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마1:18~25) : 목사-주태근

주 바나바 2023. 5. 13. 10:59

하나님의 아들 예수(1:18~25)

 

목사 주태근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거리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문 앞에 서서 휘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보, 오늘 함께 교회에 가요" 아내가 간곡히 부탁합니다. "안돼. 난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싫어! 당신이나 가구려. 나는 여기 따뜻한 난롯가에 있을 거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남자는 난롯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봅니다. 홀로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 가까이에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새 몇 마리가 있었습니다. “저런, 아마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려고 했었을 거야"‘ 친절하게도 남자는 새들이 얼어 죽지 않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헛간이라면 새들에게 좋은 집이 될 거야!" 남자는 빵을 조금 가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조심스럽게 빵 부스러기를 땅에 놓으며 떨고 있는 새들을 헛간으로 인도하려고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빵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새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리로 와, 이곳은 따뜻하단 말이야" 그러나 새들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새들은 남자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슬퍼졌습니다. "내가 잠깐이라도 새가 될 수 있다면 저 새들을 헛간으로 인도해 줄 수 있을 텐데." 바로 그때, 교회 쪽에서 성탄 찬송 소리가 드려왔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조용히 서 있던 남자는 눈 속에 무릎을 꿇고 속삭였습니다. "! 이제야 알았습니다."

 

남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셔야 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내가 새를 구하기 위해 새가 되기를 원한것 같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언키 위해 사람이 되셨구나!"

 

성경을 읽을 때면 가끔 기적적으로 출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기적적인 출생을 경험한 부부가 있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둘 다 100세에 이르는 노령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때까지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이제 자녀를 가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사라의 태를 여시고 아들 이삭을 선물로 허락해 주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가장 먼저 기적적인 출생을 체험한 사람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의 부모는 이미 늙었습니다. 자연법칙 상 자녀가 태어날 가능성이라고는 거의 없는 노령의 부모였습니다. 비록 자녀를 달라고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세례요한이 태어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몇몇 기적적으로 태어난 인물들이 있지만 초자연적인 출생의 절정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그가 자연법칙에 의해서가 아닌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00여 년 전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이미 예언된바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은 잘 납득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수백 년 전부터 그분이 처녀의 몸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관계에 있으면서 아직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하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정혼이란 유대나라 관습 중 하나로, 자녀들이 어릴 때 부모들끼리 서로 혼인을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 집 딸아이를 보니 참 귀엽네요. 우리 집 아이가 자라면 둘이 결혼시킵시다." 이런 말이 처음에는 부모들 간에 오가다가, 그 다음에는 "그럴 바에야 정식으로 두 아이를 엮어주도록 양가가 약속을 합시다." 하고 합의를 봅니다. 당시 정혼한 관계의 남녀는 15-16세가 넘어가면 언제든지 부모의 허락을 받아 동거할 수 있었으며, 결혼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이미 10대 후반에 접어든 성인으로서, 그들을 결혼시키기로 정혼한 부모들의 승낙 아래 언제든지 동거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동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가 요셉에게 찾아왔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자기, 내 말 좀 들어봐 봐.” "날 믿지? 꼭 믿어야 돼. 그리고 나를 의심하면 안돼. 내가 하는 말을 꼭 믿어줬으면 좋겠어. 자기! 날 사랑하지?" 요셉이 대답 합니다. "무슨 말인데, 뜸 드리지 말고 얼른 말해 봐봐." 그리고는 마리아에게서 "나 임신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요셉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어서 마리아가 정신을 가다듬고 메마른 입술을 축여가면서 요셉을 설득시키려고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갑자기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내게 나타나서,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성령이 네게 임하셔서 성령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고 그 아들이 태어나면 다윗의 위를 이어받아 만왕의 왕이 될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나는 남자를 아직 모르는데요.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어. 그러자 천사가 말하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네가 잉태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다는 거야.”너무나 확실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면 그렇게 되어지리다." 하고 그만 수락을 했어. 그런데 얼마 지나서 정말 내가 임신을 한 거야. “내 말 믿을 수 있겠어?” 과연 요셉이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뒤로 요셉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일을 어떻게 하지, 마리아가 틀림없이 실수한 것 같은데, 아마도 이 사실이 온 동네에 알려지면 율법대로 그녀는 돌에 맞아 죽을 텐데, 그래,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어버리자.”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니라." 그것도 두 번이나 요셉에게 확인시켜주시면서 그의 마음에서 의심을 쓸어내셨습니다. 그리고 머뭇거리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와서 동거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천사의 지시를 받고, 다음날 당장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동거했습니다.

 

신약을 보면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기록한 본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족보, 혈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부터 이어진 예수님의 족보 안에 4명의 여자 이름이 등장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특별히 그 여자들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몇 가지 구절들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3절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라고 말합니다. 5절에 가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6절 중간에 가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여자가 나올 때는 누가 어떤 여자를 통해서 누구를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 가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원래대로 말하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며,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았다고 해야 정상적인 패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위에서 기록해 내려오던 패턴을 완전히 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요셉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나오신 것뿐이지, 요셉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절대 지칭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리아에게서 낳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은 위대한 여성입니다.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시면, 그 뒤에 지불해야 될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런 마리아의 위대한 자세를 높이 평가한 나머지, 나중에는 마치 그녀를 하나님처럼 우상으로 섬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죄가 없다',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녀다. 절대 결혼한 일이 없고 자녀를 낳은 일도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나중에 승천했다.'고 말하면서 지난 수천 년 동안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고 손을 비비면서 법석을 떠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런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가톨릭이 부패할 때 생겨난 잘못된 유전입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현상들이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헌신한 위대한 여성이었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점을 마음에 두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사실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꼭 묻고 넘어가야 될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안 믿는 분도 꽤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버클리 대학에서 미국 교회를 대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놀랍게도 가장 복음적이라고 하는 침례교회에서만 해도 31%가 나왔습니다. 10명 중 3명은 안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장로교는 43%, 감리교는 66%까지 나왔습니다.

 

따라서 감리교의 경우 10명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 그 중 7명은 예수님이 처녀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안 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신앙적인 내용으로만 받아들일 뿐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인 데는 부인합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이런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믿게 되면 치명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분명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예수님의 무죄설-를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요셉의 아들이면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십자가의 죽음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기독교의 중요한 복음의 핵심들을 절대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을 안 믿는다면 우리는 벌써 믿음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은 암수가 결합해서 새끼를 낳는 것입니다.

 

남녀가 결합해서 한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벗어나는 예외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단 한번 자기가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셨습니다.

 

위대한 기독교 문학자 C.S. 루이스는 그 일을 두고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단 한번 자기가 사람이 되는 신비스러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생명창조의 도구라고 하는 남자의 역할을 하나님이 옆으로 제쳐놓고, 대신 자기의 손가락을 처녀 마리아에게 대서 임신을 하게 하셨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단 한번 자연의 거대한 장갑을 자기 손에서 벗어버리고 맨손으로 마리아에게 손을 대셨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장갑이라고 하면 남녀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자연법칙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을 그런 법칙에 구애 받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손으로 마리아를 터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이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천사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비한 방법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셨습니다. 성령이 마리아를 감동하고,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매우 힘 있고, 신선케 하는 능력이 있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하나님의 아들에게 죄가 오염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입니다. 사람이시면서도 죄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중심 교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믿을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있는 것에서 있게 하는 복제가 아닙니다.

 

없는 것에서 있게 된 사건입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재료로 삼아서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 되심 즉 성육신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심으로써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성적관계를 통해 나시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서 하나님 아들의 온전한 신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 같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아멘.

 

 

 

 

 

성탄