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강의록

교회론 강의록(17) : 교회와 선교(글-주태근)

주 바나바 2024. 1. 18. 09:44

. 교회와 선교

 

1161년 킹제임스 성경

 

 

하나님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선교 즉 복음전파인데, 그것은 사역으로써의 일이라기보다는 성도의 본질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는 어떤 인간적 행위에 대한 결과로써의 결정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따라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 16:15)”고 명하셨으며,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하시므로 선교가 지상교회의 필연적인 사명임을 보여 주었다.

 

한동안 한국교회는 선교를 선택적인 것으로 생각해온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성서를 깊이 보면 볼수록 선교는 교회가 할 수 있는 많은 것 중에 한 가지 선택사항이 아니라 교회가 갖는 가장 핵심적인 사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상명령과 선교에 관한 구절들이 신약성서 곳곳에 나와 있는 것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몇 구절에 선교가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 전역에 걸쳐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성서적으로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즉 성서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선교를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서의 모든 것이 선교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을 보아도 그렇고 신약을 보아도 그렇다. 구약에서 선교의 기초가 놓여 졌다면 신약에서는 그 완성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신약과 구약 전체를 통해 선교가 하나의 중심 사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혹자는 모든 신학은 선교적이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지금까지 신학은 서구 문화와 헬라 적인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이론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성서적인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았을 때 성서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선교의 구체적인 표현들로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교회는 선교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단지 그 소명에 따라서 실제로 선교지 에 나가서 선교 사역에 직접참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 삶을 선교적으로 선교 후방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최근 용어를 빌리자면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무려 7.35억이 된다고 데이빗 바렛(David Barrett)이나 랄프 윈터(Ralph Winter)박사 등은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동시에 일어나서 각각 7-8명을 전도한다면 세계는 복음화되고 주님은 재림하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19억에 이르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서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향하고 성서에서 명령하고 있는 선교를 한다면 세계복음화는 시간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복음화는 희망적이다.

 

 

1. 교회란 무엇인가 ?

 

오늘날은 교회론 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교리는 없을 것이다. 교회의 의미가 정신문화에 부합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론 보다 더 큰 관심 있는 교리가 없을 것이다. 시장성과 양적인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현대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과 목적에 대해 신중한 고려를 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교회의 어떤 특별한 활동과 사역만이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는 것으로 속단하여, 교회란 과연 무엇이며 그 존재 목적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시대이다. 칼 헨리는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들마저도 교회론에 무관심하다고 1990년 복음주의협의회에서 경고한 바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 ?’의 문제는 교회론에서 다루어야 할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선교를 논할 때 교회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는 교회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 동향의 편집자인 앤더슨은(Gerald H. Anderson) 이것을 불꽃 없이 불이 없고, 선교 없이 교회 없다고 표현하였다.

 

아마 성서에서 교회라는 개념이 사용된 것보다는 하나님 앞에 선 공동체가 먼저 실재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점은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교회 사람들은 선교가 무엇인지, 왜 선교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에게는 선교학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교회론에 대한 질문도 가지지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였던 공동체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활성화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던 공동체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정의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그의 맡기신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은 예배공동체요, 맡기신 일을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은 선교공동체가 된다. 이것은 교회의 어원을 Kirche(독일어)Kuriakos(‘주게 속한이라는 희랍어)에서 찾아본 것과 같은 결론이다.

 

다른 한편 교회라는 개념은 희랍어 ekklesia(에클레시아)에서 왔다. 이 단어는 원래 ek(으로부터 밖으로)라는 말과 Ka leo(부르다)라는 동사의 복합어에서 왔다. 그러므로 이 복합동사의 의미는 로부터 밖으로 불러내다이고 그 명사형은 부름 받아 나온 자들을 의미하게 된다. 실재로 이 개념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총회나 일단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데 쓰였으며 특히 종교적 모임, 곧 교회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피터스(G. W. Peters)는 이 개념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신약에서의 용법은 을 향하여 부름 받은’(calld unto)이라는 의미를 더 가진다. 에클레시아라는 개념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를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70인 역과 신약성서에서의 용법을 보면 에클레시아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기본적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로부터, 그리고를 향하여 부름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특별한류의 사람들이다. 그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함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평등과 형제애라는 원리에서 자신들의 과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부름을 입은 무리들이라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입었고 또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았으며, 그 사명을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보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이때에도 우리는 그 교회를 선교공동체로서의 교회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