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기독교(빌2:5-11)
목사-주태근(종려주일)
【필란드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나라를 잘 다스렸으므로 백성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왕에게는 남모르는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뒤를 이을 왕자가 없고 공주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주의 신랑을 뽑아 대를 잇게 할 생각으로 왕은 전국에 사윗감을 구한다는 방을 붙였습니다. 드디어 공주의 신랑을 뽑는 날이 되자 전국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왔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말 타기와 활쏘기였습니다. 이 시험에서 거의 탈락하고 한 20여명 정도의 건장한 젊은이가 뽑혔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지혜의 시험입니다. 문제가 내걸렀습니다. "높은 하늘과 땅을 잇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너라. 기간은 100일을 주겠다." 20명의 청년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면 그 나무는 얼마나 길어야 할까?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려면 나뭇가지 또한 얼마나 길어야 할까?” 하면서 제각기 길을 떠났습니다. 그 20명 중에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페로 역시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커다란 나무를 구하려다가 찾지 못하고 수녀원 성당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그는 현명한 왕이 되어 세상의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다 밖으로 나오던 '존 페로'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나무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입을 열어 탄성을 발하면서 "그렇다, 그것은 나무로 된 십자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존 페로'는 필란드를 잘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기도 중 떠오른 십자가가 페로에게 삶의 유익을 주는 축복의 은총이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통나무 두개를 서로 엮어 3 M 높이로 세워 놓고 그곳에 흉악한 죄수들을 잡아다가, 매달아 놓고는 진을 빼서 죽이는 곳, 그곳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이를테면 사형 틀 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10년 후에 가서 화폐에다 이 십자가의 모형을 새겨 넣었습니다.
30년 후에 가서는 죽은 사람의 관 위에다 고난의 표시로 이 십자가의 모형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4세기 후에 가서는 교회들 마다 십자가를 만들어서 종탑 위에 세우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 것이 오늘 날에 와서는 교회들 마다 십자가를 높이 지붕 위에 달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는 사람들은 고난을 표시할 때 의례히 십자가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몸에 지닌 질병을 가시라고 표현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는 십자가가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근심거리가 생겼을 때도 사람들은 십자가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가보면 십자가 없는 집이 없습니다. 겉에서 보면 행복하게 보이는 집에도 좀 깊이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십자가는 네가 지고 가라." 고 말하셨습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남이 대신 져 줄 수 있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남에게 전가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나 밖에 질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내게 주신 십자가는 너무나 커, 하나님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큰 십자가를 주셨는지 몰라"하고 푸념하며 불만스럽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그곳에 십자가가 많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지고 가거라.", 이 사람은 너무나 반가워서 지고 있던 십자가를 집어 던지고는 가장 작은 것으로 골라졌습니다. 빛이 나고 보석으로 꾸며 있고 가볍게 생긴 것으로 골라서 져 보니까 묵직했습니다.
그래서 속을 들여다보니까 그곳에는 아픔과 고뇌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른 것으로 골랐습니다. 이번에는 장미꽃으로 장식해 놓은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지자마자 찔러대기 시작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각종 한숨과 질고가 가득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다시 고른 것이 지금 까지 자기가 지고 있다가 무겁다고 집어 던진 그 옛날의 십자가를 골라 다시 짊어 졌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니, 그것은 네가 무겁다고 던져버린 그 십자가가 아니냐?",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가장 가벼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사람이 그 십자가를 지니까 그렇게 가벼웠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남들은 모두 십자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있어도 남의 것은 모두 가볍게 보입니다. 내게만 제일 무거운 십자가가 주어진 것처럼 생각되어 불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시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십자가를 세웁니다. 화려한 교회당에도, 초라한 교회당에도 변함없이 세워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불신자들은 어두운 도심을 밝히는 수많은 십자가를 공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심 가운데 교회를 세우려면 기를 쓰고 반대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비밀을 제대로 안다면 기독교를 반대하거나 멸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희망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기독교를 말할 수 없고, 구원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2차전도 여행 중에 유럽에서 첫 번째 세운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어려울 때 물질로 도와준 신실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성도들 간에 다툼과 분쟁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5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예수의 마음’은 바로 십자가정신입니다. 십자가의 참된 정신을 본문에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축제 가운데 하나가 부활절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없이는 결코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이라는 것은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간을 경건하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고난주간입니다. 금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입니다.
이 주간에는 많은 교회가 금식도 하고 특별기도회도 가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행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할 것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고난은 “십자가”를 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라틴어 ‘크룩스(crux)’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고문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문대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한 형벌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통용되어 왔던 사형법입니다. 알렉산더 왕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는 드로 사람 일천 명을 십자가에서 처형을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바로 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인류의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상에서 완전한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던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사랑의 사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욱 훈련하고자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없는 인간 생활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나 사회나 나라나 어느 곳에서도 이 고난과 불행과 비극은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태도는 그 고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 고난 속에 묻혀 있는 보화를 발견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들을 견고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조개 속에 모래 한 알이 들어가 아픔과 통증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조개는 그 특유의 액체를 내어 모래를 싸고 또 싸서 나중에는 그것이 진주가 됩니다. 고통 중에 생겨나는 것이 진주라는 보화입니다. 영롱한 다이아몬드도 수없는 깎는 아픔을 통과해야지만 만들어 집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하루아침에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10남매가 죽고 자신의 몸은 문둥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부인도 떠나가 버립니다. 친구들도 그를 구박하면서 힐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라고 고백하면서 고통을 이기고 나니 그 고통은 갑절의 축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요셉도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으로 팔리고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3년간이나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아픔 때문에 후에 총리대신이 되어서 고통 가운데 있던 자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에게 기자들이 와서 성공한 비결을 물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가난하고 무식하므로 하나님께 생명 걸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지혜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 고 말하였습니다. 카네기는 가난이라는 고통 때문에 성공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가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칭송을 받던 그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 열정을 다하여 연습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은 백혈병이라는 죽음의 선고였습니다. 그러나 호세 카레라스는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붙잡았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골수 이식 수술과 힘든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신을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연 수익금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호세 카레라스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지성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며 믿음의 대상이며 믿을 때만 강하게 역사 합니다.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 유익을 줄 뿐 아니라 풍성한 혜택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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