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설교원고

신앙생활은 훈련입니다(딤전4:6-13)-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6. 7. 10:56

신앙생활은 훈련입니다(딤전4:6-13)

 

목사 주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있습니다. 훈련소입니다. 훈련소에서 6주간 고된 훈련을 받아야 대한민국의 군인이 됩니다. 그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군대에 갖다 오신 분들은 훈련소 생활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청년시절에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든 일에 큰 소리로 고함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6시 일어나서 점호를 할 때부터 힘찬 구령소리와 함께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기 이름을 댈 때에도 고함치듯 큰 소리로 말해야 하고, 군가를 부를 때에도 가락은 무시하고, 무조건 고함을 질러야 잘 부른 것이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고함을 치르고 나면, 머리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왜 훈련소에서는 그렇게 고되게 훈련을 시킬 뿐만 아니라, 고함을 치게 해서 사람의 정신을 다 빼버리는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다 훈련의 방법이었습니다. 군대 오기 이전에 가졌던 모든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고된 훈련을 해야 하고, 사회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평안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사고들을 군대식으로 바꾸기 위해서 고함을 쳐서라도 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군인을 만드는 훈련방법이었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신앙생활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데모데전서의 말씀에 보면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양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말이나 모두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걸 디모데전서에서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것처럼, 육체적인 훈련을 받는 것도 유익이 되지만,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훈련은 영적인 훈련,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훈련 없이 성장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쓰시기 위해서 반드시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만드십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연합군 지원병 중에서 독일에 보낼 스파이를 많이 뽑아 훈련을 시켰습니다. 독일식 음식, 군복, 언어, 이름, 생활습관에 대하여 매일 맹훈련을 받습니다. 의식구조마저도 완전히 독일 사람으로 변했다고 인정될 때 스파이로 파견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마이크 스미스가 아니라 프리드리히 한스이고, 고향은 일리노이주 시카고가 아니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바꿔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이 그렇게 완전히 의식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훈련을 받습니다. 그들은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십 리나 되는 먼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고된 행군을 합니다.

 

피곤에 지쳐 깊이 잠든 한 밤중에 갑자기 깨우면서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제 이름은 마이크 스미스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는 실격입니다. 곤한 잠에서 벌떡 깨면서도 제 이름은 프리드리히 한스입니다라고 독일말로 대답할 수 있어야 정식 스파이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습니까? 잠재의식에서조차도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의식에서조차도 그리스도인임을 외칩니까? 피나는 훈련의 결과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경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자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반응이며,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려는 진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는 신앙인의 전 존재와 인격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아름다운 향기와 같은 것입니다.

 

숨어계시는 하나님, 하지만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자들 안에 있는 경외와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서 오직 하나님을 향해 있는, 그리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새겨져 있는 거룩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즉 형제들을 향해서 사랑하고 진심으로 의를 행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내어놓는 자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추구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간절한 그리스도인의 열망입니다.

 

요즈음 베스트셀러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석학입니다. 이런 그가 세상이 부르는 많은 자리를 내려놓고 몽골에 선교사로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유학생활과 몽골 선교사역을 통해 자신이 배운 내려놓는 삶, 그리고 하나님이 내려놓은 자신을 어떻게 채워 가셨는지를 생생하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삶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움켜쥐고 더 많이 쌓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지요. 어느 날 하나님이 내게 오셔서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내려놓는 것은 곧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남의 이야기 일 때, 그리고 이론적으로 토의를 할 때는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사건이 되어야 할 때 내려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압니다.

 

내려놓으면 그것이 진짜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내려놓을 때 더 큰 것으로 하나님이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여기서 신앙의 위인과 범인이 갈라집니다. 여기서 이용규 선교사는 "제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합니다.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해 갑니다.

 

인생의 중심자리를 버리고 가장 변두리로 나아갑니다. "당신은 무엇을 내려놓았습니까?" 라고 묻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첫째, 내려놓음이란 자신이 쓸 수 있는 그 힘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가지면,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면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위해 쓰는 것이 내려놓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것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지식과 경험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으면 고집쟁이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지식,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셋째,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며 내 주변에 쌓인 인간관계를, 즉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해 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행복과 평안과 쉼을 알아 가는 것이 내려놓는 삶입니다.

