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세 가지 비유(마13:44-50) :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5. 24. 14:25

세 가지 비유(13:44-50)

 

 

목사 주 태 근

 

옛날 사람들은 자기의 가장 중요한 보물을 땅에 묻어 보관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땅속에 묻어두는 것도 같은 경우입니다. 그 당시 율법학자들은 '돈을 숨기는데 가장 안전한 장소는 땅이라'고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툭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은 전쟁이 일어나려고 하면 피난 가기 전에 귀중한 보화 보물을 땅에 파묻고 갑니다. 전쟁 후에 다시 찾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는 그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직접 경험한 보화를 밭에 감추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근동의 농부들은 아직도 가끔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보화는 발견한 사람의 것이라고 랍비 법에 적혀 있습니다.

 

13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모아놓은 장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기독교의 진리를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해서 설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누룩비유, 밭에 감춰놓은 보화의 비유, 물고기를 잡는 비유의 말씀들은 모두 그 당시 유대인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밭가는 비유는 농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고, 값진 진주의 비유는 장사하는 사람들의 일이며, 그물을 친다는 것은 어부들의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유대인의 중요한 생업 전부가 동원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농업, 상업, 어업은 예수님이 친히 접하시던 유대사회의 중요한 생활 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생활을 통해서 기독교의 진리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늘나라", "천국"을 공간적으로 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국은 어느 특정한 지역에 세워질 나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가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어떠한 장애나 위축됨이 없이 곧 바로 실현되는 그 나라를 "천국"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에 대한 메시지를 그의 사역초기부터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도, 부활하심도 그 자신이 선포한 천국을 완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천국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신 것은 바로 이 지상 최대의 가치를 소개하고, 이해시키고, 소유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용어나 내용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주변 사건과 우리들이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을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천국이 우리들의 이해에 있어서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어서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이 밟고 다니는 밭에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지고 있는 영원하고도 높은 가치의 진리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것은 천국을 밝히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시간과 영원에 통하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 천국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인간 노력의 한계 밖에 있는 절대적인 가치가 무엇인가를 밝히신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같으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성, 구체성, 현실성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소유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천국은 공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념의 세계도 아닙니다.

 

현실적이요, 실재적이요, 구체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천국 설명입니다. 천국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보화가 든 궤짝을 발견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발견했다고 하는 것은 천국의 지적인 문제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또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모든 소유를 다 파는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고 하는 것은 의지적인 결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그 밭을 사서 그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 했다고 하는 것은 감격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이렇게 인간의 지식과 의지 그리고 감격의 문제와 연결된 인격적인 사건으로 설명해 주신 것 입니다. 먼저, 먼저 천국은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 지식의 문제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농부가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상인이 최고의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천국은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보화는 있을 수 없는 그런 보화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화가 땅에 묻혀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인 천국이 이 땅에 내려와 묻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인생들에게는 그 보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인생들이 그 보화를 발로 밟고 다니지만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보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묻혀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밭을 가는 이 농부는 그 보화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에 있어서 지식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과 지식의 문제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입니다.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알아야 하느냐? 알기 위해서 믿어야 하느냐?" "아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 믿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등 여러 가지 믿음과 지식의 관계문제가 논의되어 왔습니다.

 

중세기에는 신앙과 지식의 일치를 주장했습니다. 18세기 에는 신앙과 지식을 분리시키고 말았습니다. 신앙과 지식을 분리시킨 것은 그 독립성을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은 비합리적이요, 비이성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가치 없는 것이라는 극단론까지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지식의 문제와 차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것이고, 지식은 인간 이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인간의 이성으로, 또 이성적으로 연구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는 위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위로부터 주어진 그것을 아는 것 그것이 신지식입니다. 이 신지식은 인간들의 탐구나 노력의 결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보여 주신 것을 최고의 가치(Het hoogste goed)로 알고 받아들이는 그런 지식입니다. 영원한 진리를 진리로 알아보는 그런 지식입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는 그런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자만이 알게되는 그런 지식입니다(16:17) 그리스도는 인간의 이성적인 탐구로 알게 되거나 소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실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추어진 보화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천국은 생을 결단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천국은 설명을 듣고 이해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그가 어디서 났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 밭에는 보화가 묻혀있다. 그 보화는 시가 얼마짜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 보화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천국은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천국은 믿음을 통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초월하는 인격적인 결단이 요청됩니다.

 

예수가 나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부활 하셨으니 그가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인격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은 바로 나를 위해서 그리하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건을 자기에게 관련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결단하도록 합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도록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생을 결단한 자에게 천국이 주어집니다.

 

농부가 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 보화를 갖기 위해서 내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내가 소유해야겠다는 그 결단이 필요한 것처럼, 하늘의 보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보화이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소유해야겠다고 하는 결단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소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감상하는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단했습니다. '그 값진 보물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소유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즉 그 보물과 자기와의 관계를 위해서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하늘의 진리를 구하고, 천국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 일을 위해서 시간 내는 일에 아까워하고, 그 일을 위해서 조그마한 물질적인 희생도 싫어한다면 그에게는 결코 천국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손끝, 머리끝하나 손해 보지 않고 그 보화를 공짜로 기지고자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그 자체가 보화요, 진주이기에 희생적인 각오가 없이는 결코 소유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농부는 자기의 소유 전부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것보다 그 보화의 가치를 안 그 농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는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주위의 어떠한 비난과 조소가 쏟아져도 그는 그 보물사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한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결단이요, 대단히 큰 결단입니다. 가장 높은 가치에 대한 결단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결단을 내린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이 없이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을 소유했다

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이러한 희생적인 결단을 거쳐서만 주어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유한 자에게는 한없이 기쁨이 주어집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기뻐하 였다고 하였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소유하는 감격을 가슴에 안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진리가 주는 감격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 기쁨은 물질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의 명예가 주는 기쁨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기쁨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기쁨입니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 하는 기쁨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만물의 찌꺼기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의 풍성한 위로 때문에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온갖 슬픈 경험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서 오는 구원의 확신과 영원한 평안을 약속 받은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기쁨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익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바울의 이러한 하늘의 기쁨, 생명의 기쁨, 구원의 기쁨, 평안의 기쁨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이스라엘의 한 시인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큰 보화가 되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4:7)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보화를 가진 자는 그 마음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한 농부의 소박하고, 단순한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죄와 고통의 땅에 오셔서 숨겨져 계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겉으로 사는 자는 땅속에 묻힌 하늘의 보화를 알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신을 보배라고 광고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보화인 것을 발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발견하고 가치를 알고 스스로 결단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상하지 않는 것으로 예수님을 선전시키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비밀에 부치라고 경고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입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이 위대한 보화가 땅에 숨겨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보화를 보화인줄 모르고 지나칩니다. 그런데 하늘의 보화가 우리와 같은 죄인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땅에 숨겨진 천국을 우리가 소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하늘의 보화를 보화로 알 수 있는 지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저 주신 은혜입니다.

 

갈릴리 바다 어부들도, 세관에 앉은 마태도,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모두가 예수님을 자신이 소유해야 할 보화로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땅에 감추인 이 보화를 우리가 발견해야 하고 우리가 그를 구하는 결단을 해야 하며 그래서 그 보화를 소유한 기쁨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