에 별을 단 유대인 학생들은 전부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무섭고 당황한 나머지 어린 학생들은 모두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내 놓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너무 무서워서 선생님을 끌어안았습니다. 선생님도 그 아이들을 껴안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선생님은 물러나고 유대인 아이들만 내 놓으라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저도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안 됩니다. 하고 독일 군이 말려도 듣지 않고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가스실로 들어가기 위해 가스실 앞에까지 왔습니다. 가스실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아이들이 너무 벌벌 떠니까 선생님이 위로하기를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라 자! 우리 함께 기도하자"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 "예 이제 편안해요" "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지" "선생님 저희는 이제 아무 두려움도 없어요." 이 폴란드 선생님은 가스실에 들어가야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지 유대인 아이들을 사랑해서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같이 가스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6백만 명의 학살을 기념하는 기념관 앞마당에 이 폴란드 여자 선생 크르자크 선생이 벌벌 떨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끌어안은 모습을 동상으로 세워 놓았습니다.

 

변하는 세상, 미래를 알길 없는 세상이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우리에게 요청되는 리더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느니라”(10: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