 

넷째, 나 자신을 하나님이 쓰시도록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빗금쳐 놓은 영역이 있습니까? 이것만은 움켜쥐고 싶은 그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 집에 황금 벽돌을 주시고 싶어하는데 당신은 정작 흔해빠진 시멘트 벽돌을 붙들고 있습니까? 그것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내려놓음이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신비를 배워 가는 것이 내려놓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비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의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철저한 신앙의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자라 부릅니다. 제자란 단어가 영어로는 Disciple입니다. 그런데 훈련이란 단어가 영어로는 Discipline입니다.

 

두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말씀으로 훈련(Discipline)된 사람이 바로 제자(Disciple)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교인과 제자는 다릅니다. 어떤 교회에는 교인 수는 많으나 제자 수는 극히 적을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교인수는 그렇게 많지 않으나 제자의 수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처럼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된 사람이 제자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교인들은 많은데 제자가 적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신앙은 좋은 것 같은데 생활이 바르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로서 산다는 것은 바로 제자다운 삶의 내용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 다운 제자가 되려면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독수리는 새 중의 왕이라고 불립니다. 이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가는걸 보면 장관입니다. 참 멋있습니다. 하루 종일이라도 날 수가 있습니다.

 

독수리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먹이를 향해서 날아갈 때에는 시속 120마일의 속력입니다. 180km 정도 됩니다. 천하무적입니다. 이 독수리가 둥지를 틀 때에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깊은 산이나, 높은 바위의 벼랑 위에다가 만들고 삽니다. 둥지의 크기가 큰 것은 제 키보다 더 큰 크기입니다.

 

2.7m에서 3m나 됩니다. 이런 새가 그 둥지에서 새끼를 낳고 먹이를 물어다 주면서 키웁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커서 날 때쯤 되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발로 슬쩍 밀어서 벼랑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가 그 높은 데서 떨어지면서 퍼드득 퍼드득 거리면서 죽는다고 야단합니다.

 

아무리 천하의 독수리지만 난생 처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날 리가 없습니다. 못 납니다. 그 때 이 새끼 독수리가 떨어지면서 한참을 퍼드득 거리면서 죽겠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어미 독수리가 지켜보고 있다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바람을 가르면서 쏜살같이 내려와서 채 가지고 둥지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한 숨 돌린 다음에 좀 쉬었다가 또 슬쩍 밉니다.

훈련의 훈련을 거듭합니다. 새끼 독수리가 떨어져 죽을 만하면 잡아다가 둥지에 놓고, 또 밀어서 죽을 만하면 잡아채다가 둥지에 올려놓고, 또 밀어서 떨어져 죽을 만하면 데려다가 둥지에 올려놓고, 이런 것을 하루 종일, 며칠 동안 하는 겁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런 훈련을 계속 시키면서 새끼 독수리에게 하늘을 나는 비법을 가르칩니다.

 

독수리로서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런 강인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서 새 중의 왕인 독수리로 태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천하에 독수리이지만 독수리로 태어났다고 저절로 새 중의 왕인 독수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훈련이라는 것은 동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도 훈련이라는 것이 해당됩니다. 신앙생활 역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믿음의 사람을 키우는 교회입니다. 믿음의 지도자를 키우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사병들을 훈련시키는 교회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사관학교 학생들을 키우는 사관학교와 같은 교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논산훈련소보다는 육군사관학교나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와 같은 교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사병도 만들어야겠지만, 이왕이면 장군을 만들어야합니다. 지도자를 양성하여 교인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영향력을 끼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사병들이 받는 훈련 코스와 장군들이 받는 훈련 코스가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도 이 제단에서 장군 훈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시는 영적 장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셔서 믿음의 훈련을 받으시고 경건 생활의 훈련을 받으셔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